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피로를 늦잠으로 한껏 풀고
파란 하늘이 나를 맞이했다
오늘은 하루종일 친구랑 분리해서 다니는 일정이라
오늘은 다시 혼여로 돌아가는 격이었다
역시나 늦게 나오니 수학여행 인파로 숨이 막히는 교토역
브런치는 그냥 오후의 홍차로 때우고 열차에 몸을 실었다
도카이도 산요 본선의 힘으로 히에이잔사카모토는 15분컷이기 때문이다
갓갓 와이드패스를 개시한 날이라 나는 교통면에서는 무적이었다
사카모토에 도착해서 당장 느낀 소감은
타시카니 엔랴쿠지 같은 종교적으로 거룩한 절이 영향을 미친 땅이다보니
절이나 신사가 굉장히 많다는 것이었다
관광지도를 보면 수도없이 많은 절과 신사가 엔랴쿠지에 이르는 언덕을 사수하고 있다
엔랴쿠지가 있는 땅이라 그런지
아니면 그런 땅이기에 엔랴쿠지가 들어선 것인지
11짤의 절은 엔랴쿠지 창건자 전교대사가 태어난 절로
거대한 나무가 보인다면 그곳이 바로 쇼겐인이다
8짤의 신사는 그 역사가 굉장히 깊다
아직 일본신화가 본격적으로 신토사상에 뿌리내리기 전
우물의 신인 미즈하를 모신 굉장히 원형에 가까운 신사이기 때문이다
소바집이 있는 게이한 사카모토선 위부터는 이렇게 가로수길이 조성되어있다
그리고 역시나 수많은 신사와 절이 그 옆에 위치한다
수많은 절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사카모토 케이블 근처로 오면
옛 치쿠린인이 반겨준다
다실을 비롯한 아름다운 정원을 자랑하는 곳이다
방명록에 일관갤 화이팅을 남겼으니
만약 앞으로 갈 사람들은 내 흔적을 찾아주기 바란다
옛 치쿠린인 바로 옆에는 히요시타이샤로 이어지는 입구가 있다
예로부터 히요시타이샤 인근의 땅은 흉하고 불길하게 여겨지는 곳이었다
그 사악한 기운을 억누르기 위해 세운 것이 히요시타이샤다
여태 본 신사 중에서 상당히 옛날의 분위기를 띄는 것은
신사를 둘러싼 상당한 수와 나이의 고목들 덕이다
원시림을 방불케하는 곧은 고목들이 신성한 태고의 땅을 지킨다
워낙 마이너한 곳이라 사람이라곤 코빼기도 안 보이는 것도 한몫 하리라
히요시타이샤에서 서쪽으로 조금가면
드디어 엔랴쿠지로 향하는 사카모토 케이블 역이 보인다
사카모토 케이블은 일본에서 가장 짧은 전기궤도 열차로
매 시 정각과 반마다 출발한다
나름 비와호도 보이고 마냥 지루하진 않은 열차다
엔랴쿠지역에서 조금 올라가면 그제서야 엔랴쿠지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사진은 근본중당 보수공사 사이트로
근본중당은 올해 11월까지 공사를 하고 있다
입구에서 원래 근본중당이 갖출 모습을 비교해본다
공사중인 부분 외에 근본중당 불전은 참배할 수 있게 통로를 만들어 두었다
저 통로 깊숙한 안쪽에 엔랴쿠지에 전해지는 전설의 '불멸의 법등'이 빛나고 있다
오다 노부나가가 히에이잔 화공을 일으켰을 때도
아직 부패하지 않은 소수의 승려들이 세 법등 중 하나를 은밀히 대피시켜 화를 면했다고 한다
그 긴 시간 동안 계속해서 빛을 발했던 것이다
엔닌은 또 서쪽으로의 여행으로 유명한 승려다
그리고 그 엔닌을 바다에서 호위한건 다름아닌 장보고
우리가 아는 그 장보고다
사진의 비가 바로 장보고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청해진대사 장보고 비다
또한 엔랴쿠지는 전세계의 종교 지도자들이 모여 평화기념선언을 한 곳이다
종교 지도자들로 우리 나라도 물론 왔었다
그렇게 비와호 위쪽을 뒤로하고
이제는 비와호 오른쪽으로 향한다
사실 그 과정은 매우 스펙타클하게 진행되었다
늦잠자느라 일정을 늦게 시작한 것도 있고
사카모토 지역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쓴 것도 복병이었다
결국 히코네역에서 성까지 그냥 존나게 뛰었다
히코네성의 3층 천수와 마스코트 히코냥
히코네성은 전란의 시대라기보단 안정의 시대에 세워진 성이기에
천수각이 그리 높고 삼엄하지 않다
하지만 계단은 여태 본 그 어떤 성보다 보안이 엄중했다
까딱하면 황천으로 가는 기분이다
히코네성을 다 보고 앞에 있는 꽤 큰 신사를 갔는데
이곳도 나름 의미가 있는 곳이었다
보신전쟁으로 죽은 사람들을 공양하는 곳이었던 것
평화를 외치는 비는 호수 반대편의 엔랴쿠지를 닮아있었다
성격은 개좆같았지만 쌈박질은 좆되게 잘치던
도쿠가와 사천왕의 이이 나오마사의 동상
히코네성을 세우려다가 죽었다
히코네 관광도 끝나고 남은 일정도 없기에
교토역으로 돌아서 지친 심신을 달랬다
회전초밥은 총 지출이 직관적으로 보이지 않기에 덮어두고 마구 먹게 된다...
그리고 교토역에서 긴테츠를 지나치는 길에
문화유산 프리 티켓 광고를 보고 나는 번뜩였다
아 이거 친구 나라 일정에 무조건 도움되겠구나!
계산해보니 확실히 이득이라 구매를 저질렀는데
시발 날짜를 하루 앞으로 잡아버린 것이다
그래서 정말 개귀찮지만 다시 교토역으로 가서 환불 때리고 다시 사야한다
시발
교토역 어슬렁거리는 길에 하시타테 헤메다가 본 카에데랑 투샷도 찍고
사진은 마찬가지로 카에데 간판을 유심히 지켜보던 블붕이에게 부탁했다
좆같은 이온 ATM이랑 술래잡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수수료 내고 세븐을 쓸걸 그랬다
그렇게 3일차도 끝이 났다...
혼여의 묘미란 미리 계획한 것에서 점점 현장에서 뭐가 붙어
결과적으로 의도치 않지만 더 풍성한 계획이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은 그런 혼여의 맛이 200% 발휘된 날이었다
좆대로 다니는 자유란 즐거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