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스튜디오로 황룡사 9층 목탑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1월이었음
나름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고건축이 아닌가 싶어 작례를 찾아봤는데 의외로 몇 건 정도밖에 확인이 안 되어서, 이참에 제대로 한 번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었음
그래서 콧바람도 쐴 겸 이세를 다 만들고 나서 경주도 한 번 다녀왔음
이번 창작의 목표는 크게 2가지였는데, 어차피 스튜디오는 부품이 무한이니 만드는 김에 미니피규어 스케일로 크게 만들기 였고, 또 하나는 구조적으로 정확하게 만들기였음
비록 가상의 모델이긴 하지만 이 정도 크기와 정확한 구조까지 구현한 건 본인이 처음이 아닌가 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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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황룡사지 바로 옆에 있는 경주역사문화관에 전시된 황룡사 9층 목탑 최종 복원안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계획안)임
경주시는 꽤 오래 전부터 황룡사의 복원을 추진해왔는데, 유네스코의 제동으로 한 번 엎어졌다가 특별법 제정으로 다시 추진하는 대신 일단 천천히 진행해나가는 듯함
본인은 이 복원안을 기준으로 모델링을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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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사 9층 목탑은 645년 완공된 거탑으로, 주위 9개 나라를 이겨낸다는 의미에서 9층으로 지어졌다고 전해짐
동아시아에 존재했던 수많은 목탑 중 정확한 높이 기록이 남아있는 몇 안 되는 목탑인데, 사리기 내함에 새겨진 찰주본기에 따르면 그 높이가 225척이었음
다만 이 225척이라는 높이가 창건 당시의 고려척에 의하면 81m이고, 찰주본기가 만들어진 당시의 당척에 의하면 67m 정도라 정확한 높이를 알 순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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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목탑 터의 크기를 고려한 비례관계와 기록의 맥락 등을 고려하였을 때 고려척을 기준으로 계산한 81m가 더 많은 지지를 얻고 있고, 제시된 복원안 역시 81m를 기준으로 삼고 있음
모델에선 미니피규어의 키가 대략 4cm고, 사람의 평균적인 키를 170cm 정도로 두어 약 1:42 스케일로 만들어 전체 높이는 대략 2m에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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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사 9층 목탑보다 높았다고 주장되는 거탑으로는 대표적으로 일본 도다이지 목탑과 중국의 영녕사 목탑이 있는데, 도다이지 목탑의 경우 높이가 100m에 이르렀다고 주장되나 기단 한 변 길이가 15m 정도로 황룡사 9층 목탑보다 7m나 짧아 신빙성이 떨어짐
영녕사 목탑의 경우 높이가 130m가 넘었다고 추정되며 기단 역시 한 변이 38m에 이르렀지만 완전한 자립 목구조가 아니라, 안에 흙을 채워넣었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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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황룡사 9층 목탑은 당대 동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목탑 중 하나였을 가능성이 높음
다만 독보적인 1위라고 말하기는 어려움
터가 북한에 있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고구려 청암리사지의 목탑 역시 높이가 80m 이상으로 추정되고, 통일신라 시기 남원 실상사에서 황룡사 9층 목탑과 거의 동일한 크기의 기단이 발견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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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사의 복원안은 주심포 양식을 채택했음
황룡사 9층 목탑이 백제 기술자의 도움을 받아 지어졌다는 기록이 있고,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이자 백제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지어진 일본 호류지 5중탑은 하앙 구조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하앙 구조도 유력한 안으로 제시되었지만 어째서인지 기각된 모양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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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가 클수록 작업량은 많아지지만 만들기는 쉽기 때문에 만드는 과정 자체는 대체로 무난했지만, 선자연과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처마선을 만드는 게 가장 어려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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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가 16m 정도에 이르렀던 상륜임
상륜은 겉보기엔 고층 건물의 첨탑과 그 위에 달린 피뢰침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전혀 아님
피뢰침 자체가 18세기에 이르러서야 서구에서 발명된 물건이라, 경주 시내 독보적인 높이의 건축물이었던 황룡사 9층 목탑은 서 있는 내내 낙뢰 피해를 입었음
낙뢰로 인한 수리는 여러 번 있었고, 고려 초에는 탑이 완전히 무너져 다시 지어야 했음
이는 전근대 모든 목탑의 한계이고, 목탑이 많이 남은 일본조차 대부분은 재건한 것들임
1300년을 견뎌온 호류지 목탑이 기적 같은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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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사 9층 목탑은 고려 시대 몽골군의 침입으로 완전히 불타 사라짐
