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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G의 비밀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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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디스트 선 사보타주 포탄의 또 다른 형태인 중국제 82mm 박격포탄 3발)


SOG의 가장 비밀스럽고 민감한 작전은 요원 팀과 "흑색선전"과 관련된 작전이었다.


CIA에서 시작되어, 1964년에 SOG로 이관된 월맹 장기 요원 팀은 하노이 보안부에 체포되어 "전향"했다는 정황 때문에 항상 의심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이러한 의문은 1968년 4월 1일, 존슨 대통령이 북폭을 중단하고 SOG 블랙버드의 재보급 비행도 중단되며 최고조에 달했다.


SOG 사령관인 잭 싱글롭은 이러한 결정에 항소하기 전에 먼저 레무스, 이지, 투르비용, 레드 드래곤, 이글, 해들리, 로미오, 싱글톤 및 아레스 요원 중 어느 팀이 아군이며, 그들을 되찾기 위해 물리적 위험과 정치적 싸움을 감수할 가치가 있는지 결정해야 했다.


CIA와 군사 정보 전문가들로 구성된 패널들이 투입일부터 1968년 4월 1일까지 각 팀을 하나씩 검토했다.


모든 무전, 모든 재보급 투하, 관련 정보의 모든 부분을 면밀히 조사했다.


두 달 간의 분석 끝에 패널은 모든 팀이 적의 통제하에 있다는 데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1968년까지 CIA와 SOG는 월맹에 342명으로 구성된 54개의 장기 요원 팀을 훈련하고 배치했지만 모두 손실했다.


SOG는 이제 "대응"을 해야 할 때라고 판단했다.


한 "전향 팀"이 재보급 투하를 준비하라는 지시를 받았고, 해당 팀으로 위장한 월맹 보안부 부대를 향해 폭격이 떨어졌다.


블랙버드가 여러 번의 재보급 임무를 수행했으나, 이 보급품에는 교묘하게 부비트랩이 설치된 무전기와 장비로 구성된 보복 패키지가 들어 있었다.


결국 적군은 보급품을 확보하지 못했다.


요원 기만 프로그램


사라진 요원 네트워크를 대체하기 위해 SOG는 실제와 가상의 자산을 결합하여 "인구 통제 위협에 대한 하노이의 거의 편집증적인 공포"를 이용했다.


이 새로운 노력은 프로젝트 우들스, 보든, 어전시였다.


프로젝트 보든의 요원들은 신뢰할 수는 없으나, 미국을 속였다고 믿도록 의도적으로 선발된 월맹군 포로들이었다.


SOG 사령관 스티브 카바노는 "일반적인 느낌에 따르면 이들은 우리에게 충성하지 않고, 앞으로도 충성하지 않을 기회주의자들이며, 현장에 도착하는 순간 즉시 우리를 배신할 것 같았다."라고 설명했다.


보든의 각 요원은 몇 주간의 훈련으로, 가짜 팀원과의 대화를 통해 정보(요원 신원, 코드명 및 계획)를 습득하여 자신이 대규모 요원 네트워크에 합류했다고 믿도록 단련됐다.


보든 요원은 투입되자마자 재빠르게 도망쳤으나, 동료들과 지역 공모자들을 전향시키고 적의 방첩 장교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지게 했다.


(프리랜서 식 심리전. 일부 정찰대원은 추적할 수 없게 태국에서 발행된 사진 속 카드와 같이 자신만의 심리전 물품을 월맹군 시체에 남겨뒀다)


(정찰팀이 적진 뒤에 남기도록 고안된 SOG "콜링카드")


프로젝트 우들스는 월맹에서 활동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만들어진, 실존하지 않는 18개의 "유령팀"으로 구성된 네트워크였다.


공중 보급품 투하와 함께 실제 팀에게 보내는 것과 동일한 모의 메시지가 전송되었다.


월맹 상공에서 잃은 유일한 블랙버드가 월맹 극 북서부에서 우들스의 유령팀인 미카도에게 허위 재보급 임무를 하던 중 손실된 것이다.


(밤하늘의 블랙버드 편 참고)


파라다이스 아일랜드


해상에서 이루어진 SOG 요원 기만 프로그램인 '프로젝트 어전시'는 SOG의 내스티 보트를 이용하여 월맹 어부들을 납치하고 2주 동안 억류한 뒤 월맹으로 돌려보냈으나, 이들이 새로 훈련받은 요원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돈, 비밀 잉크 화학물질, 옷에 숨겨둔 거짓 메시지로 가장 열성적인 공산주의자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웠다.


