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개발과 패러다임의 역사_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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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singlebungle1472&no=1076734
지금까지의 진행상황을 요약하자면,
1. 베트남전과 과도한 우주경쟁으로 인한 경제적 위기, 그리고 그로 인한 미국정부의 부담과 시민들의 불만으로 나사 예산 대거 숙청당함.
2. 미국 정부의 압박으로 원대한 통합 프로그램 계획이 좌초되고 저궤도 인프라 개발 프로그램만 살아남음.
3. 저궤도 인프라 개발 프로그램 중에서도 기존 로켓 시스템을 대체할 셔틀 프로그램이 먼저 개발됨.
이전편에서 기존 로켓 시스템이 왜 비싸냐? 에 대한 설명이 없어서 약간의 말이 나오는거 같은데, 간단하다. 로켓은 일회용품이니까.
로켓이 우주로 날아갈 수 있는건 연료와 산화제를 로켓 엔진을 통해 태워서 나오는 추력으로 페이로드를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연료가 모두 떨어질 경우 필요없어진 로켓은 떼서 버리고 다른 로켓에 불을 붙여서 날아간다.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로켓의 전체무게 대비 수송할 수 있는 페이로드의 무게는 고작 10% 이하이며, 반대로 그 10% 이하의 짐덩이를 우주로 날려버리기 위해서 90% 이상의 수송 시스템 전체를 내다버려야 한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나사에서는 어떻게든 그 90%의 로켓을 재활용하기 위해 애썼고, 아폴로 프로그램이 폐기된 이상 아예 새로운 차세대 우주선을 재활용 가능하게 만들어 보기 위해 애쓴 그 결과물이 우주왕복선 되시겠다.
혹시 모르니 공군이 왜 나사 프로그램에 발을 디뎠는지도 보충 설명을 하도록 하겠다. 일단 아폴로 이전부터 공군이 나사와 경쟁했고, 패배했고, 공군 소유의 우주정거장을 지으려고 했다가 의회에서 쿠사리 먹고 나가리 된건 지금까지 입이 부르터져라 이야기했으니 그거 제외하고 설명하도록 하겠다.
먼저, 데탕스 기간동안에도 전세계적인 지역적인 전쟁은 계속되고 있었다. 1967년 아랍 연합 공화국 (이집트+시리아) 및 요르단, 레바논, 쿠웨이트 등 수많인 아랍 국가들의 뺨싸데기를 후려갈기면서 이스라엘이 선제공격을 퍼부으며 중동 일대를 고작 6일만에 대거 획득한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이 기간동안 미국은 해군과 공군을 보내 소련제 무기로 무장한 이집트 등의 중동 국가들을 감시했고, 또 동시에 자신들의 정찰자산의 한계를 맛볼 수 밖에 없었다.
공군 정찰자산들은 대공미사일에 취약했고, 위성 시스템들은 사진을 찍은 다음에 소형 재진입 캡슐에 넣은 다음 미리 정해진 장소에 투하하는 식으로 배달되었는데 이렇게 찍힌 사진들은 아예 적국의 공격징후를 파악하지 못했거나, 파악하긴 했는데 이미 전쟁이 끝났을 때였거나 둘 중 하나였다.
두번째로,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정치적 자유화 개혁운동이 일어났다. 프라하의 봄이라고 알려진 이 운동은 소련군이 장갑차와 전차를 보내 체코슬로바키아를 점령하고 모든 개혁을 폐기했으며 반공산주의 세력들의 탄압과 소련군의 주둔 및 이를 비판하는 시위대의 대거 체포로 이어졌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때도 소련군의 침공 여부를 알기 위해 위성이 투입되었으며... 전혀 침공의 준비 모습이 보이지 않는 평시 모습의 사진이 찍힌 필름 롤과, 이미 침공당해서 불타고 있는 프라하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었다.
이러한 극초기형의 정찰위성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미 공군에서 제시한게 바로 MOL, 유인궤도 연구선 Manned Orbiting Laboratory 되시겠다. 제미니를 개조해서 지상 정찰을 수행한 다음 즉석에서 사진을 현상해서 적국을 감시하기 위해 고안된 군 소속의 우주정거장 계획이었으나... 동시에 베트남전으로 인해, 그리고 빠르게 자동화된 위성 정찰 시스템의 개량으로 인해 빠꾸먹어버린 비운의 궤도 정거장 계획이 되시겠다.
