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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데탕트로 중공과의 화해무드가 이어지자 영국정부는 홍콩 주둔병력을 서서히 줄여나가 3만명 정도로 고정했다. 중장비들은 대부분 본국으로 돌아가거나 동남아 우방국들에게 공여됐고 80년대부터 홍콩을 방어하는 병력 대부분은 보병부대를 중심으로 개편됐다.
참고로 홍콩은 대영제국 최후의 식민지라는 상징성 때문에 홍콩에 파병되는 부대들은 영국군에서도 역사가 깊은 메이커부대들이 주를 이뤘다. 그중에서도 특히 영국군 근위대(주: 곰털모자 쓰고 버킹엄 궁전 경비서는 걔네들 맞음.)는 1개 연대가 2년 로테이션으로 돌아가며 주둔했다. 그래서 콜드 스트림, 블랙와치, 아이리쉬 가드, 스코츠 가드, 웰시 가드의 연혁을 보면 냉전기에 홍콩에 주둔했던 경력이 서너번 이상 존재한다. 근위대들은 전투훈련은 물론이고 주기적으로 퍼레이드 같은 보여주기식 행사에 자주 동원됐다. 이 덕분에 영국군은 홍콩시민들에게 '멋지고 규율잡힌 군대'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구르카병들도 1개 대대가 상시주둔했었다. 이들은 주로 홍콩 국경에 배치되어 밀입국자들을 잡거나 홍콩경찰이 감당하지 못하는 시위진압에 투입됐다. SAS 같은 특수부대 인원들도 비정기적으로 홍콩을 방문하여 홍콩경찰 특수부대(비호대)를 교육시키는 등, 홍콩은 영국의 국방계획에 있어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1996년 홍콩반환을 1년 앞두고 영국군은 HKMSC 같은 홍콩인 부대를 해체하는 한편, 주둔부대들을 순차적으로 귀국시켰다. 그리하여 반환 한달을 남긴 시점에서는 주력부대는 대부분 빠져나갔고 행정등에 필요한 최소필요인력 100여명만 남게 됐다. 이후 6월 30일 반환행사를 마지막으로 이들도 모두 카이탁 국제공항에서 군용 수송기를 타고 영국으로 돌아갔다.
홍콩에서 복무했던 전역자들의 썰을 들어보면, 홍콩시민들에 대한 이미지 메이킹 때문에 규율이 매우 빡쎘다고 한다. 게다가 홍콩의 특성상 부대 부지가 좁아서 훈련 한번 하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외출외박도 잘 나오지 않아서 흔히들 말하는 홍콩의 이국적인 분위기를 즐길 시간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