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영대장(종2품)으로 승진되고 함경도진휼사로 임명되었다.
당시 함경도에는 기근이 들어 백성들이 굶어 죽고 있어서,
박문수는 경상도의 곡식 1만 석을 실어다가 함경도의 백성들을 구제하였다.
이로 인해 송덕비도 세워지는 등 칭송을 받았는데, 문제는...
사실 이건 불법이었다.
사전 보고 없이 멋대로 다른 고을의 곡식을 옮겼기 때문이다...
이때 유명한 말이...
이후 황해도수군절도사(정3품)로 좌천되었다.
당시 상황은 가관이었다.
황해도수군절도사 박문수
"당선(중국 배)이 우리 해역에 자주 침범하여 고기 잡고 아주 개판이노? 느그들 뭐했노."
당시 조선에서는 명나라, 청나라 시대 중국인의 어선을 '황당선' 또는 '당선'이라고 불렸는데,
이 짱깨 어민들은 조선의 해역에 자주 침입하여 골칫거리가 되었다.
특히 조선 어민들의 조업권과 생계권을 위협하거나
아예 서해 무인도에 해적기지를 차려 웅거하기도 하여
조선 중기에는 수군을 황해로 출동시켜 중국 해랑적을 토벌하기도 하였다.
황해수영 조선군 관할지역에서도 청나라에서 넘어온 중국어민의 불법 조업이 계속됐는데,
당시 박문수는 영조에게 예산을 요구한 모양이다.
황해도수군절도사 박문수
"전하... 중국 배가 여름이 되면 오지 않는 해가 없는데,
그들이 우리 법을 무시하고 멋대로 하는 습관이 더욱 조장되고 있습니다.
지금 최상의 계책은 배를 많이 만들어 밤낮으로 띄워 중국 배의 이익을 빼앗는 것이 제일이기에
비선 20척을 만들려고 하는데 본영(황해수영)에 돈이 없습니다...
따라서 유고전과 별비전(별도로 비축한 돈, 즉 예비비) 각 200냥을 내어주시면 배를 만들어 쓸 수 있겠습니다."
좌의정(정1품 재상) 송인명
"전하, 황해도수군절도사 박문수의 말을 따르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옆에 있던 고위관료 송인명도 박문수의 의견에 동조했으나,
아들 뒤주 삶아먹은 영조의 말이 걸작이다.
영조
"충무공 이순신은 전쟁통에도 능히 배를 만들었는데,
지금 같은 (평화로운) 때에 돈 400냥을 마련하지 못해 이런 청을 한단 말이냐?
스스로 마련하여 배를 만들라."
이때 형조 참판 이주진이 박문수를 동조했으나...
형조 참판(종2품) 이주진
"박문수가 황해도수군절도사로 새로 부임했기에 이런 요청이 있는 것입니다만,
세금이 잘 걷히지 않아서 전라도의 풍요로움에 비하면 부족한 겁니다."
영조
"싸가지 없게 어떻게 임금 앞에서 각 고을의 재정에 대해 비교할 수 있느냐. 추고(반성)해라."
결국 박문수는 예산을 배정받지 못했고,
뭐 어떻게 자력했는지는 의문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별 기록이 다 있노...
- The end -
<출처>
조선왕조실록
영조실록 59권, 영조 20년 2월 27일 을해 2번째기사 1744년 청 건륭(乾隆) 9년
황해 수사 박문수는 황당선의 어로와 밀무역을 근절시키기 위한 계책 등을 아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