이들은 아무리 설명해도 혐의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또한 프로젝트 어전시는 SOG의 가장 정교한 기만 프로그램인 프로젝트 휴미도르와 겹쳐있었으며, 해당 프로그램은 내스티 보트를 이용하여 월맹 어부들을 납치하고 거리 감각에 혼란을 주도록 빠른 속도로 다낭 인근 17도선 이남에 꾸라오참 섬으로 데려가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미군들에게 "파라다이스 아일랜드"라고 불린 꾸라오참 섬에서의 작전은 어부들을 월맹 본토의 숨겨진 은신처에 있다고 속이고, '애국성검전선(Sacred Sword of Patriots League)'에 의해 해방되었다고 믿게 하도록 고안됐다.


2주 동안 어부들은 먹는 것 빼고 아무 일 없이, 옛날이야기를 나누며 전선의 해방 프로그램에 대해 배웠다.


애국성검전선의 이들은 다른 은신처, 언덕에 숨겨진 캠프, 그리고 거의 매일 방송되는 비밀 라디오 방송국을 자랑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어부들에게 연락책의 이름을 알려주고 비밀 라디오 방송을 통해 지시를 받는 방법도 알려줬다.


적의 방첩 장교들이 이 프로그램을 믿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SOG는 또한 STRATA(Short-Term Roadwatch And Target Acquisition/단기 도로 감시 및 표적 획득) 팀에게 월맹 도로와 트레일을 따라 애국성검전선의 전단을 뿌리고, 제1 비행단 C-123이 허구의 저항군에게 보급품을 투하하도록 했다.


1967년까지 SOG의 비밀 섬에서는 매달 27명의 어부들을 관리하고 있었고, 이들 중 한 명 또는 전원이 성실한 스파이 또는 공작원으로서 돌아갔다.


(사진 속 SOG의 파라다이스 아일랜드 어촌 마을은 납치된 어부들이 차이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월맹과 완벽하게 닮아 있었다)


(어부에게 동행을 요구하는 내스티 보트의 그림 버전)


프로젝트 엘디스트 선


파라다이스 아일랜드는 SOG의 영악한 소굴인 심리전 연구 부서에서 탄생했으며, 이곳은 동남아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기만술, 흑색선전, 즉 영악하고 대담한 거짓말을 수행하는 유일한 미군 조직이었다.


해당 부서의 노력 중 하나로, 적의 병참 체계에 AK 및 박격포의 사보타주 탄약을 삽입하는 전쟁 중 가장 치명적인 기만술인 프로젝트 엘디스트 선을 꽃피웠다.


엘디스트 선 탄약이 발사되면 폭발이 발생하여 월맹군을 죽이거나 부상입혔고, 심리적 측면에선 이 "결함" 무기를 제공한 동맹국인 공산 중국에 대한 믿음을 약화시켰다.


정찰팀은 종종 엘디스트 선 탄환을 개별적으로 뿌리거나, AK 탄창에 한 발을 넣어 매복 당한 적군의 시체에 남겼으며, 이는 가장 감지하기 어려운 삽입 수단이었다.


때로는 AK 탄약통 전체와 82mm 박격포탄 상자를 월맹군 은닉처에 몰래 넣기도 했고, 특별팀이 가짜 은닉처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1968년 11월 30일, 케산 서쪽에서 37mm 대공포탄이 킹비에 직격했고 엘디스트 선 박격포탄 상자가 유폭되며 한 팀을 잃는 일이 발생했다.


해당 사건으로 새뮤얼 투미 소령, 레이몬드 스택스 중위, 클라우스 숄츠, 아서 베이더, 리차드 피츠, 마이클 메인, 개리 라본 하사를 잃었다.


(1968년 11월 30일, 라오스 상공에서 엘디스트 선 탄약을 삽입하던 중 격추된 킹비에 탑승하고 있던 리차드 피츠(왼쪽), 게리 라본, 아서 베이더 주니어 하사. 또한 새뮤얼 투미 소령, 레이몬드 스택스 대위, 마이클 메인 하사, 클라우스 숄츠 하사도 당시 목숨을 잃었다)


(미군이 확보한, 엘디스트 선 탄약으로 파괴된 AK)


그럼에도 엘디스트 선의 효율성은 입증됐다.


1968년 6월 6일, 미군 제1보병사단 병사들은 미군을 향해 총격을 가하다 죽은 월맹군의 시체 옆에서 부서진 AK-47을 발견했다.


