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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의 인생 이야기 (전편).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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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분석팀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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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현대 인류에게는 24시간 몸과 붙어 있는 친근한 기계가 하나 있다.


바로 스마트폰이다.


스마트폰하면 애플, 애플하면 또 누구인가?





바로 이 글의 주제가 되실 '스티브 잡스'다.



그는 50년 역사 애플의 창업자이다.


하지만 그냥 창업자가 아니라 '공동' 창업자이다.


그렇다면 또 다른 '공동' 창업자는 누구일까?





가볍게 시작하기 위해 짤막한 웃픈 글을 가져와봤다.


그는 잡스의 사원 번호 2번보다 더 높은 공동 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이다.




어째서 잡스는 사원 번호 1번을 얻지 못했을까?


잡스의 젊은 시절은 어땠으며 어떻게 애플을 성장시켰을까?


 

전 CNN 회장 월터 아이작슨이 직접 잡스와 그의 지인들을 인터뷰해 집필한 스티브 잡스의 전기

'Steve Jobs'를 통해, 심지어 그의 어두웠던 이면까지 낱낱이 요약해서 알아보겠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을 만큼 미친 사람들이 결국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다.」

- 애플의 1997년 광고 '다른 것을 생각하라(Think Different)'



[ 서문 ]


들어가기에 앞서


본문 이해에 도움이 되는 잡스의 특징 몇 가지를 소개하겠다.

그는 기본적으로 지나치게 직설적이고 솔직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는 남들이 못해낸 성공을 이룰 수 있었다.

동료들이 말했다.

"그는 우리를 몰아붙히는 동시에 꿈도 못 꾸던 것을 성취하게 이끌어주었어요."


그리고 그는 사람들을 '신' 아니면 '멍청이' 이 둘 중 하나로 본다.

그는 '신'을 우러러 보지만 '멍청이'에게는 자비가 없다.


그는 열정적이며 완벽주의자이다.

그는 반항아이면서 동시에 모든 것을 자기 손으로 통제해 완벽하게 만들려는 본능이 뿌리에 깊이 박혀 있다.

애플 시스템의 모든 것이 연결되고 폐쇄적인 이유도 잡스의 통제 본능에서 기인했다.

쉽게 말해서 애플 사용자는 애플의 우리 안에서만 논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이 있다.

그가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점에 있다는 것이다.

또는 예술과 과학

그리고 인간과 기계




인간과 기계, 모두의 편이었던 잡스는 이 둘을 연결해주었다.


친근하고 심미적인 디자인 덕분에 우리는 딱딱하기만 하던 기계와 쉽게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또한 그는 기기의 복잡성을 이해했기 때문에 역으로 심오한 단순성을 기기에 부여할 수 있었다. (미니멀리즘)


사실 잡스와 비슷한 천재가 한 명 더 있었다.


그의 이름은 모나리자를 그린 레오나르도 다빈치다.



<과학과 예술 연결의 결정체 비트루비안 맨(Vitruvian Man)>



잡스는 다빈치의 완벽을 향한 타협하지 않는 열정에 감탄했다.


"기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 그 철학은 애플의 DNA에 내재해 있습니다.


가슴을 울리는 결과를 내는 것은 인문학과 결합된 과학기술이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잡스는 아무도 볼 일이 없던 내부 회로기판의 아름다움도 신경 쓸 정도로 지독한 완벽주의자다.


그와 다빈치는 진정한 예술가는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까지 챙긴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 본문 ]



1. 버림받음과 선택받음의 사이에서



<아버지 폴 잡스와 스티브 잡스(1956)>




조앤 시블과 압둘파타 잔달리 사이에서 태어난 스티브 잡스를 결혼 문제때문에 그들이 잡스를 양육할 수 없게 됐다.


그러자 결혼 후 9년 동안 아이를 갖지 못한 폴 잡스와 클라라 잡스 부부는 스티브 잡스를 입양했다.


잡스는 말했다.


"부모님은 입양 사실에 대해 저에게 어릴 적부터 매우 개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일곱 살 때 길 건너의 한 여자아이가 말했다.


"그러니까 너네 진짜 부모님은 널 원하지 않았다는 얘기야?"



그 일로 잡스는 충격을 받았다. (후에 평생 그를 괴롭히는 상처다.)


그러자 잡스 부부는


"그게 아니란다 아이야, 우리가 너를 특별히 선택한 거란다."


라고 위로해주며 아낌없이 잡스를 행복하게 키워나갔다.



잡스는 분명 어린 나이에 상처를 받은 걸로 보이지만 그가 회상하면서 폴 잡스와 클라라 잡스에 대해 말했다.


"그들은 1000퍼센트 제 부모님입니다."




2. 실리콘밸리에서 뛰놀다.



폴 잡스는 중고차 수리일을 하며 기계에 헌신적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아버지가 빌려준 작업대를 만지면서 그의 장인 정신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기억한다.


"아버지는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신경쓰며 일을 제대로 하는 걸 철칙으로 여기셨지요."



스티브는 자동차 기계 다루는 일이 썩 재밌진 않았지만 자연스레 전자공학을 접하게 된 이후로 그것에 반했다.


특히 스티브는 아버지와 부품 가게에 갈 때 즐거워했다.


"아버지는 흥정을 아주 잘하셨죠. 부품의 적절한 가치를 계산대 사람보다 더 잘 아셨으니까요."



또한 그의 집과 그 일대를 지은 조셉 아이클러의 주택들을 보고 스티브는 감명했다.


"그가 지은 주택은 스마트했고 저렴했으며 질이 좋았습니다. 


깨끗한 디자인, 심플한 취향 등을 선사하고 난방 시스템같은 작지만 놀라운 기능들도 갖추고 있었어요."


여기서 스티브는 깔끔한 디자인의 제품을 대중에게 공급하고자 하는 열정이 생겼다.



