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에서 설산을 즐기시는 많은 분들이 원정을 가는 곳이죠, 니세코. 이곳은 국제적인 관광지가 되어감에 따라 고도로 상업화 되고 물가가 많이 올라버린 곳이 되어, 일본 원정을 자주 다니시는 분들 사이에서 아쉬운 이야기를 듣기 시작하는 곳이기도 해요. 하지만, 시선을 조금만 바꾸어 보면 홋카이도를 잘 모르는 사람에겐 일본 원정스키를 입문하기 좋은 곳이기도 하더군요. 그렇게 이번 원정은 니세코로 정했습니다.
보통 3월 중순의 홋카이도 원정은 운이 따라줘야 한다고 이야기 하시더라고요. 2월만큼 꾸준히 눈이 오지는 않지만, 간간이 눈이 오게 되면 신나는 설질을 즐길 수 있는, 마치 주사위 던지기 같은 시기라는 이야기를 들었죠. 그래도 다행히 제가 니세코에 있을때는 날씨요정님께서 함께 해 주셨어요. 2월만큼은 아니어도 꾸준히 눈도 내렸고, 푸른 하늘이 열리는 날도 있어서 저 멀리 구름모자를 벗은 요테이산을 감상할 수도 있었죠.
정말 신기했어요. 조금전까지만 해도 식당에 앉아 창문 너머로 펑펑 내리는 눈을 감상하고 있었는데,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서 슬로프를 내려오려고 하니깐 또 눈이 잦아들면서 시계가 넓어지는 경험을 했었고. 처음에 산 위로 올라갈때만 해도 너무 잔잔해서 편하게 스키를 즐길 수 있을 지 알았는데, 상단부로 올라가니 그렇게 바람이 심하게 불기도 하더라고요. 정말 하루 안에 온갖 기후를 다 체험하고, 위 다르고 아래 다른 날씨가 뭔지 제대로 알 수 있었어요.
그 덕분인지 어제만 해도 엉망이었던 슬로프가 다음날이 되니 바로 회복을 하더라고요. 마치 3월에 뜬금없는 폭설로 부활하는 용평을 매일같이 보는 느낌이랄까.. 정말 신비한 마법의 땅이었어요.
(눈이 펑펑 내리다가도)
(어느순간 날이 개이는 정말 신기한 곳이었어요)
(창문 너머로 보이는 요테이산. 이곳의 많은 건물들은 요테이산을 기준으로 설계하는 느낌이었어요)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스키장의 재미있는 풍경들을 보았어요, 특히 경치 좋은 슬로프들은 맑은 날 내려가면 슬로프 너머 눈 덮인 산 위로 구름모자를 쓴 아름다운 요테이산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공간으로 안내 해 주었어요.
정규 슬로프들도 다채로웠지만, 홋카이도 원정은 역시 오프피스트죠! 슬로프 맵에는 잘 보이지 않던 오프 피스트 트리런들과 게이트 너머의 세상들이 정말 낭만있더라고요. 특히 게이트가 열리는 그 순간 파우더를 즐기러 우르르 들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풍경도 멋졌고, 사람이 지나가지 않은 파우더를 사르르 가를 때의 그 기분좋은 느낌도 최고였고, 나무 사이사이를 지나가며 바라보는 정취도 정말 최고였어요. 그리고 네츄럴 하프파이프라 불리는 지역의 재미난 지형들은 어딘가 탐험하는 느낌을 주기도 했고 말이죠.
한편 초행길이라 여기저기 길을 물어물어 다니긴 했는데, 게이트를 넘어가며 패트롤에게 길을 물어보았습니다(!!)
"저기 이거 하나조노 베이스로 가는 길 맞죠?"
