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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벙글 위인전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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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과 한음

흔히 오성과 한음이라고 알려진 이항복과 이덕형이
처음 만남건 선조 11년(1578년) 두 사람이 과거 시험을 봤을 때이다.
이때 이항복은 23세, 이덕형은 18세로
우리가 잘 알고 있던 오성과 한음 콤비가 
어린시절 활약하던 이야기들은 성립될 수 없다.
하지만, 두 사람이 의형제 처럼 친했던 절친이었고
장난끼가 많았던건 사실이었다.


2.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하루 3~4시간만 자고 일했다는 걸로 알려져서
한때 한국에서 나폴레옹처럼 적게자고 많이 일하자고 했지만
사실 나폴레옹의 수면시간은 저것보다 훨씬 길었다.

프랑스 사학자 Roger Chartier의 연구에 의하면, 
야간의 수면 시간이 2~3시간이었을 뿐, 
1일 동안 토막잠을 잔 시간까지 합치면 6시간 이상이었다고 한다. 

더구나 불규칙한 생활 덕분에 불면증까지 겹쳤기에 적게 잤을 뿐이지, 
노력과 근성으로 졸음을 참은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저렇게 수면이 불규칙적이다 보니, 
한번 잠이 들면 주변에서 깨우는 것을 엄청나게 싫어했다고 한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위인전에선 아메리카 대륙을 유럽인 중 최초로 발견한 탐험가로만 언급되나
그가 수많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노예로 만든 사실은 말하지 않는다.

그가 원주민을 잔인하게 대한 이유는, 
그의 항해가 수익성이 있음을 스페인 본국에 증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가 발견한 것은 중국이나 인도를 향하는 항로가 아니라 
당시에는 허름한 산골동네나 다름없는 신대륙이었다. 
그래서, 이를 무마하기 위해 은,금,기호품 채취와 노예들을 만드는데
열중하였으며 잔인해지게 된다.

또한, "사람들이 지구가 평평한 줄 알고 
콜럼버스의 탐험에 반대했다"는 식으로 묘사되어 있으나
이러한 통념과는 달리 지구 구형론은 
이미 대항해시대 유럽의 지식인들에게 확고하게 퍼진 상식 중의 상식이었다.

토머스 에디슨

가장 큰 오해 중 하나가, 에디슨이 과학자라는 것이다. 
에디슨은 분명한 사업가이며 사업적인 발명가와 연구공학자는 분명 다르다
간혹 에디슨을 어렸을 때 보여준 실험 일화와 전구를 발명해낸 일화를 합쳐 
심지어는 뉴턴, 아인슈타인과 묶어서 훌륭한 과학자로 묘사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명백히 잘못된 묘사인 셈이다. 

물론 과학자와는 거리가 멀지만 발명을 많이 한 것은 사실이다. 
근대사회에 관련된 물품으로 한정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제품을 개발해 내놓았으며 
정확한 개수 조차 가늠이 안될 정도로 많다. 

다만 실제 에디슨이 뭔가를 최초로 발명해낸 것은 많지 않다. 
최초의 물건은 있었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다소 생소했거나 불편한 점이 많았던 여러 발명품들을 
모두가 쓸 수 있도록 실용화·상용화시킨 사업가로 볼 수 있다.

5.헬렌 켈러

위인전에서는 설리번 선생과 만나 장애를 극복하는 내용만 나오고 끝이지만
그녀가 성년이 되어 열렬한 사회주의자,페미니스트가 되었기 때문에
성년기 이후 헬렌의 활동은 잘 언급되지 않는다.

1937년 일제강점기 시절 한반도를 방문한 적이 있다. 
서울(당시는 경성부)에서 강의를 마치고 
평양으로 향하는 기차가 개성에 잠시 정차했을 때 
그 시간을 놓치지 않고 강연을 했다고 한다. 
대구에도 방문했다.
그리고 이후 한국전쟁 때도 방한한 적이 있다.

6.우장춘

한국에서 '씨 없는 수박을 처음 만든 사람'이 
우장춘 박사라고 알려져 있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사실은 잘못된 정보이다.

실제 씨 없는 수박을 최초로 만든 사람은 
교토대학의 명예교수 키하라 히토시(木原均) 박사이며, 
우장춘은 씨 없는 수박과 그 종자를 최초로 한국으로 가져와 
"새로운 농업기술을 배운다면 이렇게 신기한 수박도 만들 수 있습니다" 라고 가르치며 
그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 전부이다.

우장춘이 이룬 가장 큰 학문적 업적은 
1935년 "배추속(Brassica) 식물에 관한 게놈 분석"이라는 
박사 학위 청구 논문을 통해 '종의 합성' 이론을 제시한 것이다.