그리고 잡스의 집 일대는 점차 반도체 회사들이 들어서면서 기술 공업단지로 자리잡아 반도체의 중심 '실리콘밸리'가 된다.




3. 또 다른 스티브



<왼쪽의 스티브 워즈니악, 오른쪽의 스티브 잡스>



홈스테드 고등학교에 다니던 스티브 잡스는 우연히 스티브 워즈니악이라는 졸업생 선배와 친구가 된다.


워즈니악은 잡스보다 다섯 살 많고 전자공학에 더 깊은 지식을 보유했지만 그들은 공통점이 있다.


워즈니악도 어릴 때부터, 명석한 엔지니어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공학을 좋아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워즈니악은 잡스와 다른 점도 있었다.


"저의 아버지는 늘 제게 중용의 도를 가르쳐주셨어요. 스티브와 달리 상류사회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저는 부끄러움도 많이 타기도 하고 그저 엔지니어가 되는 게 제 꿈이었습니다."



워즈니악은 친구의 소개를 받아 홈스테드의 잡스와 만났던 것이다.


그렇게 전자 공학을 좋아하는 두 장난꾸러기의 팀이 이루어지고 잡스는 그를 마음에 들어했다.




4. 파트너십의 시작



어느 날 워즈는 해커들이 통신 기업(AT&T)의 네트워크 신호 복제를 통해 장거리 전화를 공짜로 이용한다는 잡지 기사를 읽었다. (그 당시 전화 비용은 비싼듯 하다.)


당장 그는 잡스에게 전화 해 이야기를 나누고 필요한 정보와 부품을 구해 고생 끝에 해커를 따라할 수 있는 '디지털 버전 블루 박스'를 만들었다.


그들은 박스로 처음 전화가 성공하자 누군지도 모를 전화 상대에게 "지금 우리는 공짜로 전화하고 있어요!" 비명을 지르며 좋아했다.





어쨌든 잘 작동하는 블루박스를 두고 잡스는 만들어 팔자는 제안을 워즈에게 했다.

그래서 기계를 워즈가 만들고 40달러의 비용이 든 기기를 잡스가 150달러에 팔았다.

이를 계기로 둘의 중요한 이정표가 세워진 셈이다.

워즈는 제품을 만들고 잡스가 제품을 판다!


잡스는 회상한다.

"한 100개 정도 만들었는데 거의 다 팔았지요."

그러나 잡스는 한 식당에서 총을 든 남자에게 블루 박스를 빼앗긴 후 그만두었다.


이 장난이 결국 그들이 장래에 제품을 만들고 모험(사업)에 나서도록 하는 첫 계기가 되었다.



5. 방황의 시작


잡스는 고3 때 크리스앤 브레넌이라는 가냘픈 소녀와 사귀기 시작한다.

그가 말했다.

"본격적으로 사귄 최초의 진정한 여자 친구였습니다."

훗날 브레넌은 말했다.

"뭐랄까, 그는 정상이 아닌 것 같았어요. 사실 그래서 그에게 끌린 거예요."

때로 그는 그녀에게 잔인할 정도로 차거웠지만, 무아의 지경으로 이끌어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도 했다.


그 시절 잡스는 눈을 깜빡이지 않고 상대를 응시하고, 침묵을 유지하다가 갑자기 날카롭게 말을 쏟아 내는 법을 완성했다.



6. 선불교와 채식주의, LSD로 영혼을 물들이다.


잡스는 성인이 되자 부모와의 갈등 끝에 학비가 가장 비싼 자유로운 리드 대학교로 입학했다.

그는 그곳에서 LSD(환각제)를 통해 영적 발견을 추구하기도 했다.


1972년 가을, 잡스의 입학식 쯤에 반항심에 부모가 캠퍼스에 발을 들이지 못한 적이 있었다.

"인생에서 가장 부끄러운 기억입니다. 부모님께 상처를 준 것이지요.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요. 사실 저는 고아처럼 보이고 싶어서 그랬던 거예요."






그는 대니얼 콧키라는 신입생을 만나 친하게 지냈다.

콧키와 그의 여자친구 엘리자베스 홈스와 함께 힌두교 사원의 종교 행사에 참여하기도 해 절밥을 얻어 먹었다.

"재미도 있었지만 그때 우리는 선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였거든요."


잡스는 인도식 명상실 또한 마련했다.



잡스의 선불교에 대한 열성은 그에게 깊이 뿌리내렸다.


"미니멀리즘적 미학과 강렬한 집중을 다 선에서 얻은 겁니다."



그리고 잡스는 프랜시스 무어 라페의 책 '작은 지구를 위한 식습관'을 읽고 단식, 극단적 채식주의 식성을 가졌다.


사과만 먹으며 몇 주를 버티기도 했다.


콧키도 따라서 함께 진정한 채식주의자로 변모했다.




7. 인생의 첫 번째 구루(힌두교어로 '스승')를 만나다



잡스는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인 로버트 프리들랜드를 만나게 된다.


잡스는 프리들랜드의 카리스마를 배우고 구루로 여겼다.


깨달음의 경지를 강렬히 확신하는 프리들랜드를 보고 잡스는 그가 자신의 자각 수준을 더 높혀준다고 표현한다.



프리들랜드 또한 잡스가 항상 맨발로 다니는 점, 그리고 응시와 침묵으로 사람을 지배하는 점을 보고 잡스를 좋아했다.


"잡스는 상대의 눈동자를 지그시 들여다보며 시선을 못 피하게하고 답을 얻어내게 만들었습니다."



잡스는 평생 써먹을 특징인 '현실 왜곡장'을 그에게서 배웠다.


현실을 자기 뜻대로 조종한다는 의미이다.


(잡스의 마스코트가 되는 힘으로써 계속 언급되니 금방 알게 될 것이다.)


상황을 주도하는 법 역시 그에게서 배운 것이다.



