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시원하게 터지는 홈런은 야구를 보는 가장 큰 묘미이다
선두 주자들이 차례대로 들어온 뒤 마지막으로 타자가 홈을 밟으며 축하받는 순간은 홈런의 하이라이트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정작 홈런을 친 타자가 베이스를 돌지 못한 사례가 단 하나 존재한다
필라델피아 자이언츠의 포수였던 벤제 몰리나가 그 해프닝의 주인공이다
2008년 9월 26일 LA다저스와의 경기, 몰리나는 6회 말 1사 1루 상황에서 바깥쪽 높은 공을 쳐 장타를 만들어 낸다
타구는 외야 우측 담장 상단 부근에 맞고 그라운드에 떨어져 안타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 구장이던 오라클 파크에서는 타구가 담장 상단의 금속판에 맞았을 시 홈런이라는 규정이 있었다
자이언츠 감독 브루스 보치는 우선 발이 느린 몰리나를 대신해 에마누엘 보리스를 대주자로 올렸지만, 워낙 애매했던 타구였던 터라 비디오 판독을 요청한다
판독이 진행되는 동안 보리스는 결과를 궁금해하며 농담따먹기를 하고 몰리나도 묘한 표정으로 상황을 지켜봤다
결과는 금속판에 맞았다고 판단, 원심을 뒤집고 홈런이 선언된다
선언과 동시에 심판은 대주자 보리스에게 베이스를 돌라는 지시를 한다
보리스는 당황한 나머지 심판에게 정말 돌아도 되는지 되묻고 홈런을 친 몰리나도 당황한다
감독은 심판에게 대주자를 취소하고 다시 몰리나를 올리겠다고 요청하나 규정상 불가능하다는 답만 돌아왔다
다저스 측은 대주자 규정에 대해 항의했지만 전혀 문제가 없다는 답변을 끝으로 이 주인공 없는 이상한 홈런이 확정되었다
보리스는 어이없어하면서도 자기가 홈런을 친 것 마냥 하이파이브와 세리머니를 하며 홈으로 들어왔다
착잡한 표정을 짓던 몰리나도 곧 폭소를 터뜨리며 보리스의 장단에 맞춰 주었다
경기는 홈런에 힘입어 자이언츠의 6대5 승리로 끝났다
메이저리그 기록실에도 득점 주자에 몰리나의 이름은 없으며, 결국 1홈런 0득점이라는 다시 보기 힘들 진귀한 기록이 남게 된다
심지어 몰리나는 해당 경기 시작 직전 그 해 자이언츠 최고의 선수에게 주는 윌리 맥 상을 2년 연속 수상한 참이었는데, 2008년 9월 26일은 그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하루가 됐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