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수아크 발림빙 지역에 사는 오랑우탄 '라쿠스'가 얼굴 상처에 항균과 진통 성분 등이 있는 식물 즙을 바르는 것이 목격됐다. Saidi Agam/Suaq Project 제공 오랑우탄이 약효가 있는 식물을 상처에 바르는 모습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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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수아크 발림빙 지역에 사는 오랑우탄 '라쿠스'가 얼굴 상처에 항균과 진통 성분 등이 있는 식물 즙을 바르는 것이 목격됐다.
오랑우탄이 약효가 있는 식물을 상처에 바르는 모습이 야생동물 최초로 관찰됐다. 인간이 아닌 동물도 아플 때 특정 식물을 섭취하는 등 스스로 치료하는 행동을 하지만 치유 효과가 있는 식물로 상처를 치료하는 사례는 그간 보고된 적 없다. 의학적인 상처 치료 행위가 인간과 오랑우탄의 공통 조상에서 나타난 행동일 수 있다는 관점을 제시한다.
이자벨 라우머 독일 막스플랑크 동물행동연구소 연구원팀과 인도네시아 국립대학이 함께한 공동연구팀은 야생 오랑우탄이 염증과 통증 완화 성분이 있는 식물 수액을 얼굴 상처에 반복적으로 발라 상처를 치료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연구결과를 2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츠'에 공개했다.
연구팀은 멸종 위기에 처한 수마트라 오랑우탄(학명 Pongo abelii) 약 150마리가 서식하는 인도네시아의 수아크 발림빙 지역에서 오랑우탄을 관찰하던 중 '라쿠스'라는 이름의 수컷이 이웃 수컷과 싸우다가 얼굴에 상처를 입는 것을 발견했다. 라쿠스는 인도네시아 말로 '욕심쟁이'라는 뜻이다.
덩굴식물인 아카르 쿠닝(학명 Fibraurea tinctoria)의 잎에서 나온 즙은 염증과 통증 완화 성분이 들어 있다.
부상 3일 후 라쿠스는 아카르 쿠닝(학명 Fibraurea tinctoria)이라는 덩굴식물 잎을 선택적으로 뜯어 씹은 다음 그 즙을 7분 동안 얼굴 상처 부위에 정확하게 바르는 작업을 반복했다. 마지막으로는 씹은 잎을 상처 위로 완전히 덮었다. 라쿠스가 사용한 식물은 진통과 해열 효과로 유명하다. 식물 속 화합물을 분석한 결과 항균, 항염, 항산화 등 상처 치유와 관련된 성분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라쿠스를 며칠간 관찰한 결과 상처의 감염 흔적은 보이지 않았고 부상 후 8일이 지나자 상처는 완전히 아물었다. 또 라쿠스는 상처를 입었을 때 평소보다 더 많이 쉬는 것으로 관찰됐다. 수면 중에는 단백질 합성이나 세포 분열이 증가해 상처 치유를 돕는다.
동물의 자가 치료 행동을 분석할 때는 얼마나 의도적인지가 중요하다. 연구팀은 "라쿠스가 다른 부위는 바르지 않고 얼굴 상처만 선택적으로 여러 번 반복 치료했기 때문에 의도적인 행동으로 보인다"며 "전체 과정에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라쿠스의 치료 행위는 오랑우탄의 특성이 아닌 개체의 특별한 행동이라는 분석이다. 연구 현장에 사는 오랑우탄들은 약으로 쓰인 식물을 거의 먹지 않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식물을 먹다가 실수로 상처를 만져서 식물의 즙을 상처에 발랐고, 즉각적인 진통 효과를 느껴 이를 여러 번 반복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관찰된 오랑우탄의 행동은 유인원 종에서 의학적인 효과가 있는 식물을 이용해 적극적으로 상처를 관리하는 최초의 사례로 인간의 상처 치료에 대한 기원에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할 수 있다. 연구팀은 "인류와 유인원의 마지막 공통 조상이 이미 상처에 '연고'를 바르는 행동을 보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