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물학도 고고학과 비슷하게 도굴당하거나 행적이 불분명해진 화석들이 많음
중일전쟁으로 소실된 베이징 원인의 유골이나 무령왕릉의 안타까운 발굴 과정 같은 것에 비하면 아무래도 고생물 화석의 발굴사 등은 많이 알려져 있진 않기에,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려 안타까운 고생물 화석 3점을 소개해봄
(스피노사우루스 발굴지의 에른스트 박사)
스피노사우루스는 1912년 이집트 바하리야층에서 독일의 고생물학자 에른스트 슈트로머 폰 라이헨바흐 남작(Ernst Stromer von Reichenbach)에 의해 최초로 발굴되었음. 백악기 후기 세소마눔절의 이 수각류 공룡 화석은 곧 스피노사우루스 아이깁티아쿠스라는 학명이 붙음
화석의 크기가 크기라서 다 발굴하는 데에만 4년이나 걸렸으며 제1차 세계대전이 겹친 데다가 지형도 워낙 험했기에 여러 악재가 겹치는 등 발굴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함
그렇게 힘들게 발굴한 모식표본 BSP 1912 VIII 19는 에른스트의 조국인 묀헨 박물관에 전시됨
허나 몇년 뒤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독일이 격전지가 되자, 당시 살아있던 에른스트는 박물관장이자 나치당원인 칼 버렌(Karl Beurlen)에게 스피노사우루스 아이깁티아쿠스의 표본을 안전한 곳으로 옮겨달라고 거듭 요구했지만 버렌은 그의 요구를 거절했고, 결국 1944년 4월 24일 또는 25일 영국군의 폭격으로 스피노사우루스의 모식 표본은 잿더미가 되고 말았음
이에 에른스트는 깊이 상심하였고 1952년 사망함
이로 인해 스피노사우루스의 묘식표본은 현재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이며 이는 주기적으로 이슈가 되곤 하는 스피노사우루스 복원도 논란의 근본적인 원인이기도 함. 스피노의 인지도에 비해 화석이 많이 부실한 상태이지
그나마 스피노사우루스에 대해선 2014년 모로코의 고생물학자 나자르 이브라힘이 추가적인 화석을 구해 스피노사우루스에 대한 비밀을 더 밝혀냈긴 하나 아직은 스피노사우루스에 대해 우리가 아는 정보는 적은 형편임
또 반년쯤 전엔 이브라힘이 발표한 FSAC-KK 11888 화석은 아예 스피노사우루스와 다른 종이라는 주장 역시 나오기까지 한 걸 보면(근데 사견으로는 이런 주장은 흔해서 딱히 반향은 없을듯) 스피노사우루스의 전신 화석을 구하는 일은 요원해보이기도...
스피노사우루스의 모식화석은 당시 남긴 스케치로밖에 접할 수 없게 되어 두고두고 안타까움
2. 타르보사우루스의 피부 화석들
<한반도의 공룡>으로 유명세를 얻은 타르보사우루스 바타아르는 꽤 자주 화석이 발견되는 대형 수각류 공룡 중 하나임. 그리고 1991년에는 아주 보존률이 좋은 미라 화석까지 발견되기도 하였는데, 위의 사진이 바로 그것
이탈리아-프랑스-몽골 연합 탐사팀이 몽골의 네메그트층에서 발견한 이 골격은 대퇴골을 비롯해 골반, 꼬리까지 이어지는 높은 보존률의 화석이었는데, 척추 부근에 광범위한 피부 인상 화석이 남아 있었다고 함
당시 주고받았던 서신에서는 이 타르보사우루스는 오늘날 사막에서 볼 수 있는 낙타 시체처럼 가죽이 때양볕에 의해 죽 늘어나서 뼈에 들러붙은 채 말라버렸을 것이라며 화석이 퇴적되었을 상황을 짐작하는 내용이 담겨있음