프리들랜드의 삼촌이 백만장자였는데 프리들랜드가 그의 89만 제곱미터 규모의 사과 농장을 관리했다.


잡스는 사과나무의 가지들이 제대로 자라도록 가지치기 작업을 관리했다.


(이 가지치기는 이후의 잡스의 사업 관리방식과 일맥상통한다. 쓸모없는 것은 과감하게 잘라낸다.)



그러나 프리들랜드는 그 사과농장의 가족 공동체를 무임금 노력 봉사 등 사이비 종교 지도자같이 관리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 이후로 잡스는 점점 그에게 환멸을 느껴가는 중이었다.




8. 궤도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에 눈뜨다



잡스는 리드 대학에서 필수과목을 이행해야 하는 학칙을 싫어했다.


그래서 그는 필수 과목을 거부하고 댄스 수업같은 것만 들었다.


"노동자 계층의 부모님이 평생 모은 돈을 제 학비로 모두 소진되는 것에 죄의식을 느꼈어요."



그래서 필수 과목을 듣고 싶지 않은 그가 자퇴도 생각했으나 놀랍게도 학교는 그를 용인해 주었다.


학생과장은 그가 등록금없이 원하는 수업을 듣도록 해줬다.



잡스는 캘리그래피 수강에서 다시 한번 예술과 기술의 교차점에 섰다.


덕분에 그는 나중에 모든 제품에서 기술에다 멋진 디자인과 외양, 느낌, 품위, 인간미, 심지어 로맨스까지 결합하려 애썼다.


"그 수업 덕분에 맥이 다양한 활자체와 조절된 폰트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9. 아타리에서 새로운 역할 모델을 만나다



1972년 2월, 잡스는 인기직장인 비디오게임 제조사 아타리의 로비에 들어섰다.


담당 직원이 수석 엔지니어 앨 알콘에게 말했다.


"웬 히피 녀석이 채용해 줄 때까지 나가지 않겠다고 하는데 경찰 부를까요?"


"아니요. 한번 데려와 보세요."


그렇게 잡스는 알콘을 만나 아타리 초기 직원이 됐다.


알콘은 회상한다.


"그 친구에게서 무언가를 볼 수 있었지요."



다른 직원이 와서 알콘에게 불평했다.


"냄새나고 다루기 힘든 히피 녀석을 왜 불러들인 거에요?"


잡스는 채식주의 습관이 체취를 막아준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샤워도 하지 않았다.



아타리 창업자 놀런 부시넬은 잡스와의 토론을 회상한다.


"제가 모든 건 인과관계에 따라 결정된다라고 결정론을 주장하면


잡스는 반대로 의지력으로 현실을 조정할 수 있다는 자유의지론(현실 왜곡장)을 내놓았지요."



잡스는 아타리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는 아타리 게임들의 단숨함의 가치를 꿰뚫었다.


"1) 25센트 동전을 넣으시오. 2) 외계인들을 피하시오."



잡스는 엔지니어링 회사를 직접 설립하고 망한 경험이 있던 론 웨인 직원과 친구가 되었다.


"론은 대단했어요. 회사를 직접 차리다니!"


하지만 론은 뼈아픈 경험이었을 뿐이라고 했다.




10. 인도 순례 여행



잡스는 알콘 덕분에 출장 겸 인도 순례 여행을 떠났다.


대충 거기서 평생 친구를 사귀고 힌두교 성자를 만났으며 인도 스님처럼 이마에 점 찍고 머머리가 되서 돌아왔다는 내용이다.


스즈키 순류와 고분 치노라는 스승들도 만났다.



이후 잡스는 강박적인 자아 탐구 열정때문에 심리 치료를 받기도 했다.


도중에 잡스는 친부모를 모른다는 사실때문에 고통스러워 한다고 털어놓았다.



잡스는 사립 탐정을 고용해 친부모를 찾을 생각도 했지만 폴 잡스와 클라라 잡스가 상처받을까봐 유보했다.




11. 해낼 수 있다고 믿게 해라



아타리의 부시넬은 잡스에게 자신이 보여준 게임 프로그램을 설계하라고 지시했다.


칩 50개 이하로 만들면 덜 사용한 칩 수에 비례해 보너스를 주겠다고 했다.


부시넬은 잡스가 뛰어난 엔지니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단지 워즈와 얼마나 잘 협업할지 볼 뿐이었다.


"워즈가 더 뛰어난 엔지니어였습니다."



잡스는 워즈에게 도움을 청하고 보상을 반반씩 나누자고 제안했다.





워즈는 자신의 손으로 게임을 제작할 생각에 싱글벙글했다.


하지만... 잡스는 사실과 다르게 꼭 나흘 안에 만들고 칩을 최대한 적게 사용해야 한다고 전달했다.


줄어든 칩의 보너스도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워즈가 회상한다.


"일반적인 엔지니어들은 2~3개월이 걸리는 과제입니다. 도저히 시간 안에 해낼 자신이 없더군요."





"그러자 잡스는 제가 할 수 있다고 확신을 심어 주었어요." (현실 왜곡장)


결국 그는 나흘 밤을 새며 일을 수행한다.


HP에서 근무하는 워즈는 낮 근무때 스케치 설계, 저녁엔 아타리에서 작업을 진행했다.


물론 잡스도 옆에서 도왔다.



그들은 놀랍게도 45개의 칩만을 사용하여 나흘 안에 완수했다.


워즈는 잡스의 말대로 수고비를 반반 나눴다.



그런데 워즈는 10년이 지난 후에야 잡스가 보너스를 받은 사실을 알았다.



"스티브가 따로 돈 쓸 데가 있었던 모양이에요..."





"그래도 저는 아직도 그가 왜 사실대로 얘기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안가요.


솔직하게 돈이 필요했다고 말하면 순순히 동의했을 거에요."