또 공군에서는 셔틀만이 수행할 수 있는 극비 임무를 고안하기도 했고. 궤도상에서 우주 정거장과 도킹할 수 있고 또 위성을 궤도까지 운반할 수 있다면, 그 반대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소련군이 정찰위성을 배치했을 때, 그 정찰위성을 긴빠이 쳐서 미국으로 배달할 수 있지도 않을까? 공군으로서는 상당히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이렇게 공군이 아주 행복한 꿈을 꾸고 있을 때 공군으로서는 쾌재를 부를만한 일이 일어났다. 나사가 미국 의회와 정부한테 아주 두들겨 쳐맞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평상시라면 공군은 그냥 팝콘이나 뜯으면서 구경정도만 하면 되겠지만, 이때 나사에서는 셔틀을 개발하고 있었고, 셔틀 개발을 위해서 예산을 어떻게든 확보하는 것이 중요했으며, 공군은 냉전이라는 특성상 아주 많은 예산을 가지고 있었고, 동시에 탄도미사일 수천발과 극초음속 비행기와 초고도 비행기 개발 역시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기관이었으니, 우주개발을 하는 나사와 아주 많은 이해관계와 명분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뭐, 공군으로서는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타이탄같은 대체 로켓들을 아주 많이 가지고 있었으니, 별로 나사에 꿇릴 것이 많았지만, 나사로서는 어떻게든 셔틀 개발을 위해 공군에 손 벌릴 일이 많았고, 또 공군으로서는 지금까지의 굴욕을 한번에 해결할 기회였으니. 예산 몇푼 던져줌으로서 나사를 개같이 굴려먹을 기회를 어찌 마다하겠나.
이렇게 우주왕복선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물론, 그 과정은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나사에서는 새로운 셔틀을 개발하기 위해 X-15 (윗 사진)을 참조했다. 극초음속 로켓추진 비행기였던 X-15는 최초의 초고도 항공기로 우주와 대기의 경계를 시험하기 위한 연구용 항공기였으며 그 특성상 진짜로 하늘에서 우주로 날아갈 정도로 고고도를 날았던 비행?기였다. 어쨌든 이러한 특성상 워낙 빠르게 날아가는 비행기라는 특성상 뭉툭한 날개모양이 특징이었다.
그리고 나사에서는 이 X-15를 기반으로 셔틀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재돌입시에서는 의도적으로 충격파를 발생시켜 재돌입중의 지나치게 빠른 속도를 상쇄시켜 우주선이 지나치게 오랬동안 열을 받지 않게 하고, 딱 아음속 수준에서 간신히 조종할 수 있을 정도로만 작은 날개를 이용해 통상적인 비행기마냥 착륙할 수 있도록 하는 설계였다.
그러나 이 시기는 냉전시대, 공군은 나사가 개발하는 우주선의 날개가 지나치게 작은것에 불만을 가졌다. 비행기처럼 조종할거면 처음부터 끝까지 조종 가능하게 만들 것이지 그게 추락이랑 다를게 뭐람. 게다가 나사가 만들고 있는 비행기처럼 작은 날개를 가진 비행기가 초음속에서 아음속까지 다양한 속도로 다양한 고도에서 비행하게 된다면, 무게중심의 변화로 인한 유체역학적 위험성을 내포하는 것처럼 보였다.
해답은? 델타익이었다. 진지하게 냉전시기 설계된 수많은 비행기들이 보여주는 것처럼, 델타익은 그 특유의 넓은 형상으로 인해 범용적인 비행특성을 보여주며, 제작도 쉽고 항력도 양력도 매우 많이 생성해주는 아주 훌륭한 기체 특성을 보여주었다. 속도가 극단적으로 변해도 날개가 넓으니 약간의 조정만으로 동일한 비행성능을 보여주며, 동체가 넓어지니 설계에 더 널널한 기준을 보여주기도 했다.
