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이 조선의 왕으로 제위 했을 당시 각국의 이권다툼은 상당히 치열했다.
가장 가까운 나라인 일본을 비롯해서 프랑스, 러시아, 영국 등등 수 없이 많은 국가들이
언제 조선을 식민지로 흡수할 것인지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이러한 힘겨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고종은 근대국가의 발판을 마련하는 중이었다.
한성전기회사(1889~1909년까지 존재했던 우리나라 최초의 전기회사) 설립
한성도시계조사업
당시 이탈리아 대사인 까를로 로제터는 한성을 보고 이런 말을 남긴다.
한성에 도착한 여행자들이 가장 놀라워하는 것은 전차였다.
완벽하게 관리된 전차는 한성주변의 성 외곽까지 연결되고 있다.
전차로 인해서 한성은 근대적 교통수단을 갖춘 극동 최초의 도시라는 명예를 얻었다.
주한 이탈리아대사 로제터
이뿐만 아니다 용산 발전소를 설립해서 도심 가로등 설치사업을 시작하였으며
근대국가로 나아가기위에 기업체를 육성하기도 시작했다.
1894년 5개에 불과 했던 기업체가 1904년 222개로 증가했다. 불과 3년만에 이루워낸 성과이다
가로등사업 後
이를 보고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이런 말을 한다.
이전까지는 가장 지저분한 도시였던 서울이 이제는 극동의 가장 깨끗한 도시로 변모해가고 있는 중이다.
비숍
고종의 노력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실업학교를 설립하였으며,
육해군 총괄 원수부창설,
해군사관학교설립,
근대식군함 구입 등
군사력 증대에 상당한 공을 기울인다.
일본의 감시가 극도록 심해지는 상태에서도
비밀정보조직인
"제국입문사"를 창설해서 국내의 정황뿐만아니라 세계각국의 동향을 파악하기도 했다.
이런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는 고종을 조선에서 가장 무능한 왕으로 보고 있다.
해군사관학교개교
당시 세계최강국 하나인 영국정부에 교관 파견요청
양무호 - 석탄선을 군함으로 개조
단순히 역사의 한 면만 보고 무능한 왕이라고 단정 짓는 행위는 정말 크나큰 오류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