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와 애플 이야기」
1편 2편 3편 4편
< 본 내용은 스티브 잡스의 전기를 나만의 식으로 요약한 것이며, 보다 깊은 맛을 원한다면 도서를 직접 읽는 것을 추천해요 >
이번 5편은 시들시들해진 애플에 잡스가 다시 돌아와서 회사를 재건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애플 (잡스를 쫓아냄)
넥스트 (쫓겨난 잡스가 세운 새 회사)
픽사 (쫓겨난 잡스가 인수한 회사)
55. 애플의 추락
1990년 대가 시작되면서 애플과 잡스의 넥스트는 망해가고 있었다.
잡스의 철학은 항상 하드웨어(기기)와 소프트웨어를 통합된 패키지 형태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넥스트의 재정난에 눈물을 머금으며 하드웨어 부문을 포기하고 소프트웨어만 만들기로 했다.
그는 훌륭한 넥스트 소프트웨어가 다른 회사의 시시한 컴퓨터에서나 돌아가는 걸 보려고 온 것이 아니라며 탄식했다.
하드웨어를 만들던 공장의 로봇을 몇 시간이고 지켜보고 했던 그였다.
한편 애플은 훌륭한 제품을 만드는 대신 이윤만을 추구하면서 점점 마소에게 시장의 자리를 내어줬다.
1995년, 마소의 윈도 95가 역사적인 성공하자 애플의 컴퓨터 시장점유율은 4퍼센트로 떨어졌다.
잡스는 자신이 일궈냈던 애플이 망해가는 모습을 보며 애플 사장 스컬리를 경멸했다.
1994년, 애플의 이사 아멜리오는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깨닫고 잡스에게 전화해서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들였다.
잡스 : "애플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사람은 한 명 뿐입니다. 저를 도와주세요."
하지만 아멜리오는 잡스가 구체적인 대안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으로 판단하고 사무실에서 쫓아냈다.
그런데 1996년, CEO가 된 아멜리오는 새로운 운영체제 개발에 희망을 걸었는데 이를 위해 넥스트의 소프트웨어가 필요했다.
56. 다시 쿠퍼티노를 향해
"스티브와 통화할 수 있을 정도로 친한 사람 여기 없나?"
아멜리오는 2년 전 잡스와의 만남에서 불편하게 끝났기 때문에 자기 대신 통화해 줄 직원을 찾았다.
그런데 넥스트 쪽도 형편이 여의치 않았던 터라 그들이 먼저 손을 내밀었고 잡스는 쫓겨난지 11년 만에 애플의 쿠퍼티노 사옥에 발을 들여놓았다.
<현재의 애플 사옥 (애플 파크)>
1년 전, 잡스는 친구 래리 엘리슨과 산책을 하며 자신의 계획을 말했다.
잡스 : "애플이 넥스트를 인수하게 한 다음, 내가 이사회에 합류해서 상황을 보고 CEO 자리를 차지하면 돼."
엘리슨 : "하지만 네가 돈을 벌려면 애플 밑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애플을 인수해야 하잖아?"
잡스 : "래리, 돈은 중요한 게 아냐."
애플 임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아멜리오는 잡스의 넥스트 소개 발표를 듣고 만족스러워 넥스트를 인수하기로 했다.
덤으로 아멜리오 그는 잡스에게 매료되기까지 했다.
그날 잡스는 한때 아버지같은 존재이면서 자기를 애플에서 쫓아낸 존재이기도 한 마이크 마쿨라와 인사하고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
한편 애플의 넥스트 인수 소식을 들은 빌 게이츠는 아멜리오에게 그런 쓰레기를 왜 사냐며 화를 냈다.
그러나 덕분에 넥스트의 명석한 직원들이 애플로 들어왔다는 점은 확실했다.
이후 잡스는 그냥 회장 고문직이나 달라며 권력에 욕심이 없어보이는 모습을 보였다.
1996년 말, 그의 요청대로 잡스는 애플의 파트타임 고문이 되면서 애플 직원들의 환영인사를 받았다.
잡스는 픽사의 래시터에게 찾아가 말했다.
잡스 : "가족과 픽사와의 시간이 줄어들 것 같아 걱정이야.
하지만 애플을 살려내 세상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거야."
래시터 : "잘 될 거에요. 행운을 빌어요."
57. 되찾은 왕국
1995년, 마흔 살이 된 잡스는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의 성공과 애플의 넥스트 인수를 토대로 날아올랐다.
그는 돈 따위 대신 두 가지 유산을 남기고 싶어 했다.
