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여객선 타이타닉호는
이상하게도 그 명성에 비해서는
별로 남아있는 사진이 없다.
끽해야 건조 과정에서 찍힌 사진들이거나
출항하기 전 찍힌 사진들이 대부분으로,
대부분 언론에서는 이런 사진들을 돌려쓰고 있는 중이다
그 이유 중 첫 번째는
1912년 당시 사진기는 고가의 사치품이었으며
또한 타이타닉이 속한 선사 화이트 스타 해운은
당시 올림픽급 여객선의 두 번째 배였던 타이타닉호보다는
이미 운영 중이던 올림픽호의 이미지를 더 신경썼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 이유로는
아무도 타이타닉이 첫 항해에 침몰할 줄은 몰랐다
당시 최신 기술로 만들어진 현대 문명의 자랑거리가 설마 빙산에 박아 가라앉을 줄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그러나 사진가 겸 예수회 신부 프란시스 브라운에 의해서
타이타닉에 대한 매우 많은 사진들이 보존될 수 있었다.
이는 당시 브라운의 미칠 듯한 운 때문이었으며,
이 사람마저 죽었으면 현재 타이타닉에 대한 자료들은 반토막이 났을 것이다
타이타닉은 영국 사우샘프턴에서 출항하여 미국 뉴욕으로 가는 정기여객선이었다.
그러나 직통으로 가는 배는 아니었는데,
선사에서 더 많은 승객들을 태우기 위해
프랑스의 셸부르와 아일랜드의 퀸즈타운에 기항한 후 뉴욕으로 가는 방식이었다
브라운은 삼촌에게서 선물로 사우샘프턴에서 퀸즈타운으로 가는 타이타닉 1등석 티켓을 받았는데,
이 때문에 그는 사진기를 들고 타이타닉에 승선할 수 있었다.
브라운은 당시 흔치 않았던 사진기를 들고 있었기 때문에
타이타닉의 승객들은 흔쾌히 그에게 피사체가 되어주었다.
또한 그가 1등석 승객이었기 때문에
2/3등석 승객들에 비해 더 많은 곳을 방문할 수 있었는데
때문에 타이타닉의 곳곳을 찍어서 기록으로 남길 수 있었다.
양묘 과정 등
온갖 사진을 찍으며 알차게 타이타닉을 돌아다니던 중
브라운은 한 1등석 승객과 친해지게 된다.
브라운이 그에게 "전 퀸즈타운에서 내립니다"라고 하자
그 승객은 브라운에게 "돌아가는 표도 제가 사드릴 테니 이번 여행을 같이 보내면 안되겠습니까?" 라며 솔깃한 제안을 한다.
그러나 브라운은 당시 예수회 교육생 신분이었기 때문에 마음대로 일정을 바꿀 수 없었고
상관에게 앙망문까지 썼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퀸즈타운에서 안 내리면 알지?" 였다
결국 브라운은 퀸즈타운에 타이타닉이 기항했을 때 그에게 작별 인사를 했고
아쉬웠는지 대서양을 향해 나아가는 타이타닉을 마지막으로 찍으며
수평선에서 배가 사라질 때까지 한참 동안 그곳을 바라보았다.
3일 후 타이타닉은 대서양 아래로 가라앉았다.
브라운 외에도 사진기를 가진 승객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침몰 당시 다 가라앉았기 때문에
공식적인 타이타닉의 마지막 사진은 이 사진이며
이후 타이타닉의 모습이 다시 필름에 담기기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