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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3일, 구례-순천-여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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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2박3일로 전라남도 동부 일대를 돌아보고 왔음. 첫날은 남원과 구례, 둘째날은 구례에서 순천을 경유해 여수, 마지막 날은 여수에서 다시 순천으로 돌아봤음.

뚜벅이 여행의 한계로 하루에 대체로 3곳 정도밖에 방문하지 못했음. 첫날은 사성암, 둘째날은 화엄사, 마지막날은 향일암 이 세 곳을 중심으로 일정을 짜다 보니 다소 여정이 비효율적인 면도 없진 않았으나, 둘째날 방문한 화엄사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여정이었음. 자세한 일정은 맨 아래를 참고하기 바람.

새벽 5시 출발하는 ktx를 타니 7시 20분경 남원역에 도착함. 도보로 남원 시내까지 이동.

일출과 함께 5분여간 지속된 황홀한 광경.

가는 길, 만복사지를 방문함. 정령치를 비롯한 지리산 북쪽을 품고 있는 남원은 구례, 하동처럼 대자연의 지리산을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그보다 내밀한 풍경을 가득 담고 있음.

광한루원. 조선시대 관아의 부속 정원으로는 가장 훌륭한 곳이 아닐까 싶음. 연못에 비단잉어들이 떼로 동면 중임.

아침잠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원앙들. 이곳 광한루원에는 유독 원앙이 많았음. 이외에도 오리, 직박구리, 까마귀, 딱따구리 등 그야말로 새판.

이제 버스를 타고 구례로 이동함. 구례터미널에 짐을 맡기고 처음 찾은 곳은 피아골 연곡사.

연곡사의 시이자 종인 동승탑. 애석하게도 주인은 알 수 없으나 한반도에서 가장 훌륭한 승탑임에는 틀림없음.

1100여 년의 세월을 버텨 온 이 조각들...

동승탑비. 거북 모양의 비석받침, 즉 귀부는 주로 땅을 기어다니는 형상을 하고 있으나, 드물게 물살을 헤치고 나가는 녀석들이 있음. 최근 중앙박물관 1층에서 자취를 감춘 원랑선사탑비가 그 대표작. 그보다 더 귀하게도, 날개를 갖고 날아다니는 녀석들이 있는데, 동승탑비의 귀부는 여기에 속함.

연곡사 가는 길은 섬진강 따라 이십리길, 또 피아골 계곡 따라 이십리길임. 연곡사는 아름다운 부도탑들과는 별개로 이 위치만으로도 너무나 아름다운 곳임. 산을 따라 흐르는 장구한 섬진강을 따라가다가, 피아골로 한참을 또 내달려야 하는 이곳에 자리잡은 연곡사에서 느껴지는 지리산의 고준함과 동시에 포근함은 다른 지리산의 사찰들에서는 맛볼 수 없는 매력임.

뒤이어 방문한 사성암. 버스로는 사성암 입구까지만 올 수 있고, 왕복 3,400원의 사성암 마을버스 표를 별도로 구매해야 사성암까지 편하게 오를 수 있음. 물론 차량을 이용한다면 곧장 사성암 아래까지 진입이 가능함.

사성암에서의 경치는 정말 훌륭함. 섬진강이 압록부터 구례구에서 한 번, 구례 읍내에서 다시 한 번 꺾어 광양을 향하는 변곡점의 오산 꼭대기에 자리잡은 사성암은 그 경치가 좋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음.

매캐한 브레이크 탄내가 진동하는 승합버스에서 벗어나 구례읍내를 향해 40여분 간 도보로 이동했음. 구례 정도면 나름 버스 시간표가 잘 짜여 있는 편이지만 사성암이 있는 이쪽은 버스 운행이 많지 않아 도보로 이동하는 편이 더 빨랐음. 읍내에서 식사하고 비교적 이른 시간에 화엄사입구의 숙소로 이동했음.

둘째날, 어둠에 휩싸인 화엄사계곡을 따라 출발함. 밤새 비가 내렸는지 축축한 밤길의 적막을 뚫고 가볍게 오르는 20여 분간의 여정은 자못 호젓하면서도 상쾌함.

어둠에 휩싸인 각황전.

이번이 4번째 방문인 화엄사이지만 늘 맑은 날에 와서인지 이런 분위기는 처음이지만, 오히려 겨울비가 산사의 깊은 맛을 살려주는 듯함.

화엄사는 첫 방문 이래 늘 아침 이른 시간에 왔음. 이 모든 공간을 오롯이 혼자 사유할 수 있음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 20여 분간 각황전 안을 서성이고 나오며 생각해 봄.