이때 황룡사 전체가 불타 완전한 폐사지가 되었는데, 제아무리 불교 국가인 고려라 해도 전란으로 온 국토가 쑥대밭이 된 와중에 개경에서 한참 떨어진 지방의 거찰을 복구할 여력은 없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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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고려가 근성으로 목탑을 다시 지었다 해도 고려를 뒤이은 조선은 강력한 숭유억불 정책을 펼쳤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낙뢰로 다시 무너지거나 유생들이 파괴했을 가능성이 높음
고려 말 해안가에서 극성이었던 왜구 역시 큰 위협이었을 것임
고려시대만 하더라도 한국엔 수많은 목탑이 세워져 있었지만 대부분 전란이나 숭유억불 정책으로 파괴되어 현재는 석탑 정도만이 남아있는 게 현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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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렌더링이 생각보다 색감이 좀 어둡게 나오는 거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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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사 9층 목탑은 누각 형식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 외부 발코니에서 밖을 내려다보는 게 가능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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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들 때는 1층이랑 2층 만들 땐 고생 좀 하고, 어차피 그 위는 아래층에서 만들어놨던 공포, 창살, 문, 처마, 지붕을 그대로 재활용하면 되니 얼마 안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탑이 위로 갈수록 점점 좁아지다보니 생각보다 바꿔야 할 게 많아 시간 절약이 크진 않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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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링하면서 서까래와 부연 끝에 금색 크롬 부품을 꽂아놨는데, 조선시대에나 유교의 영향으로 장식을 절제했던 거지 화려한 불교 문화가 꽃피운 신라에선 일일이 금동 장식을 꽂았음
이는 동궁과 월지 출토 유물에서 명확히 확인됐는데, 신라 시대 유적 실물 복원에 전혀 반영이 되지 않기 일쑤임
일본 건물 같다면서 고증상 맞는 주칠 단청이 아닌 천편일률적인 조선식 상록하단 단청을 칠하는 것과 함께 가장 큰 비판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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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적으로는 실물 복원했을 때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일단 사용 부품 수가 198752개에 이르고 실제로 구할 수 없는 색의 부품도 대량으로 사용했기에 실물 복원은 불가능함
본인도 처음엔 아무리 많아야 한 5만 개 쓰이겠지 했는데 내부 구조 다 만들고 하다 보니 부품 수가 말 그대로 치솟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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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단
기단 초석은 위에만 다듬었을뿐 옆면은 거친 그대로 썼다는 점을 반영해 초석 모양을 다 똑같게 만들지 않았음
다만 심주와 그 주위 16개 초석은 보이지 않는 부분이라 초석을 표현하지 않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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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링을 할 때에는 이렇게 한 층씩 나눠서 만든 다음, 최종적으로 합치는 방식을 사용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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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일반적인 인식과 다르게 실제로 구조적인 한 층은 위 사진과 같음
황룡사 9층 목탑은 적층식 구조를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됨
일반적으로 1층의 기둥이 꼭대기까지 연결되어 있고, 가장 가운데 기둥인 심주가 가장 구조적으로 중요할 것이라 생각하기가 쉬움
하지만 한 층씩 끊어서 단단한 구조체를 만들고, 그것을 차곡차곡 쌓아올리는 것이 더 안정적이라고 함
또한 심주는 맨 꼭대기 상륜만을 지지할 뿐, 그 외의 구조적 역할은 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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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창살과 문, 기와와 부연 등을 제거하면 위와 같은 모습이 됨
저 빽빽한 격자 위에 납작한 격자판을 올리고, 그 위에 윗층 기둥을 꽂아넣음으로써 다음 층이 만들어지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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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하면 위와 같음
층의 바닥은 생략함
가장 아래 격자판 위로 기둥이 서 있고, 그 기둥이 다시 2개 격자판으로 연결됨
그 위로 공포가 올라가고, 빽빽한 격자판이 다시 한 번 층을 단단히 결속함
옆으로 빼놓은 커다란 판은 요즘 건물의 천장 마감재라 할 수 있는 개판으로 공포 위에 올라가 격자 구조를 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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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계획은 이 9층 목탑을 시작으로 중금당, 동, 서금당, 강당, 회랑, 종루, 경루, 중문까지 해서 황룡사 메인 가람을 만들어보는 것이었음
그런데 이 스튜디오라는 게 참 할 말은 많은데 진짜 사람 열받게 한 적이 많아서 실제로 할진 모르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