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졌던 취미 중 가장 비쌌고 가장 뜻 깊었다.
아마 내가 사진에 관심 (혹자는 집착이라 할 수도 있겠다)에 가지기 시작한 것은 내 개가 죽고 나서다.
아니, 더 정확히는 내 개가 죽음에 가까워지며 볼품 없어져 갈 때 였다고 할 수도 있겠다.
죽음에 가까워지면 비참해진다. 고운 금색을 띄던 색은 점점 바랬고, 나중엔 그 마저도 점점 빠져 더 이상 자라지 않았다.
내가 휴가를 나올 때마다 점점 상태가 안 좋아져 마지막 휴가가 끝나 부대로 복귀할 땐 이미 앙상해져 있었다.
그리고 새벽 6시에 나가서 오후 1시에 덜덜 떨며 제설작업을 끝내고 GP로 와 어둑한 공중전화 앞에 앉아 춥다고 칭얼대러 전화했을 때 죽었다고 들었다.
아 더 예쁠 때 사진 좀 더 찍어둘 걸. 아 좀 더 활발할 때 영상이라도 남겨둘 걸.
딱 이 시점 부터 필름을 아끼지 않았다. 언제나 카메라 한대는 들고다니며 가족들의 일상을 찍었고, 퇴근길을 찍었다.
아무것도 다를 게 없는 일상이더라도 계절마다 매일 거닌 거리를 한 장씩은 찍었다.
1. 한국 복귀 전의 기록
프랑스에서는 혼자 있는 사람들이 많다. 고독을 그렇게 씹어대니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나 푸코의 판옵티콘 같은 생각이 나오나보다. 혼자 테라스에 앉아 에스프레소 하나에 담배 반갑 태우는 일상은 흔하다. 밝은 파스텔 핑크 앞에서 담배피는 여자와 앙상한 가지 밑에서 책을 읽는 여자. 색감과 활동이 전혀 매칭되지 않지만 둘을 딱 바꾸면 될 듯한 하프카메라 두장이 우연찮게 담겼다.
이때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흔히 멘탈 터졌다고 하듯이 봇물 터지듯 외로웠고 어디든 떠나야 했다. 그래서 떠났다. 겨울의 시칠리아는 아름답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여름과 달리 겨울은 조용하다. 날씨는 따뜻했고 사람들은 대부분 은퇴한 노인들이라 친절했다. 그리스도 좋았다. 해지는 노을이 너무 좋았고 언제나 파란 하늘이 걸음을 거닐게 했다. 지중해의 나라들은 와인이 풍부하다. 그래서 나는 그 와인에 취해 이리저리 걸어다니는게 일상이었다.
2. 서울의 봄
사실 서울에서 장기간 산적은 없다. 서울의 사계절을 이어서 본 적도 없으며 이렇게 세상많은 꽃이 있을 줄 몰랐다. 최준식 교수의 서울에 대한 이야기 시리즈가 있다. 서촌이야기, 북촌이야기를 읽으며 나의 출사지를 정했다 (사실 화장실에 앉아 곁눈으로 흝었을 뿐이다). 서울대에 꽃은 많다. 하지만 이때쯤 학교를 향하는 많은 버스들은 학점지옥에 빠질 줄 모르는 어린이들이 그저 과잠에 테니스 스커트를 입고, 한껏 멋부린 청년들과 함께 꽉꽉 차있다. 서촌에는 또 커플이 뭐그리 많은지... 그렇게 손잡고 있으면 더울만도 한데 잘 돌아다니더라. 이 때 쯤 오존을 들고다니며 열심히 파노라마 찍으러 다녔었다. A컷은 없었다.
3. 여름, 그리고 새로운 도전
이때쯤 Summer fling도 시작했다. 해외는 여름방학이 두달 가까이 된다. 이때 인턴 커리어를 쌓던, 어디 시골 친척집에 두어달 살러가던, 환경에 변화를 준다. 그리고 그 변화속에서 불붙고 여름이 끝나고 제자리로 돌아가면 불꽃이 사그라들어 헤어지는, 그런 연애를 서머 플링 (날려버림이란 뜻이 있다) 이라 한다. 그래서 사진이 많이 없다. 인물 사진이 많아서 다 지워버렸다. 핫셀도 많이 썼고 자가현상도 시작했으며 F100을 사서 진짜 많이 썼다. 이때 달에 10롤은 그냥 썼던 것 같다. 새로움이 짜릿했고, 여름은 더웠다. 사진을 다시 봐도 F100은 갓바디다.
4. 성찰. 그리고 되짚어 보기.
그 후 패션위크가 열렸다. 패션위크는 좋았다. 처음으로 인물을 기록이 아니라 어떻게 찍을지 고민해봤다. 일종의 경험치 이벤트였던 것 같다. 구도를 조금씩 더 생각 하게 됐고 좀 성장했으리라 믿고싶다. 사진을 왜 찍느냐에 대한 고민이 여기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냥 찍는 행위 그 이상으로 뭔가 더 남아야 이 짓을 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다시봐도 F100은 갓바디다.
5. 단풍, 그리고 한 사이클의 끝.
거리고 단풍이 왔고 거리가 그냥 찍어도 예뻐서 사진이 좀 퇴화했다. 그리고 현상스캔의 스트레스도 같이 터져버려서 탈 필름하는 가장 큰 촉매가 되어버렸다. 다시 한번 커플들의 야외 데이트 시즌이 돌아왔고 이제는 추우니까 더 붙어있더라... 그렇게 바쁘던 1년이 거의 갔다. 아직 마무리 할게 많다. 하지만 전혀 보이지 않던 끝이 이제야 시작되었다. 언제나 마무리가 좀 부족했다. 이문열의 젊은날의 초상중에 "너는 말이다. 한 번쯤 그 긴 혀를 뽑힐 날이 있을 것이다. 언제나 번지르르하게 늘어놓고 그 실천은 엉망이다." 라는 문구가 있다. 나태해지려 할 때마다 상기하려 한다.
6. 마무리
마지막은 언제나 내 이불 속을 좋아하던 강아지. 사료나 배변패드 같은 거는 다 주변 줘버렸는데 2년 됐지만 아직 얘 집은 못 버리고 있다. 실상은 지 집에서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내 옷 위나 이불속에 또아리 트는걸 더 좋아했다. 아이러니하게 남아있는 사진들은 대부분 필름이다. 테스트 샷의 피사체로 언제나 준비된 사수였기에 엑사, 코니카 같은 처음 산 똥 맛 렌즈 사진 밖에 없다. 최고 성능 카메라가 언제나 있어야 한다는 강박이 얘 때문에 생겼다. 근데 개는 아마 다시 못 키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