이는 생물체에서 다른 종 사이의 교잡은 불가능하다는 
그간의 과학계의 정설을 깨트리는 결과를 낳았으며 
식물은 돌연변이가 아닌 종간 교잡을 통해서도 
새로운 종이 탄생할 수 있다는 점을 직접 보여줌으로써 
결국 '종의 분화는 자연선택의 결과이다.' 였던 
다윈의 진화론을 수정하는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김정호

 "김정호의 대동여지도가 흥선대원군의 눈 밖에 나 
김정호는 옥 중에서 사망하고 대동여지도 목판본이 모두 불태워졌다."는 
일화가 널리 알려져 있으나 거짓이다. 
이 이야기의 근원은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조선어 독본》이다.

일단 조선어 독본에서는 김정호가 잡혀갈 때 딸도 같이 잡혀갔다고 쓰고 있는데 
역모 같은 특별 범죄가 아니라면 연좌제를 적용하는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거기에 결정적으로 김정호가 수감되었다는 기록 자체가 전무한데 
《고종실록》·《승정원일기》·《추국안》 어디에도 김정호가 투옥되었다는 기록은 없다.

고문당해 죽었다면 '물고'라고 표현해야 하는데 
그의 죽음에 대해 기록한 주변인들의(유재건-이향견문록) 기록은 
모두 그냥 죽었다고만 나온다. 
거기에 대동여지도 제작에 도움을 줬던 신헌은 규장각이나 비변사에서 
국가 중요 기록까지 내와서 김정호에게 제공했는데 
만약 김정호가 지도 제작으로 투옥되었다면 신헌의 목도 날아갈 일이었다.

8.황희

누렁소 일화 덕분에 많은 현대인들이 
강직하고 청렴한 재상이라고만 알고 있다는 것과는 달리
가족과 친족의 대형 범죄를 덮다 들키거나 두둔한 것이 알려짐으로써 
높기만 했던 명예가 많이 실추되었다.

황희의 사위 서달이 지방 관아의 아전을 몽둥이로 때려 살해하는 일이 발생했다.
황희는 자신의 사위를 보호하기 위하여 맹사성과 함께 
살인사건의 전말을 축소, 은폐하였으며 
직권을 남용해 사건을 조작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세종은 조작되어 올라온 상주문을 읽어본 다음 이상하다며 의금부에 조사를 명했고
그 배후에 여러 지방 관아 수령들 뿐 아니라 
형조판서 서선이 직접적으로 사건 은폐를 지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서선의 배후에서 편의를 봐주고 있던 핵심부에는 
우의정 맹사성과 좌의정 황희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서선은 말할 것도 없고 황희와 맹사성뿐만 아니라 
관련된 주변 벼슬아치들은 곤장을 맞거나 유배를 가는 등 난리가 났다. 
윗사람 뒤처리하다가 아랫사람들도 덩달아 피 본 셈. 
그나마 황희와 맹사성은 며칠 뒤 복직했으며 
사건을 일으킨 서달은 원래는 사형이었지만 
독자라는 이유로 곤장 100대에 3천리 유배, 3년 노역 치 벌금이라는 처벌을 받았다.

10. 마하트마 간디

비폭력 투쟁으로 인도의 위대한 지도자로 잘 알려진 간디는
종교적 관용을 설파하고 빈곤층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을 뿐, 
결코 종교적·세습적 계급제도를 타파하려 하지는 않았다. 
카스트제도를 옹호하며 불가촉천민과 접촉해서는 안된다는 사상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비폭력·불복종 방식을 주창하던 평화주의자로서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히틀러가 체코를 침공해 유대인을 학살하자, 
간디는 체코인들과 유대인들에게 “싸우지 말고 자살할 것”을 권고했다.
뿐만아니라 나치의 악행이 계속되자 히틀러에게 항의편지를 보내는게 고작이었다. 

그 외에도 모든 종교를 인정하고 평화롭게 살아야한다고 했으나, 
정작 그의 아들이 이슬람 교도의 여성과 결혼하려고 하자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반대를 하고 그 여성과 결혼한 아들과 절연했다.

9.갈릴레오 갈릴레이

갈릴레오가 재판장에서 나가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말했다는 것이 유명하다.
그러나,갈릴레이가 실제로 이런 말을 했다는 뚜렷한 근거나 신빙성 있는 자료는 없으며 
소설가의 창작일 뿐이다.

역사학자 스틸만 드레이크에 의하면 갈릴레이에 대한 이 일화는 
18세기 이탈리아 작가 주세페 바레티의 창작이라고 한다. 
바레티는 그의 작품에서 갈릴레이가 종교재판소에서 풀려나자마자 
하늘을 올려다보고 땅을 내려다보며 발자국을 찍고 저 말을 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곧바로 다른 작가들에게 입수되었고, 
그들은 갈릴레이가 종교재판소에서 재판이 끝난 직후 혼잣말로 말한 것처럼 재구성했다.

갈릴레오가 재판에 회부된 혐의 또한 지동설 때문이 아니라 
교황을 천동설 지지자라고 간접적으로 디스했다는 교황청 모독죄였다.
고문을 당한적도 없고, 재판 받을 때까지 독방에서 지내다가
재판 결과 3년간 매주 한번씩 회개 한다는 의미로 시편을 외우라고 판결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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