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다이에서 센세키도호쿠선 쾌속열차를 타고 1시간 정도 달려 이시노마키에 도착했다
이시노마키시는 미야기현 동부 해안에 위치한 인구 15만 정도의 도시로,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동일본 대지진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시정촌이다
이시노마키 역 바로 앞의 시내 중심부는 바다에서 꽤 떨어진 곳인데도 1.2미터의 쓰나미가 밀고 들어왔다고 표시되어 있다
해안에 가까워질수록 높은 쓰나미를 맞은 것으로 보인다
여기는 3.7미터의 쓰나미를 맞았다
해안가의 주거단지였던 곳은 이렇게 공동묘지가 되었다
2011년 3월 11일 그 날 쓰나미로 불귀의 객이 된 주민들로 보인다
이시노마키역에서 40분 정도 걸어 도착한 이시노마키 진재유강 가도노와키초등학교 (石巻市震災遺構 門脇小学校)
(9시-16시 운영, 월요일 휴무, 입장료 600엔)
동일본 대지진 때 쓰나미를 맞고 박살난 학교 건물을 지진 재해 기념관으로 새단장한 곳이다
입구에는 당시 쓰나미에 휩쓸려 으스러진 소방차가 있었다
이시노마키시는 지진과 쓰나미로 15만 인구 중 3500명 이상의 사망, 실종자가 나왔다
10미터 정도의 쓰나미 한 번으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이곳 가도노와키 소학교는 10미터짜리 쓰나미는 버텼지만, 쓰나미로 밀려온 차량에서 발생한 연쇄적인 화재로 전소되었다
학생들은 뒷산으로 대피하여 모두 무사했지만, 그 앞의 주택단지에서는 극심한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지진 4일 후 쓰나미로 철저히 파괴된 이시노마키 시내의 모습이다
이시노마키 시내 각지에 높은 쓰나미가 들이닥쳐 엄청난 사망자가 발생했다
심지어 이시노마키에서 1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오나가와 원전은 14미터의 쓰나미를 맞고 화재가 발생하여 비상 안전장치가 작동하지 않았다면 후쿠시마 2탄이 될 뻔했다
동일본 대지진 당시 이재민들이 살던 임시 컨테이너 주택도 있다
가도노와키 소학교 앞에도 빽빽한 희생자들의 묘비
소학교에서 나오면 바로 앞에 있는 이시노마키 미나미하마 쓰나미 부흥기념공원 (石巻南浜津波復興祈念公園)
사실 원래 공원이었던 곳이 아니라 주거지가 쓰나미에 초토화 당한 후 공원으로 복구한 것이다
공원 가운데 있는 미야기 쓰나미 전승관 (みやぎ東日本大震災津波伝承館)에도 방문했다
(9시-17시 운영, 월요일 휴무, 입장료 무료)
동일본 대지진에서 극심한 피해를 입은 이와테, 미야기, 후쿠시마현
이와테현은 리아스식 해안을 덮치는 30~40m 쓰나미 영상으로,
후쿠시마현은 '그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아주 유명해졌지만
정작 가장 큰 인명피해가 발생한 곳은 여기 미야기현이다
미야기현은 이와테, 후쿠시마에 비해 해안 지역 인구가 많았고, 진원에서 가장 가까워 쓰나미가 제일 먼저 덮쳤으며 쓰나미가 올 때 대피가 곤란한 해안 평야지대가 많아 인명피해가 가장 컸다고 한다
미야기현 내 사망자가 1만이 넘는데, 이와테+후쿠시마 합친 것보다 많다
그 미야기현 중에서도 이곳 이시노마키와 이따 방문할 게센누마 두 도시에서만 거의 그 절반인 5천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고 정작 가장 강력한 진도 7이 찍혔던 미야기현 내륙의 피해는 거의 없다
시도 때도 없는 지진에 단련되어 세계 최고 수준의 내진 기술을 적용하는 일본인들도 쓰나미에는 도망가는 것 외의 방법이 없다
