수산시장은 지옥이다.
옛날에 유행하던 네이버 웹툰 제목스럽지만 틀린 말이 아니다.
그래도 바닷가는 여름에 가장 핫한 휴양지고, 그래도 바닷가에 갔으니 소주에 회 한 접시 하고싶어하는 친구들은 많다.
그러니까 관광지 수산시장의 양아치 바가지 씌우기가 계속되지.
'나는 바닷가 갔지만 삼겹살 구워먹을건데요?'
아주 현명한 선택이고 추천한다. 다만, 그래도 바닷가 갔으니 회 먹고 싶어하는 친구들이 많을 거라 이런 글을 남겨둔다.
선 1줄요약
광어, 우럭, 연어... 흔한거 먹지 말고 그 앞바다에서 나는 자연산 잡어를 싸게 먹어라
시뮬레이션을 딱 돌려보자
아니면 여자친구가 바다 남자들이랑 간대서 머리채 잡으러 따라가야 하는 상황이다.
여하튼, 여름을 맞이해 바다 여행 일정이 잡혔다.
수산시장의 극악무도한 실체를 알고 있는 친구들은 '엣, 수산시장? 그런 곳 가면 메챠쿠챠 당해버리는 거 아니야?' 라고 말하겠지만
대부분은 그 실체를 지식으로만 알고 있을 뿐이지 체감하진 못 했을거다. 친구들이랑 회한접시 하는데 중요한거지, 너무 바가지씌워서 기분 잡치지만 않으면 적당한 가격에 물건 사줄 의향도 있고.
여기서, 5점 만점짜리 답안은 네가 고인물이 되는 거다. 그 고인물이랑 동행하던가.
0점짜리 답안은 가서 개씨발호구잡히는거고
1점짜리 답안은 근처 횟집 가는거다. 관광지 회타운은 수산시장보다 악랄하거든...
'이마트나 홈플러스 가서 광어사먹을건데요?'
나쁘지는 않다. 2점짜리 답안이다.
호구 잡히는거나 근처 회타운가는것보단 확연히 좋다.
그래서 속초 현지인들이 이마트회를 그렇게 찬양하는거다
여기까지가, 수산물에 대한 지식이 없는 일반인들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니까.
다만, 나는 여기서 3~4점짜리 답안을 내주려고 한다.
개싸구려 잡어회를 먹어라
잡어가 뭔가요?
말 그대로 잡생선이다. 상품가치가 적어서 막 본격적으로 팔리지 않는 친구들
일본어론 자~코♡ 라고 한다.
여하튼, 잡어는 가격대가 싸다.
2인 기준 3만원. 좀 깎으면 2.5
초장집 들어가서 소주 두세병씩 까면 둘이 합쳐서 토탈 5만원정도 계산하고 나올 수 있도록 하면 된다.
요컨대...
살면서 일반인들은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꼬랑치, 꼬시래기, 삼세기, 용가자미, 이런 걸 먹으라는 거다.
아니면 청어처럼 이름은 알아도 회론 안먹어본 어종이나.
이 판단은 현지 수산시장 갔을때 진리에 가까운 판단이고, 나도 늘 저런 선택지를 고른다.
왜?
바닷가 현지 수산시장은 몇 가지 특징을 가진다.
1. 서울에 비해 광어, 우럭 등 메이저 양식어종 값이 비싸다.
왜냐면 어차피 양식은 통영이나 제주 완도 이런곳에서 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양식장 근처 바닷가라면 그 양식어종이 싸겠지만, 강원도라고 생각해보자.
완도에서 광어를 서울까지 나르는 게 쉬울까?
아니면 강원도까지 나르는 게 쉬울까?
닥전이다.
거리는 둘째치고 전자는 규모의 경제가 적용되거든
상인 입장에서 안정성도 다르다.
서울의 한 수산시장 점포에서 광어가 10마리 팔릴때 강원도 수산시장의 광어는 한마리도 안 팔릴거다.
전자는 마리당 만원만 마진 남겨도 되지만 후자는 이만원을 남겨도 돈을 못 번다.
그래서 양식장을 제외하면 양식어종은 서울이 가장 싸고, 물건도 좋다.
이걸 현지 바닷가가서 먹는다고?
효율이 떨어질수밖에 없단거다.
마찬가지로 수입 킹크랩, 대게 먹으면 좆된다 !!!
그렇다면 왜 싸구려 잡어인가?
양식어종 빼면 남는건 고급 자연산 어종과 싸구려 자연산 어종뿐인데, 고급 자연산 어종을 지방 수산시장에서 먹는건 병신짓이기 때문이다.
2. 지방 수산시장은 손질을 대충한다.
