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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에서 할아버지랑 친구먹은 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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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나가사키 구경하다가 뱃고동 소리 들려서 뭔가 싶어 뛰어가보니까

갑자기 군함 출항식을 하고 있는거임

재밌겠다 싶어서 구경하다가 옆에 구경하던 할아버지가 일본어로 말걸음. 생존형 일본어가 최선인 나는 대화를 나눌 수 없다는 제스쳐로 "한국인이라 일본어를 잘 못합니다"라고 대답하니까

"괜차나, 나도 한국어 할줄 알아"라 당연하듯 하시는거임
"오잉 한국말 어떻게 아세요?"라고 물어보니까 나가사키 놀러오는 한국 대학생들 안내해주고 가르쳐줘서 알고 있다나? 그래서 이것저것 서로 물어봄. 지금 보던게 무슨 행사였는지, 군대는 갔냐느니, 나가사키는 어떴냐 등등

"좀 걷자"라면서 따라오라길래 '아직 주변에 사람도 많으니까 좆되기야 하겠어?'라는 마인드로 같이 걷기로 함

근데 느닷없이 휘파람을 계속 불더니 참새가 날라듬;;
진짜 구라안치고 참새들 저 멀리서 날라오는거임;;

"아니 스즈메? 스즈메와 나니??" 이러니까 존나 뿌듯하다는 제스쳐를 보이며 "내 친구"라는 거... 살짝 소름돋긴 했는데 참새가 ㄹㅇ모이긴 했으니까...

어디 갈거냐 묻길래 "오우라 천주당 보러간다"라고 답했고, "그럼 그거 보고, 만난 궛도 인욘인데, 나랑 밥 한끼할까? 내가 사줄께"라고 물어보심

개쫄리긴 했는데 어차피 참새가 모이는 거 보겠다고 따라온 시점에서 내 콩팥은 털린거라 판단, 까짓거 먹기로 함

연락처를 물어보는데 나도 어지간히 수상한 상태긴 했음. 유심을 아예 한국에다 두고 일본꺼를 끼워서 온 상태에 번호 개통 그런 것도 모르는 상태라 문자/전화 X

라인 아이디는 있지만 폰 바꾸자마자 여행 온 거라서 인증이 안해놔서 실패, 트위터/인스타는 할아버지 쪽이 안해서 불가능, 결국 구글 이메일로 연락하기로 함ㅋㅋ

그러고는 "하야부사? 하야부사다!"라며 참새를 먹으러 날아온 솔개를 쫓아 어딘가로 후다닥 가버리심...

그리고 6시 20분(6시로 하면 자기가 늙은지라 까먹을 것 같대)... 기어코 정해진 시간과 위치에서 접선에 성공함

(개쫄려서 지갑이랑 여권 안 주머니에다 넣고 지퍼 잠금)

"혼자 여행하면 이자까야 무서워서 못 가잖아"라며 본인이 잘 아는 이자카야를 찾아옴. 처음에는 술 이빠이 마시면 진짜 장기 싹 털릴까봐 맥주만 하겠다고 했었음

맥주랑 대충 메뉴 3개 정도 시켜주셔서 같이 먹다가 주인장하고 얘기를 나누더니 "여기까지 왔는데 일본주도 한 번 해봐야 한다!"라며 사케를 내옴

뜨겁더라... 한 입 마시고 우워어어어어 하니까 둘 다 웃으면서 좋아서 내는 소리냐 싫어서 내는 소리냐 껄껄껄

대충 여기서 좀 자세한 얘기를 듣게 됨
외동딸이 한명 있는데 지금은 독일에서 일을 하고 있댄다.
본인은 소방관이었고 나이는 70, 아마 은퇴하고 나서 딸도 없으니 심심해서 외국인들과 노는 건가봄. 사회성 하나는 기가막힌 사람이었음

태블릿을 켜서 사진들을 보여주는데 진짜 별의 별 사람들하고 놀았음. 서양인 한국인이고 가릴 것 없이ㅋㅋ

자꾸 부산 어디 회사 사장하고도 친구라면서 위치를 알려주는데 정작 보니까 그냥 자전거샵 사장하고 친구;;

어떤 한국사람한테서는 결혼식에도 초대받아서 한국에 갈 정도인 걸 보면 엄청 친한 사람들이 있긴 한가봄ㅋㅋ

대충 2차로 주먹밥하고 오뎅 먹고 헤어짐

여기서 제일 충격먹은 건 1차 끝나고 나오면서 하는 말이 "나 사실 이 식당 처음이야... 그냥 오너가 좋아보여서 와봤어" 라는 거임;;

이 아재가 진짜 야쿠자였으면 나는 곱창까지 뽑혀 먹혔겠구나... 싶은 생각이 드는 밤이었음

감사인사로 메일을 보내놓으니까 내일도 시간되면 밥 먹자고 답장 왔음. 최소 3일간 나가사키에 머무르기로 했던 예정과 달리 단순변심이 극에 달한 나는 그냥 숙소도 취소하면서까지 고토로 가기로 함.

실제로 메일을 받았을 시점엔 이미 고토에 와버린 상태라서 할아버지하곤 그 다음날에는 만나지 못했음

그렇게 5일 뒤에 다시 만나서 또 밥을 얻어 먹고 말았음...
나도 여행오면 돈 과감하게 쓰는 편이라 진짜 내 돈으로 먹으려 했는데 한사코 말리시더라.. 너무 고마웟음

이번엔 진짜로 자기가 잘 아는 식당이라며ㅋㅋ 돈까스집하고 밀크쉐이크 카페로 옴. 밀크쉐이크는 ㄹㅇ좋았음. 喫茶 ぶんぶん라는 곳임

차이나타운 가게 되면 디저트로 먹어볼 만함 분위기도 좋고

그 5일 사이에 고토의 두 본섬(후쿠에, 나카도리)을 누비느라 쌓인 여러가지 썰도 풀고 할아버지도 본인이 고토에 갔던 썰이나 한국인 만난 사람들 얘기를 더해줬음

결혼식 사진도 보여주는데 2000년대의 터프했던 그시절 한국의 피로연 사진들... 꽤 오래 전부터 이렇게 외국인들하고 놀았나봄. 그러고는 한국여행한 사진이라며 보여주는데 그 사이에 모란시장 있는거 보고 충격먹음ㅋㅋㅋ 거기 고양이도 있지 않냐니깐 바로 사진 나오고ㅋㅋㅋ 사진찍지 말라고 제지당하는 와중에 몰래 찍었다며 자랑하고 있고ㅋㅋㅋ

여튼 정말 고마웠다고, 다음에 한국 오면 꼭 연락하라고 그땐 내가 갚을 차례라고 얘기 나누며 헤어졌다. 정말 재밌는 추억으로 남을 것 같음

사실 느낌은 아재에 가까운 꽤 건장한 사람인데 나이가 70이라 할아버지라는 호칭이 맞는 것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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