인터뷰중인 아이작슨이 이 일을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러자 잡스는 머뭇거리며 부인했다.


"어디서 그런 얘기가 나온 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워즈는 부시넬에게 직접 물어봐 사실 여부를 확인한 터였다.

아무튼 워즈는 그것이 잡스의 여러 자질 중 어두운 일면일 뿐이라며 더 이상 논하지 않기로 했다.


다시 잡스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 파트 마무리다.

부시넬이 말한다.

"나는 스티브에게서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엔지니어링 뿐만 아니라 사업적 측면도 능했어요.

나는 그에게 어떤 일이든 그것을 해낼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하면 해낼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것처럼 굴어라. 그러면 사람들은 그런 줄로 알 것이다.' "

(현실 왜곡장)




12. 홈브루 컴퓨터 클럽



워즈는 hp 게시판의 광고를 보고 컴퓨터광들이 모이는 홈브루 컴퓨터 클럽에 참석했다.


그는 별개의 키보드 입력을 처음으로 컴퓨터 모니터에 나타나게 만들었다.


PC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사건이다. (라고 한다... 이 쪽을 이해못해 내용이 부실하다 쏘링)



소식을 들은 잡스는 흥분해서 워즈를 따라 홈브루에 나가기 시작했다.


부끄럼쟁이 워즈를 대신해 당당한 잡스가 필요한 부품들을 흥정해서 얻어줬다.



점점 워즈의 작품인 (후에 애플 1이 될) 컴퓨터 주변으로 클럽 내의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제가 컴퓨터를 만든 것은 이들에게 공짜로 나눠 주고 싶어서였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그와 상반된 잡스의 가치관이 드러난다.


잡스는 그가 로열티도 지불하지 않은 채 공유하고 있는 사실에 아연실색했다.



잡스는 워즈의 창안물이 무 .료로 돌아다니는 것을 원치 않았고 그를 설득했다. 그리고 제안했다.


"인쇄 회로 기판을 만들어서 판매하면 어떨까?"


워즈는 회상한다.


"제가 근사한 무언가를 고안하면 잡스는 그걸로 수익을 얻을 방법을 생각해냈어요.


돈을 받고 컴퓨터를 판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어요."



떼돈을 벌 거라고 얘기하는 잡스가 더 나아가 제안한다.


"우리 회사 하나 차릴래?"


워즈는 절친한 둘이서 회사를 차린다는 말에 마음이 두근두근했다.



그렇게 둘은 어찌저찌 1,300달러의 초기 자금과 사업 계획을 확보했다!




13. 애플의 혁명적 탄생



두 잡스는 먼저 회사의 이름을 정해야 했다.


하루는 잡스가 사과나무 가지치기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워즈가 공항으로 그를 마중 나왔다.


사업 서류 제출이 다음 날까지이기 때문에 함께 차를 타고 가는 중에 그들은 고민했다.


잡스가 마침내 '애플 컴퓨터'를 제안했다.


"저는 평소에 과일만 먹는 식단을 가졌고 사과 농장에서 돌아오는 길이었고요.


'애플'은 생기있으면서 '컴퓨터'의 강한 느낌을 순화했어요.


또한 아타리(Atari)보다 전화번호부에 먼저 나올 수 있었구요."



그렇게 최종적으로 '애플 컴퓨터'라는 이름으로 정해졌다.


참 신선하고 똑똑하고 앞서 나간 선택이었다.


잡스가 회상한다.


"정말 엉뚱한 이름이었어요. 누가 봐도 어울리지 않는 조합 아닙니까! 결국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됐지만요."



하지만 워즈는 아직 HP 직원이기도 하고 사업에 투신할 마음의 준비가 안됐다.


잡스는 워즈를 설득하거나 두 스티브의 의견 충돌을 조율할 중재자 역할이 필요했다.


그래서 아타리의 친구 론 웨인을 사업 파트너로 동참시켰다.



여전히 HP에 마음이 가있는 워즈를 웨인이 설득해 워즈의 회로를 애플이 완전히 가질 수 있도록 했다.


웨인은 회사 지분 10퍼센트를 받고 언제나 두 스티브의 중재자가 됐다.



웨인의 회상이다.


"잡스는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도 거칠게 대해 목표를 달성할 재간이 있지만


워즈는 순진하고 부끄럼을 탔습니다.


잡스는 워즈의 공학적 천재성을


워즈는 잡스의 비즈니스 감각을 존중했습니다."



1976년 4월 1일, 그들은 계약서에 명시된 45%(잡스), 45%(워즈), 10%(웨인)의 각자 지분을 확인하고 서명했다.


그런데 얼마 안가 갑자기 웨인은 자신의 첫 사업이 실패한 PTSD가 와버려서 파트너 자격과 10%의 지분을 포기했다.


만약 그가 20 10(갤 금지어로 띄어쓰기)년까지 지분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가치는 약 26억 달러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20 10년 그는 정부 연금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처치였다.


"저는 그들의 열정에 동참할 배짱이 없었어요. 당시로선 최선이었습니다."



컴퓨터 상점을 운영해 온 폴 테럴은 자신의 매장을 전국적 체인으로 성장시킬 계획을 품고 있었다.


마침 스티브들의 컴퓨터가 테럴의 눈에 들어와 그들에게 조립된 컴퓨터 50개를 주문했다.


자금이 부족했던 스티브들은 힘들게 부품상에 외상을 받은 후 2만 5,000달러어치 주문을 진행했다.



그렇게 워즈와 잡스, 잡스의 동료와 옛 여자 친구, 잡스의 임신한 여동생까지 가족 모두가 모여 차고에서 애플 1 회로 기판을 만들었다.


전원 공급 장치도, 케이스와 머니터, 키보드도 없는 제품을 보고 테럴은 잡스를 뚫어져라 쳐다보았지만 어쨌든 테럴은 제품을 받고 돈을 잡스에게 지불했다.