그리고 101공수사단 병사들은 폭발한 소총을 쥐고 있는 죽은 월맹군 시체를 발견했다.


또한 제25보병사단 병사들은 월맹 박격포 포대 전체가 파괴됐으며 4조각으로 갈라진 박격포 주위에 죽은 박격포병들이 널브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월맹은 사보타주가 아니라 제조상의 문제로 인해 탄약이 폭발했다고 결론을 내렸고, 이로 인해 온갖 종류의 병참 문제가 발생했다.


(미 제1 보병사단 병사들이 확보한 폭발한 AK소총. 사수는 사망했다)


(1969년 "아미 타임즈" 타블로이드판에 게재된 공지로, 프로젝트 엘디스트 선에 대한 경고를 무의식적으로 알렸다)


(일부 엘디스트 선 탄약은 "중국산 정어리 통조림"에 넣어져 교묘하게 삽입되었으며, 탄통은 CIA에 의해 조작 흔적 없이 재밀봉되었다)


위조 예술


SOG는 적을 혼란에 빠뜨리고 조종하기 위해 많은 문서를 위조했다.


SOG가 이러한 사기를 저지르는 것을 돕기 위해 CIA는 월맹 및 베트콩 관리의 서명, 편지 형식, 관료적 전문 용어에 대한 특별 카탈로그를 관리했다.


CIA와의 연결을 통해 SOG는 위조 문서를 적의 배포 경로에 직접 투입할 수 있었다.


적어도 한 건의 경우, 미국 언론은 SOG의 소행인지도 모른 채 위조 문서의 내용을 보도했다.


(보응우옌잡 국방장관의 서명이 있는 월맹 최고사령부의 위조 명령서. 1971년 심각한 홍수가 발생했을 때, 월맹군 병사들이 집으로 돌아가 가족을 도울 수 있도록 휴가를 승인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1971년 월남 정부는 미국 기자들에게 홍수로 인해 월맹이 황폐해져 보응우옌잡 월맹 국방장관이 수천 명의 병력을 본국으로 철수시키라고 지시했다는 내용의 적 문서를 제공했다.


SOG는 월맹군 병사들의 불안감을 조성하고 "본국 귀환" 운동을 장려하기 위해 이 위조 문서를 심어두었다.


하노이는 오랫동안 아니라며 소리쳤으나, 미국 언론은 이것이 SOG의 위조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SOG는 여러 위조 프로그램을 운영했는데, 그중 가장 큰 프로그램은 간첩 활동과 불복종의 증거를 만들어 월맹 관리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포이즌 펜 레터"였다.


사이공에서 작성된 포이즌 펜 레터는 홍콩과 멀리 떨어진 아프리카 국가에서 월맹으로 발송되었다.


단순한 의심만으로도 자백할 여지가 있는 거의 모든 이들이 구금되고 심문 후 혐의를 뒤집어쓸 수 있었다.


또한, 이와 유사한 "소프 칩"이라는 코드명의 위조 편지가 있었으며, 미군 주도의 정찰팀이 이를 캄보디아와 라오스에 심어두었다.


월맹군 시신에 수작업으로 두거나, 많이 사용된 트레일 옆에 남겨진 이 편지는 마치 여러 번 읽은 듯이 여러 번 접혀 있었다.


이러한 기발한 위조품 중 하나는 SOG 팀이 라오스에서 수십 개씩 삽입한 "해피 텟" 카드였다.


(쯔엉 친이 하노이의 새로운 총리가 될 가능성을 약화시키기 위해 위조한 "해피 텟" 카드)


월맹 고위 관리인 쯔엉 친이 서명한 이 카드는 당 중앙위원회가 호치민의 후계자를 발표하기 훨씬 전에 나온 것으로, 마치 권력을 찬탈하려는 자의 시도처럼 보였다.


결국 쯔엉 친은 총리가 되지 못했다.


(월맹군 방첩대에게 죄를 씌우고 혼란을 야기하도록 뿌려진 적의 위조 통화)


(적의 소형 PX 시스템을 소모시키기 위해 라오스에 뿌려진 월맹군 위조 전표. 실제로 효과가 있었다)


SOG는 또한 월맹 화폐를 위조하여 혼란을 야기했으나, 미국 정책에 따라 하노이 경제를 파괴하기보다는 정보 및 심리 목적으로 제한적으로 사용했다.


미군 정찰팀은 라오스와 캄보디아에 있는 적의 소형 PX 시스템을 고갈시키기 위해 월맹군의 위조 군표인 "벤슨 실크"를 자주 삽입했다.


