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대전교도소 교도관 살인사건
대전교도소 교도관 살인사건은 재소자 김원식(48)이 교도관에게 불만을 품어 교도관 김동민 교위(46)을 살해한 사건이다
김원식은 유흥업소를 운영했었는데 도망친 업소녀의 남자친구에게 선불금을 갚으라고 요구하다가 그를 칼로 찔러 살해해서 상해치사죄로 1997년 9월에 징역 8년을 선고받아 대전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다
이후 김 씨는 수감 생활 중에 몰래 숨겨 가져온 흉기로 다른 재소자의 머리를 내려치는 일을 2차례나 저질러 징역 5년을 추가로 선고받았다
그는 평소 교도관들이 다른 재소자들을 이용해서 자신을 집단으로 따돌리고 가혹행위를 해서 속이는 등의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여 교도관에게 항상 불만을 품고 있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교도소의 부당한 대우로 국가배상신청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소멸시효 만료가 임박한 상태에서 김동민 교도관이 그 사건을 빨리 처리해 주지 않는데다가 수 차례 대필 면담을 요구했는데 계속 거절당하자 그를 살해하기로 계획했다
2004년 7월 12일 오전 10시경
김원식은 교도관 김동민 씨와 복도에서 면담을 하다가 미리 숨겨둔 쇠 파이프를 들고 다시 나타나 의자에 앉아 서류를 작성하고 있던 교도관의 뒤통수를 4회 내려치고 목부분을 다시 2차례 내려쳤다
이후 김원식은 수용동 입구 쪽으로 걸어 나와 "내가 해치웠어"라고 소리 쳤고 이를 본 수용동 청소부가 "담당님이 다치셨다"라고 소리치자 마침기동근무 순찰자가 김동민 교도관을 발견해 대전시 건양대학병원으로 후송하였다
하지만, 병원에 도착한 직후 뇌사상태에 빠져 3일후인 7월 15일 14시 55분경 김동민 교도관은 고도의 두경부 손상으로 인해 끝내 순직하였다
당시 수용동 복도 가운데 위치한 담당용 책상에는, 김동민 교위가 작성 중이던 피 뭍은 보고문이 있었는데 '보고합니...' 까지 써 있었다고 한다
김동민 교감은 가톨릭 신자로, 지역 가톨릭계와 함께 수용자들의 종교 활동과 복지에 남달리 힘쓰던 교도관이었다
또한, 퇴근 후에는 지역사회 불우이웃과 결연을 맺고 수많은 선행과 사회봉사 활동을 실천 하였으며 사고가 일어난 17수용동 근무도 힘들어 동료 교도관들이 기피하자 스스로 자원하여 담당 근무를 수행하다가 변을 당한 것이나
평상시 이런 모습들로 인해 직장 동료는 물론 지역사회, 천주교계, 심지어 다른 재소자들마저 그의 순직을 안타까워 하였다고 한다
이후, 김동민 교도관의 영결식은 2004년 7월 17일에 대전교도소 체육관에서 열렸고 김동민 교도관은 교감으로 추서되었으며 옥조근정훈장이 수여되었다
당시 법무부장관이었던 강금실은 순직한 김동민 교감을 위해 써 달라며 수표 5백만원을 대전교정청장에게 전달하였다
이를 계기로 직원들이 돈을 모와 대전교도소 민원실 앞에 추모비를 세우게 되며 김동민 교도관의 순직은 그동안 범죄자의 인권존중에만 치중된 정부의 인권정책으로 인해 가려졌던 교도관의 인권과 현실이 재조명되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김원식은 사건 다음 날 다른 재소자와 교도관들한테 "왜 니들은 동료애를 발휘해서 나를 때려죽이지도 못하냐"고 소리치는 등 욕설로 일관하며 반성의 기미가 없었다
이에 1심 재판부에선 수용 도중 교도관을 살해한 것은 우리 역사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전대미문 사건이며 반성의 기미도 보이지 않을뿐더러 추가적인 범죄 예방을 위해서 김원식한테 사형을 선고하였다
하지만 항소심에선 김 씨가 불우한 환경과 사회 적응에 실패해 반사회적 인격장애 질환을 앓는다는 이유와 반성한다는 이유로 원심을 파기하고 무기징역으로 감형됨
이후 김원식은 계속 복역하다가 사건으로부터 10년 후인 2014년에 지병으로 인해 향년 58세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