한 달 후, 이윽고 애플은 수익을 내기 시작했고 잡스 옛 여자친구인 엘리자베스 홈스는 애플의 공식 회계 직원이 되었다.



워즈와 잡스는 애플 1을 팔아 줄 상점을 찾고 있었다.


이때 이 둘의 차이가 점차 드러나기 시작하기도 했다.


워즈는 제작 비용정도만 받고 마진을 거의 남기지 않고 싶어 했지만


잡스는 큰 이윤을 남기고 싶었다.


결국 잡스의 뜻대로 33퍼센트의 이윤이 붙도록 조치했다.



잡스와 워즈는 어느 호텔에서 개인용 컴퓨터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애플 1과 개발중인 애플 2를 박스에 소중히 품고 비행기에 올랐다.


잡스는 축제에서 다른 컴퓨터들을 보면서 애플 1이 기능적으로 밀리지는 않은 걸 확인했지만


키보드와 전원 장치, 깔끔한 디자인을 갖춘 완제품들을 보고 그렇지 않은 애플 1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애플 1>




14. 최초의 통합 패키지형 컴퓨터



잡스는 테럴의 말이 옳았음을 절감했다. PC는 완제품으로 조립된 패키지여야 한다.


잡스는 다음 버전을 멋진 케이스, 키보드, 전원 장치, 소프트웨어, 모니터까지 일체형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패키지형 애플 2를 개발하려면 상당한 자금이 필요했다.



어느 날 컴퓨터 대기업이 찾아와 애플 인수 제의를 했지만 잡스의 비싼 거래값을 요구하고 물건너갔다. 


이후 잡스와 워즈 사이의 미묘한 갈등과 의문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애플에 똑같은 기여를 하고 있을까?'


워즈는 마케팅 담당인 잡스보다 엔지니어인 자신에게 수익이 더 많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충돌이 시작됐다.


하지만 워즈는 잡스가 컴퓨터 클럽에서 제안을 하지 않았더라면 시작도 없었을 거라는 생각에 잡스와의 관계를 유지하기로 결심했다.


실제로 애플 2의 성공을 위해서 워즈의 제품 제작 이상의 잡스 역할이 필요했다.



애플 2의 제작이 시작되면서 중요한 과정만 열거하자면 이렇다.


잡스는 단순하고 깔끔한 플라스틱 케이스를 만들고, 


팬이 없는 전원 공급 장치를 위해 '몸값이 비싼' 홀트라는 자를 영입해 최초의 스위치식 전원 장치를 만들었다.


소음은 선불교 정신과 어긋나기 때문에 열이 적게 발생하는 스위치식을 이용해 팬을 제거했다.


잡스는 제품의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신경쓰던 아버지를 본받아 회로 기판의 줄이 삐뚤어졌다는 이유로 설계도를 폐기하기도 했다.



잡스는 일반 사용자의 부드러운 경험을 위해 컴퓨터 커스텀을 불가하게 만드려고 했지만


컴퓨터광들이 좋아하는 커스텀식 컴퓨터를 워즈가 밀어붙혀 결국 워즈의 뜻대로 설계됐다.


그로부터 잡스 스스로 워즈보다 힘이 약하다는 걸 느꼈다.




15. 애플의 마케팅 철학 - 공감, 집중, 인상



애플 2 완제품 생산 설비에 20만 달러가 필요했다.


잡스는 아타리의 부시넬에게 말했다.


"5만 달러 투자해주면 회사 지분 3분의 1 줄게요."


부시넬은 회상한다.


"제가 바보인가요. 당연히 거절했죠!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왜그랬나 몰라요. 울고 싶네요. 하하!"



부시넬은 대신 투자 회사 설립 경험이 있는 밸런타인을 소개해줬다.


밸런타인은 "사업 계획서나 제대로 쓸 줄 아는 전문가부터 먼저 데려오세요."


그렇게 잡스는 밸런타인의 소개로 능통한 전문가인 마이크 마쿨라와 만나 이야기를 진행했다.


마쿨라는 이후 20년간 애플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워즈는 회상한다.


"마쿨라는 야심가였어요. 그는 우리가 2년 내에 '포춘' 선정 500대 기업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어요.


실제로 그렇게 되기 까지 7년이 걸렸지만 어쨌든 마쿨라의 예견이 옳다고 입증된 셈이죠."



마쿨라는 최고 25만 달러까지 은행 대출 보증을 서주기로 했다.


그렇게 애플을 주식회사로 전환하고 마쿨라와 잡스와 워즈가 지분을 각각 26퍼센트씩 갖기로 합의했다.


나머지 지분은 다른 투자자를 위해 남겨뒀다.



성격때문에 회사 운영 대신 엔지니어 일만 하겠다는 워즈의 의견과 합의 후 워즈는 HP를 그만두고 애플에만 몰두하기 시작했다.


잡스, 워즈, 마쿨라 세 명이 공동 창업자로서 완전하게 모였다.


1977년 1월 3일, 드디어 애플 컴퓨터 주식회사가 공식 출범했다.





여기서부터 중요! ☆☆☆☆☆



마쿨라는 잡스에게 회사의 목표를 절대 돈으로 세우지 말라고 강조하면서 신념을 유지하라고 가르쳤다.


마쿨라는 '애플의 마케팅 철학'을 종이에 정리했다.



① '공감' - 고객의 욕구를 진정으로 이해한다.


② '집중' -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과감하게 눈을 돌려야 한다.


③ '인상' - 분위기가 기업을 만든다.



마쿨라는 세 번째 규칙에 덫붙힌다.


'사람들이 책을 판단할 때 기준으로 삼는 것은 표지다.


최고의 제품을 갖추더라도 그것을 형편없는 방식으로 소개하면 그것은 형편없는 것으로 인식된다.'