혁신적이며 위대한 제품을 만드는 것,
그리고 영구히 지속될 수 있는 회사를 구축하는 것이다.
잡스는 이제 애플의 비공식 파트타임 고문이다.
그러나 아멜리오는 그에게 모든 권력을 주지 않기 위해 견제했다.
그래서 잡스는 아멜리오를 좋게 바라보지 않았다.
특히 아멜리오가 4,000명의 청중 앞에서 리허설도 하지 않은 채 말을 더듬으며 연설하는 모습을 보고 잡스는 기가 찼다.
그의 연설이 끝난 직후 잡스가 무대에 서서 애플 운영체제라는 문제의 핵심을 파고들며 행사의 분위기를 다시 살려냈다.
잡스는 슬슬 자기 편을 모아 애플의 고위직에 앉히기 시작했다.
그렇게 애비 테버니언, 존 루빈스타인이 모였다.
임원들은 서로 터무니없는 말만 늘어놓으며 그 속에서 멍때리기만 하는 아멜리오의 모습이 보이는 고위직 회의를 두 사람이 목격하고 사태 파악을 했다.
그리고 회사 상황을 잡스에게 수시로 보고하기도 했다.
한편 어느 파티에서 저널리스트는 아멜리오에게 애플의 상황에 대해 질문했다.
아멜리오 : "애플은 보물선이에요. 배에 구멍이 있다는 문제가 있지만요."
저널리스트 : "그럼 구멍은 어떡하고요?"
아멜리오 : "..."
애플의 실적은 끝도 없이 추락하면서 언론도 아멜리오에게 등을 돌렸다.
58. 왕의 귀환
아멜리오는 회상했다.
"나의 종말이 다가왔던 거죠."
CFO(최고 재무 책임자) 프레드 앤더슨와 에드 울러드도 이사들에게 상황의 심각성을 환기시켰다.
투자은행이 애플의 시장가치가 너무 떨어져 매입자를 찾기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한 정도였다.
울러드는 이사들에게 말했다.
"현재 파산 확률은 90퍼센트입니다.
그러나 길을 해고하고 잡스를 CEO로 앉힌다면 생존 확률이 60퍼센트입니다.
만약 잡스말고 다른 이가 CEO로 앉는다면 생존 확률은 40퍼센트입니다."
그들은 아멜리오가 가족과 런던 여행을 간 틈을 타 해고시키고 잡스에게 새로운 CEO가 되주기를 부탁했다.
그러나 잡스는 CEO직 제의을 거절하고 무보수 고문 역할만 하기로 한다고 밝혔다.
당시 그는 성공한 픽사의 CEO로서 만족하고 있었으며 애플의 미래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후에 잡스는 그의 요청대로 무보수 고문이 되었고 임시 CEO는 프레드 앤더슨이 맡기로 했다.
앤더슨은 모든 일을 잡스와 상의 후 처리하기로 한다고 밝혔다.
1985년 잡스가 퇴출당한 이후, 12년 만인 1997년 다시 그의 시대가 도래했다.
기존 CEO는 이미 쫓겨났고 권력을 잡은 잡스는 본격적으로 무자비한 가지치기 작업에 돌입했다.
유능한 직원들을 위한 보상 체계를 재정비하고,
심지어 이사회 전부를 잘라냈다. 에드 울러드와 개러스 창만 남기고 말이다.
울러드는 회상한다.
"이사진들은 그동안 너무도 고통받았던 나머지 사임하는 것을 오히려 반가워했지요."
잡스와 워즈니악과 함께 애플을 창업했으며 이사회에 20년 간 몸 담았던 마이크 마쿨라도 사임했다.
1985년 잡스를 쫓아냈던 경력 때문인지 때가 됐다고 판단한 그는 애플을 유유히 떠났다.
<1977년 애플 설립 당시의 잡스(왼쪽)와 마쿨라(오른쪽), 마쿨라는 최대 25만 달러의 보증을 서준 공동 창업자>
잡스는 마쿨라가 과거에 자신을 배신했더라도 애플 창업부터 그는 늘 아버지같은 존재였다고 회상한다.
이후 잡스는 그런 그와 사적으로 만나 산책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잡스 : "저는 '오래도록 존속할 회사의 구축'이라는 야망을 가지고 있어요. 저는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마쿨라 : "그런 회사들의 특징은 회사 스스로를 재창조할 줄 안다는 거야.
애플은 PC 사업에서 마이크로소프트에게 밀리고 있어.
무언가 새로운 제품을 창조하고 회사를 탈바꿈시켜야 해."