아쉽게도 모종의 이유로 발굴하지 못하고 잊혀졌다가 풍화 침식 또는 도굴로 인해 현재는 사라진 것으로 추측됨. 이제는 탐험대원이었던 프랑스 고생물학자 필립 타케(Philippe Taquet)가 찍은 발견 당시의 사진과 몇몇 고생물학 논문의 짧은 언급만이 남아있을 뿐
(필립 타케. 북아프리카 고생물 연구의 권위자이며 2009년에 수 타일러 프리드먼 메달을 수여받았다)
덧붙여서 아예 언급만 남은 연조직 화석도 있음
켄 카펜터(Ken Carpenter)의 저서 공룡 백과사전(1997)에는 러시아의 고생물학자 콘스탄틴 미하일로프(Konstantin Mikhailov)와 나눈 서신이 기재되어있는데, 여기선 미하일로프 자신이 몽골에서 타르보사우루스 바타아르의 화석을 발견했는데 그 두개골 주변에서 발견된 피부 화석들이 마치 목 밑으로 쳐진 듯한 인상 자국을 남기고 있다면서, 혹시 군함조처럼 목의 연조직을 부풀릴 수 있지 않았을까 추측하는 내용이 나옴
역시 이 두개골 화석 또한 발굴되지 않았으며 현재는 사라졌을 것으로 보임
(타이쿤류 게임 프리히스토릭 킹덤의 타르보사우루스 묘사)
그래도 저 서신은 여러 책을 거치며 꾸준히 살아남아 나름 고생물학계의 가십거리로 남은 상황이며 이것을 참고해 타르보사우루스의 목 부근에 덜렁이는 연조직을 달아주는 예술이 종종 나오곤 함
그 외에 간신히 기록이 남은 타르보사우루스의 피부 화석들. 가슴 부근과 발바닥이 보존되었는데 직경 2mm 정도의 둥근 비늘들로 이루어져있는 것을 알 수 있음
이 경우는 그나마 친척인 티라노사우루스가 많은 양의 피부 화석을 보유하고 있어서 안타까움이 덜하긴 하나, 그래도 예상치 못한 추가적인 정보 및 색깔 유무를 알 수 있었을지도 몰라 아쉽긴 함
참고: https://incertaesedisblog.wordpress.com/2022/10/04/the-lost-tarbosaurus-mummy/
3. 북한 신의주의 익룡 화석
이번에는 무려 한반도의 화석 소식. 북한의 신의주를 비롯한 북서부 일부 지방은 중국에서부터 이어지는 제홀 그룹(jehol group)이 약간 걸쳐 있는데, 이 제홀 그룹은 보존률 좋은 화석이 무더기로 나오는 대표적인 지층임
수많은 깃털 공룡들이 제홀층군에서 나왔고 최근에도 세계 최초로 전신과 연조직이 보존된 검룡류 화석이 발굴되기도 함
위 사진이 10여년 전 북한 신의주에서 발견된 익룡 화석으로, 보시다시피 아주 좋은 보존률을 자랑함
백악기 전기의 화석으로 한눈에 알 수 있듯 아누로그나투스류 익룡이며 몸길이는 약 15~20cm인데, 문제는 중국의 고생물학자 케퀸 가오(Ke-Qin Gao)가 논문을 발표하면서 첨부한 위 사진 2장 이후론 새로운 사진이 공개되지도 않고 아무런 연구가 진행되지 않는 상황. 심지어는 저 화석의 행방 역시 아무도 모름;;
(아누로그나투스류 익룡의 일반적인 외형. 쏙독새 내지 날다람쥐를 닮은 귀여운 친구들)
그 외에 무려 연조직이 달린 원시 조류 화석과 다양한 곤충 화석 등 여러 화석이 발견되는 중인데 하필 발견되는 위치가 연구하기 극악이라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임. 그나마 2020년대 들어서는 중국의 학자들과 공동 연구해(주로 중국 필두로) 몇몇 논문을 발표하고는 있긴 하나 많이 부족한 형편임
그리고 웃긴건 북한쪽 논문들을 읽다보면 고생물학에서마저 주체적인 진화를 언급한다는 점... ㅋㅋㅋㅋㅋ
이렇게 미제가 되어버린 고생물 화석 3개를 소개해봤는데, 싱붕이들은 어떤 화석 이야기가 가장 안타깝다 생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