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대륙을 호령한 몽골 제국의 말발굽은 고려라고 피할 수 없었다
고려는 30년에 걸친 전쟁 끝에 1259년 몽골과 강화조약을 맺게 되고 영토까지 일부 할양하며 사실상의 속국이 된다
이후 고려 왕실에는 쿠빌라이 칸의 딸, 즉 칭기즈 칸의 증손녀인 제국대장공주를 시작으로 원나라의 황녀들이 대대로 왕비로 들어오면서 충선왕을 시작으로 칭기즈 칸의 피가 흐르게 된다
그렇다면 현재 2만여 왕씨들의 몸에는 미약하게나마 칭기즈 칸의 피가 흐를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고려 왕실의 직계 후손들은 조선 건국 후 왕씨 몰살 당시 탄압을 받아 사실상 후손이 없는 상태이다
현재 남은 개성 왕씨의 90%를 차지하는 동양군파는 왕건의 아들 효은태자로부터 갈라져 나와 전혀 관계가 없다
나머지 분파들도 대부분 원 간섭기 이전인 고종 대에 갈라져 나와 몽골 혈통이 섞이지 않았다
그러나 단 하나, 시중공파는 충정왕의 서자 시중공 왕제(王濟)로부터 유래해 유일하게 칭기즈 칸의 피가 흐르는 왕씨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몇 가지 의문점이 있는데, 우선 충정왕은 겨우 만 14세의 나이로 폐위되어 다음 해에 독살당한 운명이었다
게다가 고려사에 왕제의 이름이 나오지 않을 뿐더러 '시중' 이라는 명칭은 충정왕을 폐위하고 왕위에 오른 공민왕이 개칭한 것으로 나온다
게다가 국무총리급 고위직이므로 어린 아이에게 줄 직책은 더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왕제를 실존인물로 볼 여지는 남아있기는 하다
우선 전근대에는 결혼을 빨리 하여 자손을 일찍 보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어린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만약 왕제가 실존인물이라면 공민왕~우왕 초기까지는 정통성 문제로 중앙에 등장하기는 커녕 목숨을 부지하는 것 조차 다행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1388년 위화도 회군으로 고려 왕실이 완전히 허수아비가 된 후 폐가입진을 내세운 이성계 일파가 왕제를 찾아 일종의 명분쌓기 명예직 개념으로 수여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실제 고려 후기 기록을 보면 조선에 비해 부실해 문하시중이 정확히 제수된 시기가 나오지 않고 누락된 인물도 보이는 등 여지는 있다고 볼 수 있다
아니면 사후 추증의 방식으로 시중공이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을 수도 있다
만약 주변에 시중공파 왕씨인 친구가 있다면 얼굴을 잘 살펴보자
어쩌면 칭기즈칸과 비슷한 곳이 한 군데쯤은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