게다가, 상대는 물주인 미 공군, 공군이 셔틀을 만들 때 소련 위성을 긴빠여처올 수 있게 개발하려는 생각을 했다고 적어둔 것 기억하나? 기존의 나사식 직선익 비행체로 설계한다면 날개의 특성상 긴빠이를 친 뒤에 재빨리 미국의 동맹국에 착륙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생긴다. (긴급착륙 시도시 230해리, 426km 이내로 착륙가능) 그러나 만약 델타익으로 설계한다면? 무려 1100해리, 2037km까지 착륙 가능한 범위가 넓어진다는 장점이 생긴다.
물론 이렇게 델타익으로 만들면 더 많은 양력이 생기고, 쓸때없는 날개가 더 많이 생기니 내열타일 쳐발라야할 범위가 더 넓어지니 더 무거워지고, 더 무거워지니 우주선이 궤도에서 대기로 재진입할 때 더 많은 열을 더 오래 버텨야하니 더 위험해지고, 애시당초 우주선이 최대한 가벼워야 효율이 좋아지는데 더 무겁게 만들었으니 효율이 떨어지고 이는 우주선이 실을 수 있는 페이로드, 즉 짐짝 무게를 줄이고 더 많은 연료가 필요하게 (=비용이 증가하게) 되었으나 공군으로서는 알빠노? 어짜피 나사가 운영하는 우주선인데. 그래서 새 우주선은 델타익으로 결정되었다.
이제 우주선 형상은 결정되었다고 쳐도 로켓을 어떻게 궤도까지 쏘아올릴지 문제가 남았다.
1. 똑같은 우주선 3개 붙이기
2. 우주선에 부스터 달기
3. 궤도에서 엔진을 가동시키는 우주선에 부스터 달기.
4. 1번이랑 동일한데 대신 양옆의 우주선 크기가 짧은거
5. 우주선이 가동되면서 연료를 소모할 때 연료탱크 무게가 변화하면서 생기는 무게중심 이동을 방지하는 우주선
인데, 나사와 공군에서는 3번을 지지했고, 각자 저마다의 우주선을 연구하던 기업들도 울며 겨자먹기로 3번으로 이동할 수 밖에 없었다. 나사와 공군의 합의로 길이는 18m(60피트), 폭 4.6m(15피트)였으며 직경 최대 4.6m(15피트) 의 화물창 크기가 정해진 것도 이때였다. 물론, 정찰위성은 지상을 최대한 자세히 살피기 위해 길고 넓은 형상을 띄어야 했으며
대충 이런식으로 생겨먹었다고 한다. 허블처럼 생겼다고? 아마 기분 탓일거다. 어쨌든 나사에서는 공군의 요구+앞으로 얼마나 더 커질지 모르는 위성의 개발 트랜드를 충족시키기 위해 지금은 좀 커도 너무 큰 감이 없지 않았지만, 저정도 크기로 화물창을 만들기로 선언했다.
한편, 이러한 양 국가기관의 합작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새로운 로켓 개발은 끊임없이 제동을 당했다. 님들, 그래서 이 우주선 개발하는게 진짜 미국에 큰 도움이 될 거라고 확신해요? 이미 우리나라는 로켓 많은데? 타이탄이랑 아틀라스가 대체 몇대나 있는데?
미국 정부의 연구는 셔틀 프로젝트가 무사히 완료된다고 해도, 기존의 타이탄을 계속 발사하는것과 비교해서 셔틀을 개발하고, 그 셔틀의 연료와 정비에 소모되는 비용이 그렇게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 다는 것을 지적했다. 미국 국방부의 평균 로켓 발사횟수는 연간 15번 수준이었고 가장 많을 때에도 30번 정도가 한계였는데, 이 경우 셔틀 프로젝트가 제시간에 완성된다고 해도 고작 기존 시스템에 비교해 1.5%의 이익만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므로 미국 정부를 안심시키기 위해서라면 최대한 많이 위성을 발사해야 하는데 (연간 50대 이상) 문제는 아무리 미국이라고 해도 위성을 저정도로 많이 발사할 이유가 없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었다.