잡스는 회상한다.


"아이폰이나 아이패드가 담긴 제품 상자를 열 때, 


처음에 느껴지는 촉감에서부터 제품에 대한 인상이 확실하게 심겨야 합니다.


마이크가 제게 가르쳐 준 교훈이지요."




16. "단순함이란 궁극의 정교함이다"



잡스는 실리콘밸리의 홍보 전문가 레지스 매케나에게 끈질긴 구애를 해 그를 영입했다.


그리고 먼저 아트 디렉터 롭 자노프에게 회사 로고 디자인을 맡겼다.


하나는 온전한 사과 그림, 하나는 한 입 베어 먹은 사과 그림이었다.



잡스는 베어 먹은 사과를 선택했다.


황홀한 색조의 여섯 색깔 줄무늬로 로고 인쇄 비용이 많이 들기는 했지만 그의 마음에 들었다.




17. 애플 2, 세상 밖으로 나오다





1977년 4월, 샌프란시스코의 서부 연안 컴퓨터 박람회에서 애플 2를 세상에 선보일 예정이었다.


워즈가 말했다.


"스티브는 그 행사에 애플의 운명이 걸려 있다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훌륭한 회사라는 걸 세상에 보여줘야 했지요."



잡스는 마쿨라의 '인상' 철칙에 따라 부스에 검은색 벨벳과 조명을 더해 우아한 분위기로 탈바꿈 시켰다.


완성품이 세 대밖에 없었지만 뒤에 박스를 쌓아둬서 수량이 충분한 것 처럼 보이게 했다.


마쿨라는 좋은 재단사를 불러 잡스에게 근사한 양복을 입혀 줬다.



매끈한 베이지색 케이스의 애플 2는 칙칙한 금속 같은 다른 컴퓨터와 확연히 달랐고 그날 애플은 300대의 주문을 따냈다.




18. 새로운 사장을 영입하다.



애플은 이제 어엿한 정식 회사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잡스의 태도나 분위기는 책무에 걸맞게 고상해지지는 않았다.


채식주의 덕분에 샤워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잡스의 위생 문제도 있었다.



그래서 마쿨라는 마이크 스콧을 사장으로 영입했다.


스콧은 경력면에서도, 공학에 대한 지식 면에서도 훌륭했다.


워즈도 잡스와의 충돌이 성가셨던지라 그를 환영했다.


그의 임무는 곧 '잡스를 관리하는 것'이 됐다.



스콧은 정말 완강한 사람이기에 그 일이 가능했다.


잡스가 회상한다.


"스콧만큼 제가 고함을 자주 지른 상대도 없을거에요."



한번은 직원 이름표 번호때문에 갈등이 일어났다.


스콧이 워즈에게 1번을, 잡스에게 2번을 배정했다.


그러자 잡스는 자기가 1번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콧의 회상이다.


"그렇게 해 줄 순 없었습니다. 훨씬 더 기고만장해졌을 테니까요."



잡스는 불끈 화를 내면서 눈물까지 보였다.




잡스는 대신 해결책으로 자신에게 0번을 달라고 했다.


스콧은 고민했지만 임금 대장 명부의 은행 규칙상 불가능해서 잡스는 결국 2번으로 남아야 했다.



그 외에도 실용주의 스콧과 완벽주의 잡스의 충돌이 잦았다.


잡스는 애플 2 케이스의 베이지색이 마음에 안들어 다른 베이지색으로 변경하려했다.


심지어 그는 색상 전문 업체의 2000가지 종류의 베이지색을 보고도 마음에 드는 색이 없었다.



모서리의 둥근 정도를 두고도 잡스는 며칠을 고민했다.


스콧이 말했다.


"모서리가 얼마나 둥근지 그게 뭐가 중요합니까!"



그리고 잡스는 제품 보증 기간도 1년으로 하자고 고집했다.


당시 일반적인 기간은 90일이었다.


잡스는 이걸로 언쟁하면서 또 눈물까지 보인다.


결국 스콧이 양보했다.


그리고 워즈는 잡스의 무례한 태도에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다.



어쨌든 회사는 순항을 거듭하고 있었으며 애플 2는 수많은 기업과 가정에서 사랑을 받았다.


마쿨라의 소개로 선구적인 벤처 투자가 아서 록도 잡스와 만났다.



애플 2는 향후 16년간 다양한 모델을 출시하며 600만대 가까이 판매된다.


PC 업계를 탄생시킨 시발점 역할을 해낸 것이다.


워즈가 훌륭한 회로 기판과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덕분이기도 하지만


잡스가 전원 장치와 근사한 케이스 까지 갖춘 사용자 친화적 패키지로 변신시킨 덕이기도 하다.


훗날 레지스 매케나가 말했다.


"워즈가 놀라운 기계를 설계했지만, 잡스가 없었다면 아마 그 물건은 컴퓨터 애호가들이 드나드는 상점에만 남아 있었을 겁니다."




19. 잡스의 딸, 리사



앞서 언급했듯이 잡스는 고등학생 때 크리스앤 브레넌과 사귀었다.


하지만 둘은 성인이 되서 사이가 멀어졌는데도 브레넌이 임신을 해버린다.



잡스는 끝까지 자기가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검사 결과 앞에서 그는 어쩔 수 없었다.


리사라는 딸이 태어나고도 그는 끝까지 리사와 브레넌을 무시하려고 했지만 소송에서 패해 양육비 책임을 지게 된다.



잡스는 그녀들과 떨어져살고 나중에 성장하는 리사와 친해지긴 하지만 딸에게 잘해주지 못했던 점을 몹시 후회한다.




20. 애플 2를 이을 새 생명 프로젝트



애플은 차고에서 시작해 애플 2 덕분에 1981년 컴퓨터 판매량 21만 대의 회사로 급부상했다.


하지만 애플 3가 참담하게 실패한 이후 대책이 필요했다.