더 나아가, 적을 혼란스럽게 하고 일부 월맹군이 비밀리에 미국을 위해 일하는 반역자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목적으로도 위조 화폐가 심어졌다.


블랙 라디오


SOG는 하노이의 정책을 왜곡하고 청중을 혼란스럽게 하는 자체 버전의 라디오 하노이와 월맹의 저항 단체가 운영한다고 주장하는 수많은 비밀 방송국과 같은 여러 "블랙 라디오" 방송국을 운영했다.


이러한 블랙 라디오 방송은 내용이 사기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관리들이 아니라 월맹 민간인과 군인들을 대상으로 했다.


월맹 라디오 방송국을 모방하기 위해 SOG는 실제 방송국의 주파수를 따라 송출하는 "서핑"을 이용하여, 실제 방송국에 주파수를 맞추었다고 착각한 청취자들을 확보했다.


또는 실제 방송국이 송출하는 것과 같은 주파수로 나오는 "히치하이킹"도 이용했다.


작전의 유효성을 높이기 위해, SOG는 미 해군 EC-121 항공기를 입수하고 월맹 해안에서 블랙 라디오 프로그램을 방송하여 적 RDF 작전에 혼란을 주고 현지 방송국 신호를 제압했다.


(기만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적의 시신에 심도록 SOG가 발행한 애국 성검 전선(SSPL) 회원 카드)


(민항기 도색을 하고 월맹 해안에서 블랙 라디오 방송을 한 SOG의 미 해군 EC-121)


(장기 요원 팀 활동지. 1968년 검토에 따르면 8개 팀 모두 적의 통제하에 있었지만, 4개 팀은 활동 시늉을 1년간 더 했다)


(프로젝트 보든, 가짜 요원 투입지)


(프로젝트 우들스)


(프로젝트 어전시, 해상 상륙 요원 활동지)

(파라다이스 아일랜드의 속임수는 납치된 어부들이 내스티 보트를 타고 너무 빨리 이동하여 아직 DMZ 이북에 있다고 착각했기에 성공했다)


SOG는 적의 수중에 넘어간 무전기를 보충하기 위해 CIA에서 자체 설계한 피너츠라는 코드명의 라디오를 제작하기도 했다.


피너츠 라디오 다이얼에서는 실제 라디오 하노이의 방송은 미리 계획된 잡음으로 인해 거의 들리지 않았지만, SOG의 라디오 하노이만큼은 명확하게 들렸다.


수천 개의 피너츠 라디오가 미군 정찰팀에 의해 삽입되거나, 블랙버드에 의해 공중 투하되거나, 내스티 보트 선원에 의해 해변으로 떠밀려 왔다.


흑색선전의 결과는 아직도 헤아릴 수 없으나, 1968년 5월 파리 평화 회담에서 하노이 협상가들이 미국의 흑색 심리전 프로그램, 특히 비열한 "애국성검전선"을 중단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을 내걸며 그 효과를 증명했다.


(공중 투하된 피너츠 라디오 사용법이 설명되어 있는 SOG 브로슈어)


(두 가지 버전의 SOG 피너츠 라디오)


STRATA 팀


장기 요원 팀보다 더 신뢰할 수 있고 대응력이 뛰어난 월맹 정보 수집 임무를 위해 SOG는 1967년 후반에 STRATA(단기 도로 감시 및 표적 획득) 팀 프로그램을 설립했다.


전원 월남인으로 구성된 STRATA 팀은 작전당 1~2주밖에 걸리지 않았으며, 적이 팀을 포획하고 시늉을 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이들은 DMZ 이북 150마일까지 깊숙한 곳에서 작전을 수행했다.


STRATA 작전은 호치민 트레일로 이어지는 무지아, 반카라이, 반레이빙 패스로 이어지는 도로망에 중점을 두었다.


STRATA 신병들은 장기 요원들과 유사한 훈련을 받은 후 다낭의 몽키 마운틴에 배치됐다.


적 분석가들을 혼란스럽게 하기 위해 14개의 STRATA 팀에는 90번부터 122번까지 다양한 번호가 부여됐다.


STRATA 팀은 태국의 나콘파놈 공군기지에서 투입됐다.


월맹군 군복으로 갈아입은 STRATA 대원들은 21st SOS "포니" 헬기에 올라 65마일의 라오스의 좁은 목 부분을 가로질러 30분가량 비행하여 월맹에 도착했다.