나사와 공군은 타협을 해야했다. 완전 재활용 가능한 셔틀 프로젝트는 이미 나사와 공군이 투닥거리면서 두 기관마다 연구와 개발을 따로 한것 때문에, 그리고 우주선의 구조 재질이나 우주선의 엔진 채택 등 세부적인 사항들을 신중하게 고르느라 계속해서 늦어지고 있었고, 예산은 지속적으로 초과되는 반면 개발은 하염없이 늦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베트남 전쟁의 종식과 데탕스의 여파로 군용 항공기 주문의 급하락, 아폴로 프로젝트의 종식으로 인한 나사 인력의 급속감축, 미국의 경기 침체 등의 삼중고를 겪는 상황이었다. 당장 나사조차 1966년 39만명의 직원들이 1971년에는 14만명으로 줄어들었다. 나사와 긴밀하게 협업하는 미국의 군수업체들 역시 정리해고를 적극적으로 실시하며 군 프로젝트를 진행시킬 여력이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사는 프로젝트를 대거 수정해야만 했다.
일단, 나사는 궤도선 Orbiter 를 제작하고, 그 궤도선을 궤도에 올린 부스터 Booster 을 제작하기로 했다. 궤도선은 무조건 재활용이 가능해야했지만, 부스터는 재사용이 가능하면 좋지만 불가능하더라도 더이상 상관이 없어졌다. 당장 미국의 우주산업 자체가 망하게 생겼고 나사는 셔틀 프로그램의 존망이 달린 상황이었으니까. 오죽했으면 그냥 기존의 새턴 로켓에 셔틀을 매달아 발사하자는 아이디어까지 등장하는 판이었다.
한편 록히드 마틴에서 흥미로운 주장이 등장했는데, Star-Clipper에서는 재사용 가능한 부스터와 외부 연료탱크를 사용하는 방안을 제시한 거였다. 이는 신속하게 경쟁사들에게도 퍼져나갔으며, 재사용 가능한 부스터파와, 날개달린 로켓파가 서로 싸우게 되는 판도를 낳았다.
물론, 이렇게 싸우는 꼬라지를 보고 미국 의회에서는 "이것들이 재활용 가능한 로켓 만든다고 큰소리 치더니 사기친거였네" 라고 반응했고 미국 대통령은 "재활용 가능한 로켓 만드는거 포기했지? 예산 더 자른다" 라고 압박을 넣었다. 지속적인 예산 삭감으로 인해 나사에서는 "그냥 셔틀 포기하고 아폴로 후속 프로그램이나 새로 만들죠?" 라는 의견까지 나올 정도였다.
새로운 대안으로서, 완전히 재활용을 포기하는 대신 개발비용을 절감시키고 발사에 더 많은 비용이 드는 시스템을 채택했다. 이를 TAOS, 추력 보조 오비터 셔틀 Thrust Assisted Orbiter Shuttle 이라고 부르며, 우리가 잘 아는 그 우주왕복선의 모습이 되어가는 과정이 되었다. 즉, 부스터나 연료탱크 등의 재활용 필요성을 완전히 폐기하고 (단, 나중에 개발하는건 가능), 기존의 고성능 체제를 사용함으로서 예산을 절약하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우주왕복선의 모습이 완료되었다. 예산을 저렴하게 하기 위한 소모성 연료탱크, 액체연료 로켓에 비해 저렴한 고체연료 부스터를 기반으로 제작되었고, 우주왕복선을 제작할 회사 역시 가장 가벼우면서도 예상 비용이 가장 낮았던 North American이 회사로 채택되었다.
덤으로 PC도 여기에 한몫했다. 1970년대는 흑백 차별때문에 전미가 난리였는데, 노스 어메리칸은 타 회사들에 비해 더 많은 흑인, 히스패닉, 아시아인들을 고용한 상황이었고 나사에서는 정부조직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나 어쩌나.
어쨌든 이렇게 참 다사다난한 과정을 통해 우주왕복선이 개발되었고, 이제 이렇게 개발된 우주왕복선이 어떻게 작동되고 운영되었는진 다음에 알아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