게다가 이런 지진과 쓰나미는 한 번이 아니라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19세기 메이지 시대인 1896년과 일제시대인 1933년에도 쓰나미로 궤멸적인 피해를 입었고, 1960년 칠레 지진 때는 지구 반대편 칠레에서 발생한 쓰나미가 태평양을 건너 여기까지 와서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쓰나미로 쓸려나간 진흙탕에서 건져낸 전화기와 시계
동일본 대지진 외에도 다른 지방의 고베 대지진, 그리고 일본인들이 아주 두려워하는 난카이 대지진 등에 대해서도 잘 설명해 두었다
구글 스트리트 뷰로 당시의 처참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지진 후 4개월이 지난 2011월 7월인데, 복구에 손도 못 대고 있다
저 바다가 한 번 넘쳐 흐른 후로 너무 많은 것이 바뀌었다
당시 저 뒷산으로 피난한 이재민들이 남긴 사진과 영상으로 쓰나미의 무서움을 아주 잘 알아볼 수 있다
미야기현 동부 해안가에 있는 선로는 쓰나미로 워낙 피해를 크게 입어서, 이렇게 선로를 걷어내고 BRT로 대체 운송 중이다
도로 중간중간에 저렇게 과거에 쓰나미로 침수되었던 것을 알리는 표지가 있다
선로를 걷어내고 버스 전용 도로를 깔아 굴리는 시스템이라, 정류장도 저렇게 역처럼 만들어 뒀다
이시노마키에서 2시간 반 걸려 도착한 게센누마시 리쿠젠하시카미역에 하차
게센누마시는 쓰나미도 쓰나미지만, 항구의 연료 탱크가 터져 저렇게 도시 전체가 불바다가 되었다
여기도 그 날 8만 인구 중 1200명 정도가 사라졌다
이 동네를 찾은 이유는 바로 여기 게센누마시 동일본대지진 전승관
(気仙沼市東日本大震災遺構・伝承館 (旧気仙沼向洋高校))을 보기 위해서다
해당 전시관 역시 아까 가도노와키 소학교처럼 지진 전에 학교였던 건물을 리모델링했다
(9시 반-16시 운영, 월요일 휴무, 입장료 600엔)
동일본대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각 현의 안내물이 준비되어 있다
'그 날' 이후 여기가 어떻게 되었는지 보여주는 사진
여기는 이시노마키와 다르게 내부 사진이 대부분 촬영금지라 찍어 오지는 못했다
다만, 지진 직후 찍은 사진을 보면 워낙 처참하고 잔혹해서 촬영금지 때린 게 아닌가 싶다
쓰나미 높이보다 아래 있었던 2층은 철저히 파괴되었고
쓰나미가 8미터 높이에 있는 3층 교실에 차를 이렇게 처박아 뒀다
12미터짜리 쓰나미와 높이가 비슷했던 4층에는 이렇게 쓰나미로 밀려온 어선이 건물에 부딪혀 생긴 자국이 남아있다
그 날 이 고등학교 학생들은 이렇게 옥상에 대피해 건물 4층까지 집어삼킨 쓰나미로부터 구조되기만를 기다렸다고 한다
당시 쓰나미에 밀려온 건물 잔해 및 차량을 보존해 두고 있다
쓰나미가 지나간 곳에는 멀쩡하게 남아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그 날 이후 이렇게 오랫동안 생지옥이었던 땅이다
저 뒤에 보이는 건물이 아까 그 지진 전승관이다
콘크리트로 튼튼하게 지은 학교 건물 빼고 모든 게 쓸려 나갔다
도호쿠, 특히 이와테, 미야기, 후쿠시마현 해안가에 잘 정리된 공터가 있다면 높은 확률로 쓰나미로 박살난 건물을 밀어버린 빈 땅이다
쓰나미 희생자들의 명복을 비는 위령비
모든 희생자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위령비 바로 옆에는 쓰나미가 들이닥쳤던 높이를 표시하고 있다
이 바닷가는 원래 유명한 해수욕장이었지만, 지진 이후로 이렇게 높은 방파제로 막아버렸다
여기도 저 바다가 한 번 넘친 후 너무 많은 사람의 삶이 바뀌었다
센다이로 복귀해 도쿄행 신칸센 타기 전 센다이 명물인 즌다 맛 좀 보려고 냉동 즌다모찌와 즌다쉐이크를 샀다
즌다모찌 저거 냉동이 아니라 냉장인 줄 알고 샀더니 오미야 가서 녹더라 ㅋㅋㅋㅋ 언 째로 먹었는데 식감이 좀 그랬지만 맛있었다
즌다쉐이크는 소문대로 맛있었다 두 번밖에 못 먹은 게 아쉬울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