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사르 - 파르살루스 전투
폼페이우스와의 최후의 결전으로 이 전투는 테실리아의 평원에서 펼쳐졌는데
카이사르의 군대는 다 합쳐도 2만 3천 정도였고 폼페이우스는 4만 5천이 넘었다
그러나 카이사르군은 고작 200~1200명만 죽었고 폼페이우스군은 최소 6천명 이상이 전사 했다
그야말로 카이사르의 압승이였다
그렇게 이 전투의 승리로 로마 공화정의 숨통도 같이 끊어지고 카이사르의 종신 독재자의 길이 열리게 된다
아우구스투스 - 악티움 해전
로마내전의 완전 종식을 알리는 전투로 제정 로마의 서막을 열었다
당시 카이사르의 뒤를 이은 아우구스투스와 안토니우스와의 최후의 전투였다
이 때 아우구스투스의 전력은 배 400척에 19,000명 정도였고 안토니우스는 배 200척에 25,000명정도였다
웃긴건 패배 원인인데 이 당시 안토니우스의 섹파였던 클레오파트라도 참전 했는데 아우구스투스의 군이 너무 쌔서 빤스런 쳤는데
이때 철수 신호를 못 본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가 튀는거보고 졌다고 생각해 본인도 따라 튀었다가 졸지에 장군이 튀어버리니 남은 병사들의 사기가 곤두박질 쳐서 진거다 ㅋㅋ
키루스 대제 - 팀브리 전투
키루스 대제는 이란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황제로 이때 페르시아 제국은 최절정기를 맞는다
이때 리디아를 확실하게 정복한 팀브리 전투는 대규모 육지전으로 중동사 최대의 전투 중 하나다
당시 크세노폰의 기록에 따르면 키루스의 군대는 총 19만명이었고 이 중 페르시아인은 약 7만명정도였다는데 그야말로 제국다운 다민족군이였다
그리고 리디아는 그보다 2배는 더 많은 약 42만이였다 그러나 키루스 대제는 이를 깨부수고 14일간의 사르디스 공성전을 끝으로 리디아 정복에 성공했다
더욱 놀라운건 군사가 2배 더 적음에도 키루스는 피해를 크게 보지 않고 리디아군만 대거 갈려나갔다
알렉산더 대왕 - 가우가멜라 전투
다리우스 3세의 페르시아 제국을 사실상 멸망 시킨 전투다
당시 알렉산더 대왕의 병력은 현대 사학계 추정 47,000정도로 보고 있고
다리우스 3세는 5만~12만 정도로 보고 있다
일단 페르시아의 고대 사서엔 25만에서 100만이라는데 당연 씹과장이다
결과는 다리우스 3세의 대패로 병력이 궤멸수준이였다고 한다
을지문덕 - 살수대첩
한민족 최대의 단일 육지 전투다
근데 고구려군의 병력이나 사망자수는 고구려 사서 신집5권이 소실 돼 알수가 없다
일단 중국측 기록뿐인데 중국의 기록엔 수나라군 30만 5천명이였고 고구려군이 거짓 항복후에 따라가 싸그리 도륙 냈다고 한다
이 때 살아돌아간 수나라병사가 고작 2700명 남짓이라 하니 당시 고구려군도 최소 수만의 병력을 동원 했던건 확실해 보인다
그리고 이 전투 이후 한민족계 그 어떤 나라에서도 이정도 규모의 단일 육지전을 펼치지 못했다
강감찬 - 귀주대첩
당시 거란족은 발해도 멸망 시키고 그 기세를 몰아 막강한 기병으로 동아시아 최강의 군대였다
현대에는 대포와 탱크의 발달로 기병이 쇠퇴했지만 냉병기때는 기병이 최강의 병기로
당장 중무장하고도 말이 달리는 속도가 45~50km는 된다고 하는데 이런애들이 수만명 돌진해 온다고 생각해보자
근데 거란은 그런 기병을 약 10만명이나 이끌고 고려를 정복하러 왔다ㄷㄷ
이에 강감찬은 그 수의 두배인 20만명의 보병을 모았다곤 하는데 아무리 병력이 2배라도 보병으로 기병 10만을 당해내는건 매우 어려운 일인데 강감찬은 이걸 해냈다 ㄷㄷ
그야말로 중세 한국사 최고의 전투였다
징기스칸 - 야호령 전투
당시 떠오르는 신흥제국 몽골의 대칸 징기스칸의 미친 군사능력을 보여준 전투였다
징기스칸은 약 10만의 몽골 기병으로 3.5배 많은 금나라 주력군 35만명을 궤멸 시켰다ㄷㄷ
당시 금나라는 건국 12년만에 송나라 영토를 반갈죽할만큼 존나 쌨는데 총병력이 무려 약 90만~100만이였다
그 중 주력군이 약 70만 정도였는데 이 야호령 전투에서 징기스칸 한명한테 주력군 절반이 한순간에 싹 갈렸다
다만 징기스칸도 이후 금나라를 멸망 시키진 못했다 일단 체급상 금나라가 너무 크기도 하고.. 그래서 유언도 남송과 힘 합쳐서 반드시 금나라를 멸하라였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이순신 - 명량해전
한국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정도의 기적 같은 대해전이므로 설명 생략함
나폴레옹 - 아우스터리츠 전투
그야말로 나폴레옹 최고 전성기를 보여준 전투로 적들도 "이새끼를 어떻게 이기노.." 좌절감을 느낀 전투다
때는 1805년 나폴레옹군 7만5천과 대프랑스 동맹군 8만 5천(오스트리아국+러시아군)이 오스트리아의 아우스터리츠에서 정면으로 맞붙은 전투였다
이 때 나폴레옹군의 사상자는 8000여명에 부상자는 약 6000명이였고 오스트리아+러시아 연합군은 15,000명에 부상자만 27,000명이였다
심지어 사실상 이 전투의 여파로 그 다음해에 신성로마제국도 멸망 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