.. 순간 패트롤 당황해서 벙 찌는 그 순간을 포착했어야 하는데..ㅋㅋㅋ
"아노... 비관리 구역입니다만.. 이 길이 거기로 뻐..뻗어있는건 맞습니다" (내가 길도 모르는 이녀석을 게이트 너머로 보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특히 게이트 너머 네츄럴 하프파이프가 뻗어있는 구역이 있었는데(G8), 자연설로 형성된 벽면을 좌우로 타면서 앞으로는 멋진 구름이 펼쳐져 있더라고요. 나중에 촬영한 영상을 보니깐 정말 한폭의 그림같은 풍경이 펼쳐졌었어요. 한편 인바운드 아발란치 컨트롤을 하는 지역도 탐험을 했었는데(G11), 아쉽게도 이날은 설질이 받쳐주지 못해서 내려가면서 고생을 조금 했었어요. 특히 시계가 안 좋은 날 파우더 아래 감자밭이 있던 바람에 중간에 스키가 분리가 되어 눈밭속에서 찾느라 고생을 좀 하기도 했었다는 뒷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행히도 지나가던 비번 스키강사분들 두분이 수색(?)을 도와주셔서 5분만에 다시 찾아낼 수 있었어요. 진짜 십년 감수했어요.
폭포가 보인다는 게이트 너머 지역(G9)도 갔는데 아쉽게도 이날은 안개가 많이 꼈던 날이라 흐르는 물 소리는 들을 수 있었지만 멋진 풍경을 보지 못했네요. 다음번에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슬로프에서 우연히 마주친 보갤러가 찍어준 사진ㅋㅋㅋ)
스키장을 이동하다 보니 리프트들이 그동안 다녀보았던 스키장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들을 하고 있더라고요. 무엇보다 뚜껑 덮개가 있는 리프트들이 많았던게 정말 편리했어요. 정말 하루에도 수없이 바뀌는 날씨와 몰아치는 눈보라, 그리고 바람들을 겪다보니 이렇게 많은 뚜껑리프트들이 설치되어 있는게 이해는 가더라고요. 그리고 이제는 대부분의 스키장에서 자취를 감춰버린 1인승 피자박스 리프트들. 탑승이 조금 난이도 있긴 했지만 대롱대롱 그네처럼 흔들리면서 올라가는게 재미있었어요. 옛날 용평 레드리프트도 1인승이었다는데 비슷한 풍경이었을까 싶군요.
(마주보지 않고 창밖을 보도록 설계된 니세코 빌리지의 4인승 곤돌라. 신기하더라고요)
한편으론 좋은분들을 만나서 즐거운 추억들을 쌓을 수 있었어요. 이 곳에서 시즌을 보내며 강사 생활을 하시는 분들이랑 스키를 즐길 수 있었고, 우연찮게 보갤러 분들을 만날 수 있어서 같이 니세코를 즐겼어요. 초행길인 저와 단짝님에겐 구석구석을 안내 해 주실 수 있으신 정말 소중한 분들이셨죠. 그분들이 아니었으면 아마 그냥 슬로프맵에 있는 곳들만 돌아다니다 끝났을 것 같은데, 덕분에 나무 사이사이도 가 보고 어딘가 옛 정취가 느껴지는 슬로프 가운데 식당도 가 보고 게이트 너머도 자신있게 넘어 가 보고.. 정말 신나게 즐겼어요.
(니세코에서 우연찮게 마주친 보갤러 두분. 서로 원정을 가는건 알고 있었는데, 마주칠줄은 몰랐습니다 ㅋㅋㅋ)
(니세코 구석구석 안내를 해 주신 분, 이곳에서 일을 하며 겨울시즌을 보내신다고 하시더군요.)
(트리런을 앞마당 놀이터마냥 지나다니시던 분과도 같이 스키를 즐겼습니다 ㄷㄷ)
나흘간 진짜 신나게 여기저기 돌아다녔던 것 같아요. 나중에 기록을 보니 정말 역대급으로 돌아다녔던 원정인거 같네요.
다음글은 니세코의 빌리지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