화엄계통 사찰들은 대체로 남향을 기본으로 하지만, 중심적인 건축물의 배치는 동향을 하고 있는 경우가 왕왕 있음. 대표적인 사례가 부석사 무량수전으로, 건물 자체는 남향이지만 내부의 소조여래좌상은 동향으로 배치되어 있음.

거대한 침묵 속에서 버티고 서 있는 각황전.

이번 방문이 더욱이 새로웠던 것은 바로 이 석탑의 영향임. 각황전의 뒷쪽 언덕에 자리잡은 이 사사자 삼층석탑은 사자석탑을 대표하는 탑으로, 통일신라 조각미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음. 오랜 기간 복원공사 끝에 최근에서야 다시 공개되었음.

일설에 따르면 연기조사와 그의 어머니라고 하는 석탑 기단 중앙의 승려상과 석등의 공양상은 표정은 마멸되어 알아보기 어려우나, 서로를 바라보고 있어 그 애틋한 관계를 연상케 함. 이런 식의 배치는 금강산 금장암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으나, 한국전쟁 중 폭격으로 쓰러져 최근까지도 복구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음.

이곳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바로 이곳에서 조망하는 화엄사의 모습 탓일 것임. 지난 세 차례의 방문 동안 이곳을 와 보지 못했으면서 화엄사에 대해 논한 내가 부끄러워진 순간임.

구름도 잠시 머물다 가고...

내려다보면 섬진강과 구례읍내가 아득하게 펼쳐지며,

각황전과 그 뒤로 보이는 금정암.

이제 다시 내려와 잠시 구층암에 다녀왔음. 구층암은 모과나무 원목의 형태를 살려 기둥재로 쓴 것으로 유명하지만, 그 암자 자체도 아름다운 곳임.

오르내리는 길의 짤막한 조릿대숲길 또한 구층암 가는 길의 운치를 살림.

매화가 필 때가 되면 인산인해를 이룰 각황전 뒤 언덕.

이 글에서 화엄사가 4할 정도의 비중을 차지한 것 같은데, 그 정도의 감동을 충분히 선사해 줄 만한 곳임. 화엄사의 배치나 미학에 관한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얼마 전에 올린 글을 참고해 보길 바람.

이제 다시 구례읍내로 내려와 순천행 시외버스를 타고, 또 선암사 가는 버스로 갈아타 1시간여를 달림. 대중교통을 이용한 여행은 고생한 만큼 그 값어치를 다하지만, 이동시간이 몇 배로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임.

선암사의 마스코트, 승선교와 강선루.

한반도의 일주문 중에서는 건립연대가 가장 이른 작품인 선암사의 일주문. 담장으로 좌우가 막혀 있어 선암사란 공간의 특수성을 와닿게 함.

알 사람들은 다 아는 선암사에서의 조계종과 태고종 간 알력다툼. 승려들끼리 각목을 들고 패싸움까지 벌이게 한 이 다툼은 작년에야 그 마침표를 찍었음.

선암사는 참으로 오랜 기간 화마와의 사투를 벌여 왔음. 그 마지막은 1819년, 대부분의 건물이 이 때의 화재 이후 세워졌음. 대웅전의 기단이 그 오랜 세월 겪었을 고통을 대변해 주고 있음.

선암사의 가장 큰 매력은 가정적인 당우의 배치라고 볼 수 있음. 건물들을 돌고 돌아 만나게 되는 기쁨, 그것이 선암사의 매력임.

원통전은 개중에서도 내가 가장 아끼는 건물임. 팔상전과 불조전 그 비좁은 틈사이로 들어가면 나타나는 이 건물은 친절하게도 가운데 칸이 앞으로 돌출되어 있어 부족한 처마를 보충해 주고 있음.

선암사의 또 다른 포인트인 "뒤ㅅ간".

옛 사진을 보고 여러 의문점을 갖고 있던 장경각 건물이었는데, 내부 구조를 보니 2층집 구조였던 일제시대 당시의 모습이 이해가 되었음. 내고주 넷이 사천주와 같이 들어서 있고, 그 주위로 경판을 배치한 구조임.

선암사의 새로운 마스코트인 묘공.

이날은 본래 여수로 이동하여 여수 야경을 구경할 작정이었으나, 거센 비가 내려 일정은 수포로 돌아갔음.