이후 잡스는 죄책감때문인지 딸의 이름을 본따 '리사' 컴퓨터를 만든다.


그 역시도 성공하지 못하자 잡스는 점점 초조해졌다.



실력있는 빌 앳킨슨이 애플에 합류하고 어느 날 그의 스승인 래스킨은 잡스팀에게 어떤 연구 센터를 소개한다.


제록스의 팰러앨토 연구 센터(PARC)라는 곳인데 잡스는 그곳에서 앨런 케이를 만났다.


'소프트웨어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스스로 자신의 하드웨어를 만들어야 한다.'라는 격언을 남긴 사람이었다.



당시 컴퓨터는 대개 검은 화면에 초록색 디스플레이였고 이 위에 제한된 문자만 출력했다.


하지만 PARC에는 선구적인 개념이 있었다. 픽셀을 사용해서 화려한 그래픽과 폰트, 다채로운 디스플레이가 가능한 방식이었다. 비트맵이라고 불린다.



잡스는 그 기술에 접근할 수 있게 해준다면 애플에 100만 달러 투자를 허용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렇게 제록스의 애플 100만 달러 주식은 1년 후 1760만이 되었다.


하지만 더 이득을 본 쪽은 애플이었다.



원래 PARC는 애플로부터 기술을 숨기려고 했었지만 잡스는 집요하게 그들로부터 기밀을 이끌어내고 배웠다.


현대식 주방 용품처럼 대중적이고 사용하기 쉬운 그런 컴퓨터의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당신들은 돈방석 위에 앉아 있다고요. 대체 왜 이런 걸 활용하지 않느냐 말이에요!"



그렇게 애플은 PARC에서 본 걸 직접 구현하기 시작했다.




21.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





잡스는 PARC를 가져다 쓴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피카소는 '좋은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훌륭한 아이디어를 훔치는 것을 부끄러워한 적이 없습니다."



애플에서 구현 과정 중의 앳킨슨의 업적 중 하나는 이렇다.


'맨 앞의' 창이 그 '뒤에' 있는 창들 위로 겹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당연하지만 그 당시에는 아니었다고 한다.)


마치 책상 위의 서류들을 뒤섞는 것처럼 자유로운 움직임을 말한다.


앳킷슨은 불가능한 줄로만 알았지만 모르고 일단 덤볐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한다. 


(현실 왜곡장)



또한 잡스는 부드러운 스크롤도 강조했다.


글자들이 흔들려선 안 되고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이동해야 했다.


앳킨슨이 회상한다.


"잡스는 모든 사용자가 모든 요소를 편리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어요."



하지만 여러 보수적인 엔지니어들은 잡스의 간섭과 모욕적인 언사에 불만스러워했고 갈등이 빚기 시작했다.


스콧과 마쿨라는 애플의 질서 확립에 관심이 많았고 잡스를 '리사' 프로젝트의 통제권을 빼앗았다.


연구 및 개발 담당 부사장 직함도 박탈했다.





잡스는 마쿨라에게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22. 애플의 기업공개와 스톡옵션



1977년 1월 애플 컴퓨터 주식회사 출범 때 회사 가치는 5,309달러였다.


그 후 채 4년도 되지 않아 기업공개를 하자 1980년 12월 말 애플의 가치는 무려 17억 9,000만 달러였다.



잡스는 성과가 있었던 직원에게만 스톡옵션(주식 매입권)을 부여했다. 초기 멤버의 친구라는 예외도 없이 성과로만 말이다.


반면 워즈는 따듯한 마음으로 직원 여러 명에게 낮은 가격으로 주식을 줬다.


잡스로부터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이들까지 무상으로 자기 지분을 나눠주었다.


잡스가 말했다.


"어린애 같군."



기업공개 이후 공모가 주당 22달러에서 주가가 29달러로 올라갔다.


잡스는 그렇게 스물다섯의 나이에 무려 2억 5,600만 달러 자산의 거부가 되었다.





잡스는 말한다.


"애플의 많은 사람들이 돈을 만지기 시작하자 고급 자동차를 모는 등 다른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아내는 성형수술을 자꾸 해서 기괴한 모습으로 변해 갔습니다.


전 나의 돈이 내 인생을 망치게 두지 않습니다."



잡스는 자선과 거리가 먼 사람인 대신 부모인 폴 잡스와 클라라 잡스에게 크게 베푼다.


75만 달러어치 주식 선물, 1년에 한 번씩 크루즈 여행 등을 받았다.


"부모님은 기존 삶에도 만족하는 분들이셨기 때문에 새 집을 장만하지는 않았어요."



애플이 급성장하며 잡스의 얼굴이 매체에 떠오르고 대학 특강을 하러 돌아다니기도 했다.




23. 래스킨과 잡스의 맥 프로젝트



1976년에 잡스는 애플 2 매뉴얼 작성을 위해 컨설팅 회사의 래스킨에게 연락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래스킨은 매뉴얼 담당 관리자로 애플에 합류했다.



그는 대중을 위한 저렴한 컴퓨터를 만들고 싶은 꿈이 있어서 '애니' 프로젝트의 책임자를 맡았다.


그러나 래스킨은 컴퓨터에 여성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 성차별주의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이 좋아하는 사과 품종인 '매킨토시(McIntosh)'의 새로운 이름을 붙혔다.


하지만 오디오회사 제품 매킨토시 레버러토리와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Macintosh'로 결정했다.



그는 모두가 사용하기 쉬운 1,000달러 짜리 컴퓨터를 구상했다.


저렴한 부품으로 말이다.


무작위로 선택한 어떤 집에도 컴퓨터가 놓여 있어야 진정한 '퍼스널' 컴퓨터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80년대 초반, 매킨토시 프로그램의 존재감은 미미해서 애플 본관에서 떨어진 초창기 건물에서 진행됐다.