이후에 잡스는 뛰어난 인재들을 이사직이나 부문 책임자로 영입시켰다.
특히 그는 오로지 자기편을 드는 사람들로만 편성하고 이사회를 자기 손안에 움켜쥐었다.
59. '우리'의 애플
잡스는 회사의 모든 제품을 주관한다고 밝혔고 한 달 동안 주가는 13달러에서 20달러로 치솟았다.
1997년 8월, 맥월드 행사에 5,000명이 넘는 애플의 충성스러운 팬들이 잡스의 연설을 듣기 위해 참가했다.
잡스의 등장과 함께 청중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애플에는 훌륭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계획 때문에 그들은 잘못된 일을 했던 겁니다.
우리들은 다시 훌륭한 전략에 초점을 맞출 것입니다."
청중들은 또 다시 환호성을 질렀다.
"우리 컴퓨터를 사는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것을 생각합니다.
이들은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역시 다르게 사고할 것이고, 우리 제품의 소비자들에게 봉사할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들을 미쳤다고 말하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이들의 천재성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기립 박수가 넘치면서 몇 명은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60. 마이크로소프트와 손잡다
맥월드 행사에서 잡스는 애플의 파트너는 마이크로소프트라고 발표했다.
원래 애플과 마소는 10년 동안 특허 분쟁을 벌여왔다.
과거 1985년 당시, 마소는 애플에게 인터페이스 라이선스를 받아 윈도 1.0을 사용하고,
애플은 마소의 엑셀을 독점한다는 계약을 했다.
그러나 마소가 윈도 2.0을 출시하자 이 계약에서 슬쩍 빠져나가며 소송 싸움이 벌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애플과 마소는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는 점이 있었다.
그리고 마소의 과거 첫 성공이 잡스 덕분이기도 했기에 빌은 애플에 신세 진 마음이 존재하기도 했다.
잡스는 게이츠에게 전화했다.
"우리 이렇게 전쟁하고 있을게 아니에요. 이야기를 하죠."
게이츠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당시 아멜리오와의 협상은 머리 아팠는데 잡스와의 협상은 간단했어요.
'맥 소프트웨어 개발 약속'과 '애플에 대한 투자' 뿐이었어요.
우리들 모두 맥 컴퓨터를 좋아하기도 했기 때문에 그와 손을 잡았어요."
다시 맥월드로 돌아와 잡스는 이제부터 매킨토시의 기본 브라우저가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리고 마소로부터의 1억 5,000만 달러 투자 소식을 알렸다.
다만 잡스는 대형 스크린에 게이츠의 화상 영상을 연결시켰을 때 그의 큰 얼굴이 모두를 내려다보게 만드는 실수를 저질렀다.
마치 1984의 독재자 영상이 떠오르는 형상이었다.
게이츠는 영상에서 말했다.
"저희는 매킨토시 관련 일을 제일 즐거워합니다.
워드와 엑셀의 새 매킨토시 버전은 모든 면에서 진보한 제품입니다."
잡스는 마소에게 감사 인사를 표했다.
(게이츠는 그때 당시의 상황을 알고나선 부끄러워 했다.)
어쨌든 잡스의 부활과 마소의 투자 소식 덕분에 그날 애플의 주가는 무려 33퍼센트나 상승하면서 회사도 멋지게 부활한 것이었다.
61. 미친 자들을 위해 축배를
과거 매킨토시 출시 때 '1984' 광고를 만들었던 리 클라우, 잡스는 그를 다시 불러들였다.
잡스에게 그는 광고업계 최고의 인재이며 오랜 친구(잡스의 표현)였다.
"아직도 목이 메이네요.
클라우가 만든 '다른 것을 생각하라(Think Different)',
파고드는 순수함은 저의 영혼을 울렸어요."
잡스와 클라우는 애플이라는 최고의 브랜드를 사람들에게 각인시키려고 했다.
성능이 아니라 창의적인 무언가에 대해서 말이다.
"자신의 본 모습을 떠올리는 최고의 방법은 마음속 영웅을 상기하는 것이에요. 그게 광고의 출발점이었죠."
그들은 광고 문구를 직접 만들었다.
'미친 자들을 위해 축배를. 반항아들과 세상을 달리 보는 이들은 규칙을 싫어합니다.
(중략)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천재로 봅니다.
자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미친 자들... 바로 그들이 실제로 세상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잡스는 기조연설에서 먼저 'Think different'를 사용했다.
사실 이전에 팀원들과 'Think different(다른 것을 생각하라)' 대신 'Think differently(다르게 생각하라)'를 사용하자는 의견 충돌이 있었지만 잡스는 전자를 택했다.