마지막 날은 여러 모로 날씨운이 따라주지 않았음. 예상 못한 바는 아니었으나,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 5시 반에 버스를 타고 향일암을 향했지만 노력이 무색하게도 하루 종일 해는 구름 밖으로 고개를 내밀지 않았음.

해동용궁사가 부산 시내와의 접근성 탓에 크게 부각된 측면이 있다만, 바다를 바라보는 사찰 중에서 해동용궁사는 바다와의 거리가 몹시 가깝다는 점 외의 장점은 딱히 찾지 못하겠음. 오히려 향일암은 여러 자연지물을 통해 천연적인 관광지로의 역할을 다하고 있으며, 사찰 자체 또한 인위적인 조각이나 부조화 없이 남해도를 바라보는 풍경과 융화됨.

다시 여수 시내로 돌아왔음. 진남관은 드디어 올해 그 공사가 끝난다고 하니 다행임.

다리 건너 고소대에는 타루비와 수군대첩비가 있음. 여기서 좀 더 올라가면 오포대가 나옴.

오포대에서 바라본 여수 시내의 모습.

다시 내려와 오동도를 향했음. 만개한 동백을 기대하고 갔으나, 아직 만개하려면 때가 이른 듯함.

오동도는 산책로의 정비가 몹시 잘 되어 있었음. 향일암과 더불어 여수의 대표 관광지로 손색없는 곳임.

다시 순천으로 올라와 순천만습지를 찾았음. 이날 지극히도 날씨운이 따르지 않았던 탓인지, 강풍주의보가 발효되어 거센 빗방울이 온몸을 강타했음. 애초에 일몰 풍경을 기대하고 갔던 것이기에 아쉬움이 컸으나, 엄청난 흑두루미 떼는 가히 장관이었음.

순천만은 하필 국가정원 공사중에, 용산전망대까지 통제 중이라 사실상 갈대밭 외에는 볼 것이 없었음. 그나마도 느긋하게 산책하고 싶었던 내 심정과 달리 거센 비바람으로 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이른 고속버스편을 예매해 일정을 앞당겨 귀가했음.

전체 일정은 다음과 같았음. 혹시 뚜벅이로 방문할 일이 있다면 참고하기 바람.

1일차 - 01.17.
05:00 용산역 (여수엑스포행 ktx)
07:20 남원역
07:50 만복사지
08:20 조식
08:50 광한루원
10:20 구례행 버스 탑승 (구례 7-8번 버스, 10:10 남원터미널발)
11:30 구례터미널 (구례 8-1번 버스, 11:40 구례발)
12:10 연곡사
13:20 출발 (구례 8-1번 버스, 13:20 피아골회차)
14:00 구례터미널 (구례 3-8번 버스, 14:20 구례발)
14:30 죽연마을회관 (도보이동)
14:40 사성암입구 (마을버스 탑승)
15:00 사성암
15:40 출발
15:50 사성암입구 (도보이동)
16:40 구례읍내 도착, 석식
17:20 구례터미널 (구례 5-1번 버스, 17:30 구례발)
17:40 숙소 도착

2일차 - 01.18.
06:00 기상
06:40 출발 (도보이동)
07:10 화엄사
09:30 출발
10:00 숙소 복귀 (구례 5-3번 버스, 10:20 구례발)
11:00 구례터미널 (순천행 시외버스, 11:10발 광신고속)
11:50 순천터미널 (순천 1번 버스, 12:00 기점발)
13:10 선암사입구 (도보이동)
13:40 선암사
14:40 출발
15:10 선암사입구 (순천 16번 버스, 15:10 낙안발)
16:20 순천터미널 (여수행 시외버스, 금호고속)
17:30 여수터미널
18:00 석식 및 숙소 이동

3일차 - 01.19.
05:00 기상
05:40 출발 (여수 111-1번 버스, 05:30 미평발)
06:40 향일암입구 (도보이동)
07:10 향일암
07:50 출발
08:10 향일암입구 (여수 111-1번 버스, 08:20 향일암발)
09:00 여수 시내 (진남관, 고소대, 오포대)
10:00 출발 (여수 2번 버스, 여수엑스포행)
10:20 오동도
12:30 출발 (여수 2번 버스, 여수엑스포행)
12:50 여수엑스포역 (용산행 무궁화호, 13:19발)
13:50 순천역
14:00 순천터미널 (순천 버스 66번, 13:50 기점발)
14:30 순천만습지
15:30 출발 (순천 버스 66번, 15:30 인월발)
16:00 순천터미널, 석식 (서울행 고속버스, 17:00발 금호고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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