잡스는 래스킨의 비전에 흥미를 느꼈지만 가격을 위해 타협하는 방식을 싫어했다.


잡스는 그에게 조언했다.


"혼을 빼놓을 만큼 뛰어난 제품을 만드는 일에 집중하세요."


그러나 래스킨은 빈정거렸다.



잡스는 리사 프로젝트에서 힘을 잃고 난 후 대신 매킨토시 프로그램을 포착했다.


잡스가 매킨토시에 관심을 쏟으면서 래스킨과의 갈등이 시작됐다.


앳킨슨은 말한다.


"스티브가 주도권을 가져오는 게 옳았어요. 덕분에 세상 사람들이 더 나은 컴퓨터를 만났으니까요."



일부 팀원은 잡스에게 불만을 품었고 일부는 그의 카리스마와 영향력을 인정했다. 리더쉽 말이다.

두 사람의 갈등이 깊어지자 스콧과 마쿨라는 잡스와 래스킨을 불렀다.

스콧과 마쿨라는 매킨토시 프로젝트가 본관과 떨어진 장소에서 한다는 점을 고려해서 잡스와 거리를 두기위해 잡스의 손을 들어줬다.

래스킨은 그렇게 애플을 떠났다.


직원 앳킨슨은 말한다.

"이후에 래스킨은 캐논 사에서 원하는 제품을 개발했지만 완전히 실패했어요.

반면 스티브는 야무진 맥을 탄생시켜 역사의 한 획을 그었어요."

래스킨처럼 가격 타협을 해 1,000 달러에 맥을 팔았다면 스티브는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24. 잡스의 승리


잡스는 허츠펠드같은 뛰어난 애플 2 팀 직원을 대뜸 자신의 맥 팀으로 훔쳐가기도 했다.


잡스 : 당신 좀 쳐요?

허츠펠드 : 물론이죠.


잡스 : 그럼 이제부터 당신은 맥 팀이에요. 빨리 따라오세요.

허츠펠드 : 네? 아직 애플 2 작업 안끝났는데요?


(잡스가 그의 컴퓨터 코드를 뽑아버리며)


잡스 : 알빠요! 그건 어차피 몇 년안에 사장될 모델이란 말이요! 미래는 매킨토시이니 당장 맥 팀으로 갑시다!



그렇게 허츠펠드는 자료를 모두 날려먹고 맥 팀으로 납치당했다.




잡스의 채용 방식도 재밌다.


잡스는 지원자를 제품이 놓인 방으로 부른 후 천을 걷고 보여주어 지원자의 태도를 살폈다.


지원자가 눈을 반짝이면서 제품을 만지작거리면 잡스는 미소를 지으며 합격 도장을 꽝 찍어줬다.



한편 사장 스콧이 질병을 앓고 정리 해고로 직원들에게 신망을 잃자 잡스는 그를 쫓아낼 궁리를 한다.


스콧이 휴가를 간 사이 잡스는 경영진 회의에서 그를 다른 사람으로 대체하는데 일조했다.


그렇게 마쿨라가 대신 임시 사장직을 맡고 잡스는 맥 팀을 이끌 권력을 얻는다.




25. 현실 왜곡장



'현실 왜곡장'을 간단하게 말하면 이렇다.


'하면 할 수 있다!'


사람을 극단으로 밀어붙이면서 나오는 일종의 최면이다.



워즈는 말했다.


"대기업 IBM에 비해 아주 적은 자원으로 컴퓨터 역사의 방향을 바꿀 수 있었던 건 잡스의 마법 덕분이에요."


실제로 직원들은 그 마법을 좋아했으며 티셔츠에 '현실 왜곡장'을 적어 만들어 입었다.



또한 잡스는 현실 따위가 자기를 붙잡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현실의 규칙은 잡스에게 적용되지 않는다고 표현하는데 그의 의지를 밀어붙일 수 있는 원동력이다.



잡스는 사람을 뭉개는 것 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느낀다.


하루는 잡스가 대뜸 앳킨슨의 부하가 있는 칸막이에 들이닥쳐 그의 성과를 보며 평소처럼 소리 질렀다.




"이거 쓰레기군!"



하지만 부하는 의연하게 대처한다.




"아닙니다, 이게 최선의 방법입니다. 이유는 어쩌구 저쩌구..."



그러자 잡스가 유유히 물러섰다.



잡스를 잘 알던 앳킨슨이 평소에 그의 부하들에게 가르친 덕분이다.


"잡스가 '이거 쓰레기잖아'라고 하면 '이게 어째서 최선의 방법인지 말해 보라.' 라는 의미로 해석하면 됩니다."



잡스의 이런 점은 그의 노빠꾸 성격과 완벽주의와 제품에 대한 열정이 만났기 때문이다.


잡스의 언성을 버틴 직원은 강해지고 그렇지 못한 직원은 상처받고 회사를 나갔다.


잡스는 말한다.


"A급 직원들은 함께 일하는 걸 좋아하고 다른 A급 직원들을 불러 모읍니다.


그러나 B급 직원은 C급 직원을 부르고 악순환을 야기합니다.


맥 팀 직원들에게 물어보세요. 누구나 그들이 치른 고통에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얘기할 겁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직원이 그렇다고 했고 잡스를 따랐다.




전편 끝!


다음 중편은 매킨토시 팀의 본격적인 스토리로 시작이다.


900 페이지의 벽 쉽지 않다... 다음부터 더더욱 요약에 신경쓰겠다.




본인은 책을 처음 받았을 때 잡스의 전기 아니랄까봐 표지와 질감이 상당히 고급져서 좀 놀랐다.


잡스의 열정을 음미하거나 소장용으로 도서를 원한다면 지금 즉시 구매! (광고 아님)





『스티브 잡스 - 월터 아이작슨  (민음사)』




<잡스와 매킨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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