입질의 추억식으로 이야기하자면, 회를 '물빨래' 한다.
비늘을 안 치고 대충대충 썰어버린다음
회에 묻은 피와 비늘을 물로 씻어내 먹는 거다.
즉. 호구잡는걸 피하고 기적적으로 값비싼 자연산 돌돔같은 걸 구매했다고 한들, 내 앞엔 물빨래한 회가 배달올 거다.
이건 존나 아까운 짓이다 ㅇㅇ....
물빨래 하는 순간 감칠맛 일부는 씻겨내려가거든.
회를 그냥 초장맛으로 먹어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3. 때문에, 회를 숙성할 수도 없다.
물빨래한 회는 숙성회로 먹을 수 없다.
고점이 깎여나가는 셈이다.
그리고 솔직히 고급 어종은 활어로 먹으면 돈이 아깝다.
3시간~6시간만이라도 단기숙성 딱 해먹으면 활어랑 비교해 감칠맛도 더 좋고 오히려 식감도 더 좋거든.
디건 부경대 교수님 연구결과임
무슨 뜻이냐고?
생선은 죽고 나면 쭉 감칠맛이 올라감.
대신, 식감은 떨어짐
근데 식감이 떨어지지 않고 유지되는 시간이 있는데 그게 3~6시간임.
즉, 3~6시간 단기숙성회는 과학적으로 활어회의 상위호환임.
식감은 안 잃는데, 감칠맛만을 얻으니까.
말이 딴데로 샜는데...
고급어종을 그냥 활어회로 썰어먹으면 아까움
활어회를 좋아한다면 단기숙성에서 어종의 밸류를 높이는게 맞음
다만 지방 수산시장에선 회를 물빨래하기에 숙성 자체가 불가능하고, 따라서 고급어종 먹을 필요도 없음
남는 건 오직 개싸구려 잡어회뿐임.
근데 이게, 나쁜 건 아니다.
개싸구려 잡어회가 말이 개싸구려지 그래도 맛은 있거든?
회 초장맛으로 먹는친구들 많잖아 ㅇㅇ
갓 썰어서 싱싱한 회 한 점 초장 찍어서 소주랑 딱, 괜찮지 않음?
바다보면서 인당 2~3만원 내는선에서 회랑 소주먹고 매운탕으로 입가심하고 나오면....
솔직히 다들 만족할 거라 생각함.
이 선택지에는 그 외에도 장점이 존나 많음
서울에선 자연산 잡어회 맛보려면 비싸다는점, 즉. 자연산 잡어야말로 '여기 아니면 못 맛본다' 는 점.(서울 자연산 참가자미 세꼬시 전문점은 한접시 7만원받음, 지방 내려가면 2만원치)
상인이 호구잡기가 힘들다는 점(잡어는 손질도 빡세고 마진도 별로 안남음)
딱히 제철을 안 탄다는 점(제철이야 있지만 연중 맛은 비슷비슷함... 그래서 잡어임)
흥정은 어떻게 해야할까?
잡어 흥정은 쉽다.
물론 나처럼 잡어 이름이름 하나 다 꿰고, 어떤 잡어가 더 맛있는지, 더 비싼지 공부한다음 고밸류 잡어를 가져오기 위해 흥정하는 건 무슨 상인이랑 롤 프로들이 밴픽하는거 같아서 힘든데
여러분들은 하나만 기억하면 돼서 그렇다. '가장 싸게, 가장 많이'
까놓고 잡어 맛차이 하나하나 다 느낄수있을정도면 이 글을 볼 게 아니라 비슷한 글을 쓰고 있어야하거든
흥정을 어떻게 해야하냐고?
응애!! 배고파! 돈없어! 맘마줘!!!
이짓만 하면 된다.
구라가 아니다. 진짜다.
상인 하나 붙잡고 예산 말해라(2인당 3만원 정도가 적당함)
돈 없으니까 그냥 배만 채우게 해달라고 해라
바닥에 드러누워서 땡깡피울 기세로 해라
대단하고 멋진 말빨로 흥정하는 거?
꿈도 꾸지 마라. 니 앞에 있는 상인은 지금껏 수많은 호구들을 등쳐먹은 귀신이다
어줍잖은 지식으로 상대하면 피만본다
근데 정작 저래버리면...
놀랍게도, 해준다.
그야 잡어회 2인 3만원으로 남정네 배채워주는거?
상인 입장에서도 아주 비상식적인 가격대는 아니거든
땡깡 피우면 '이대남 이 미친새끼들' 하면서도 다 넣어준다
그리고 어차피.... 그렇게 초장 찍어 먹으면 맛있다 !!!!
이상으로, 잡어 사진들 몇개 남기면서 글을 끝마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