이 프로그램은 1968년 10월 15일, 존슨 대통령이 월맹 폭격 중단을 남쪽 DMZ까지 연장하면서 종료되었다.


첫 투입부터 13개월 후 최종 철수까지 STRATA 팀은 월맹에 26번 침투했다.


귀환한 대원 중 부상자는 거의 없었지만, 악천후로 인해 긴급 철수조차 평균 5일씩 지연되고 적과의 접촉이 치명적이었기에 2개 팀 전체를 포함하여 26명의 실종자가 발생했다.


STRATA 전체 대원 102명 중 약 1/4을 잃은 것이다.



(월맹 깊숙한 곳에 위치한 타겟 4에 STRATA 93 팀을 투입하는 공군 제21 특수작전비행단의 HH-3)


위험한 배신자: 프랑수아 요원


사이공의 SOG 본부, 월남 합동참모본부, 심지어 월남 대통령 집무실까지 침투한 적의 첩자들에 의해 많은 SOG의 미군, 월남인, 몽타냐드, 넝족들이 죽거나 포로가 되었다.


전쟁 중에 첩자 중 몇몇은 정체가 밝혀져 기소되었지만, SOG 대원들은 가장 중요한 첩자가 여전히 활동 중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


이는 냉혹한 현실에 근거한 의심이었다.


월맹에 CIA 요원이 투입된 초기부터 팀이 투입되자마자 생포되는 경우가 많았고, 이는 하노이 보안부가 이들이 올 것을 알고 있어야 가능했다.


1968년 폭격이 중단된 후 SOG가 월맹으로 팀을 파견하는 것을 중단하고 적의 경계 우려가 호치민 트레일로 옮겨가자, 미군 주도의 정찰팀도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보이는 월맹군을 만나기 시작했다.


전쟁 중 가장 중요했던 두 가지 해칫포스 작전(라오스 트레일 본부 습격과 캄보디아의 COSVN 본부 습격)은 B-52 폭격 직후에 이루어졌으나, 습격은 매복으로 바뀌어 많은 SOG 대원들이 사망했다.


또한 HALO 강하 직전에, NSA가 강하를 경고하는 월맹군의 무전 메시지를 두 번이나 감청했으며, 이는 격자 좌표와 함께 보내졌다!


그리고 SOG 브라이트 라이트는 약 500명의 월남 포로를 구출했으나, 어떻게 미국인은 단 한 명도 구하지 못한 걸까? 


브라이트 라이트 팀은 습격이 일어나기 불과 몇 시간 전에 미국인들이 옮겨졌다는 사실을 종종 발견했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전쟁 후반에 SOG 본부에서 근무하던 월남 하급 병사가 거짓말 탐지기 테스트에 걸렸으나, 그에게는 수년 동안 수많은 주요 작전을 방해할 만큼의 접근 권한은 없었다.


대부분의 SOG 대원들은 더 높은 계급의 첩자가 더 깊숙이 숨어 있다고 믿었다.


그들이 옳았다.


전쟁이 끝난 지 한참 후, 분석가인 세지윅 투리슨은 SOG의 조지 가스파드 소령에게 베트남의 공산주의 선전 신문과 TV에서, 보안부가 미국의 수많은 스파이 작전을 저지하는 데 도움을 준 프랑수아 요원이라고 알려진 "영웅"을 칭송했다고 보고했다.


그는 SOG 본부에서 근무한 월남 고위 장교로 언급됐다.


투리슨은 가스파드의 방대한 SOG 사진 컬렉션을 살펴보던 중, 하노이의 TV에서 본 프랑수아 요원과 일치하는 얼굴을 발견했다. 


그는 장기 요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다가 SOG 본부의 다른 곳에서 일했던 소령이었다.


실제로 가스파드는 해당 월남 장교가 프랑스-인도차이나 전쟁에서 프랑스 정보국인 Deuxième Bureau에서 일하면서 정보 경력을 시작했다 말했었다고 회상했다.


오늘날 프랑수아는 자국에서는 영웅이겠지만, 그가 배신한 친구와 아군들, 즉 미국인과 원주민들에게는 가장 비열한 반역자로 남아있다.


(1968년경 조지 가스파드 소령 옆에 서 있는 이 사진에서 "프랑수아 요원"(체크 무늬 셔츠)의 신원이 확인되었다)








이 글을 마지막으로 존 플라스터의 SOG: 비밀전쟁의 사진기록은 사실상 완결됐음을 알림


다음에 에필로그와 총집편으로 마무리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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