'똑같은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생각하라는 의도였다.
그리고 잡스와 클라우 팀원들이 만든 최종 광고는 '토이 스토리' 최초 방영때 나갔다.
리 클라우는 말한다.
"젊은 잡스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느꼈습니다. 그는 브랜드의 가치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 지 직관적으로 알았어요."
래리 앨리슨도 말한다.
"잡스는 첨단 기술 업계에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창조해낸 유일한 인물이에요.
사람들이 명품 자동차를 모는 심리와 같아요. '차가 나를 말해준다'고 여기는 것 말이에요.
'애플이 나를 말해준다'가 된 것이죠."
62. iCEO
1997년 9 월 16일, 잡스는 임시(interim) CEO, 즉 iCEO를 맡겠다고 선언했다.
그럼에도 그는 거침없는 리더였다.
잡스와 이사회는 공식 CEO가 될 인물을 찾아 다녔지만 그들 대부분은 거절했다.
점점 CEO를 찾는 속도가 느려지자, 잡스의 iCEO 자리는 임시가 아니라 무기한으로 이어지는 듯 했다.
잡스는 애플과 픽사를 정신없이 돌아다니며 살인적인 스케줄에 몸을 혹사시켰다.
"퇴근하고나서 로렌과 말 한마디 못 나눌 정도로 기력이 남지 않았어요.
그 무렵 신장결석도 생기고 진통제를 맞으러 병원에 달려가기도 했지요."
그러나 잡스의 열정은 멈추지 않았다.
그 열정은 바로 영속적인 회사를 만드는 것이었다.
"기업을 어떻게 조직하고 운영하느냐가 중요해요.
최고의 혁신의 주인공은 바로 기업이에요.
기업 하나를 일궈 멋지게 성장시키는 것, 저에겐 그것 뿐입니다."
63. 엔드투엔드로 돌아가다.
애플의 엔드투엔드 방식을 설명하자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반드시 하나이며 두 가지를 패키지로 구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잡스의 통제 욕심에서 비롯됐다.
반대로 마이크로소프트는 모든 컴퓨터에서 돌아가는 소프트웨어를 광범휘한 소비자들에게 제공해 막대한 수익을 얻었다.
잡스가 다시 돌아오기 전 애플은 80달러의 소프트웨어만 판매하는 방식을 시도해보았지만
대당 500달러의 고급 컴퓨터가 덜 팔리는 모습을 보고 철회했다.
그가 애플에 돌아오고나서 다른 회사의 맥 호환제품들부터 지원을 끊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는 다른 회사 사장들이 외치는 '폐쇄적인 시스템은 곧 죽음'이라는 경고를 무시한 채 단행했다.
"형편없는 하드웨어에 우리 운영체제를 사용하게끔 하는 것 만큼 우리 판매량을 깎는 일이 또 있을까요?"
64. 초점의 회복과 집중
잡스의 최고 장점 중 하나는 '집중' 능력이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해야 할 일'을 판단하는 것만큼 중요합니다."
잡스는 회의 시간에 파워포인트 사용을 금지했다.
"프레젠테이션은 문제를 더 만들어낼 뿐이에요. 적극적으로 참가하고 토론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법이에요."
그는 지저분하게 양산된 애플의 다양한 컴퓨터 모델들을 보고 결심을 했다.
그리고 그는 회의 시간에 화이트보드 앞에서 정사각형을 네 칸으로 나눈 표를 그렸다.
정사각형의 위와 옆에 네 단어도 추가했다.
"이 네 칸에만 집중하세요!"
그 결과 네 칸이 채워지면서 계획이 만들어졌다.
| 소비자용
| 프로용
|
데스크톱
| (훗날의 아이맥)
| 파워 매킨토시 G3
|
휴대용
| (훗날의 아이북)
| 파워북 G3
|
잡스는 회상한다.
"잘못된 경영에 대한 조치를 취한 덕에 엔지니어들은 새로운 모바일 기기에 전념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겁니다."
1997년 3분기까지 파산 직전이었던 애플은 잡스 덕분에 흑자 전환에 성공하여 마침내 힘찬 비상을 할 수 있었다.
65. 제품의 본질을 담지 않으면 디자인이 아니다
<조니 아이브와 스티브 잡스, 그리고 사이의 해바라기 아이맥 (2002)>
1997년, 조너선 아이브는 망해가면서도 디자인을 경시하는 애플이 질려 회사를 떠나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돈이 아니라 훌륭한 제품이 목표라는 잡스의 연설을 듣고 감동해서 회사에 남기로 결심했다.
조니라고도 불리우는 아이브는 어릴 적부터 디자인 능력이 수려했다.
잡스는 디자인 팀을 둘러보다 아이브를 만났고 그들은 서로가 통하는 사이임을 깨닫고 하나가 됐다.
처음에 아이브는 하드웨어 부문 책임자인 존 루빈스타인에게 업무 보고를 했지만 곧 잡스에게 직접 보고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잡스는 그에게 경의를 표시했다.
"나말고 회사의 가장 큰 권력자는 조니에요."
그들은 디자인을 할 때 마다 단순성을 추구했다.
'단순함이 궁극의 정교함이다.'
상당한 노력이 있어야만 복잡성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마치 글을 요약하려면 먼저 그 글을 알아야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이브의 철학이다.
"단순하기 위해서는 매우 깊이 파고 들어야해요.
필요없는 것을 제거하기 위해 먼저 제품의 본질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잡스는 디자인을 '겉모습'이 아니라 '근간이면서 영혼'이라고 밝혔고 둘은 서로의 철학을 공유했다.
한편 이 둘의 프랑스 여행 중 주방용품 가게에 들른 그들의 대화다.
아이브 : "이 칼 말이에요, 꼭 이렇게 손잡이와 칼날 사이의 접착제 흔적을 보여줘야 했을까요. 덕분에 디자인이 망가졌어요."
잡스 " "맞아요. 칼의 순수함이 손상됐군요."
66. 아이브와 잡스의 아이디어 놀이터
아이브의 디자인 스튜디오는 다른 애플 직원들조차 출입할 수 없었던 곳이다.
잡스와 아이브는 사무실에서 근무하고나서 점심을 같이 먹었고 둘만 같이 애플 제품 디자인들을 살펴보고 판단했다.
그리고 잡스는 아이디어 회의에서 팀 쿡을 불러 다음과 같이 진행했다.
아이브의 회상이다.
"우리는 아이폰, 아이패드, 아이맥, 노트북 등이 올려진 테이블에 둘러 앉았어요.
그리고는 손으로 직접 느껴보며 서로의 의견을 공유했죠.
'여기는 이미 성장을 많이 했으니 대신 이쪽에 집중하는게 맞지 않을까?' 식으로요.
보통 대기업에선 그런 모습은 보기 힘들었죠.
바보같은 프레젠테이션도 없고 결정들이 유동적이었어요."
잡스와 아이브는 사소한 전원 공급 장치조차 디자인에 신경썼으며
맥북의 흰색 전원 장치와 기분 좋은 '탁' 소리를 내는 자석 연결 장치도 잡스의 212개 특허 중 하나였다.
그들은 제품 포장조차 특허 출원을 했다.
포장을 뜯을 땐 누구든 안에 있을 아름다운 보석을 상상하며 두근두근해진다.
포장은 한 편의 드라마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가끔 잡스는 특유의 거짓말로 아이브의 아이디어를 자기 것인 마냥 자랑하기도 했다.
아이브는 자기 대신 잡스가 모든 공훈을 가져가는 것처럼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모든 게 잡스 덕분이라고도 생각했다.
..
<잡스의 아이폰 박스 특허>
<아이폰 1세대의 박스와 구성품>
아이폰 사용자라면 첫 언박싱의 생생한 경험을 공감할 것이다.
어루만지듯 부드럽게 열리는 광택 상자의 촉감은 포장을 뜯는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을 벌써부터 앗아가게 만든다.
단순히 시각적인 미의 추구를 넘어서 감각의 경험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도록 설계한 점이 너무도 놀랍다.
그래서 본인은 첫 박스를 아직도 소중히 보관하고 있을 정도이다.
1977년, 잡스와 마쿨라가 애플을 창업했을 때부터 이미 포장은 소비자의 첫 인상을 위한 중요 마케팅 철학으로 자리 잡았다.
아무리 뛰어난 내용의 책이라도 표지에서 소비자들을 잡지 못하면 꽝이라는 내용이었다.
포장이 아름다우면 그 안에 있는 내용물은 더 좋을 것이라고 기대하게 만드는 심리적 효과까지 적극 활용한 그들이다.
<1997년 맥월드 행사에 스티브 잡스가 돌아오다> (1분 30초)
5편 끝
다음 6편은 아이맥과 팀 쿡, 그리고 애플 스.토어(갤금지어)의 등장 스토리이다.
『스티브 잡스 - 월터 아이작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