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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범죄자이자 최초의 아이언맨이었던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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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맨을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


그래도 그냥 넘어가면 섭섭하니 설명해주자면, 천재 공학자이자 스타크 인더스트리라는 군수업체이자 잡다한거 다 만드는 회사의 오너, 그리고 개망나니인 토니 스타크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한테 무기 팔려고 하다가 테러리스트들한테 납치당해서 이들을 탈출하기 위해 방탄복을 만들어서 전부 죽이고 찢어버린 뒤에 테러리스트들과 괴물, 외계인들을 학살하는 미치광이의 액션 활극 되시겠다.





특히 동굴에서 나타난 강철 골렘을 본 테러리스트들이 가족과 거점을 지키기 위해서 악전고투하다가 처절히 전멸당하는것으로 반전 의식을 깨우치는 이 영화는 그 주제에도 불구하고 프렌차이즈화 되어 거의 두자릿수의 영화로 제작되기까지 했다.


그런데, 영화처럼은 아니지만 강철 갑옷을 입고 진짜 총알을 튕겨내며 경찰들을 학살하는 범죄자가 존재했다는 사실은 아는가?





이 범죄자의 이름은 에드워드 네드 켈리, 최초의 아이언맨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먼저 켈리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간단한 역사 수업부터 한번 들어보도록 하자.





빅토리아 시대! 기계의 발명으로 이전까지 인간이 할 수 없었던 일들을 강철과 석탄이 해내는 시기!


기계화된 공장의 존재는 한사람이 몇시간이고 붙어있어야 만들 수 있는 제품들을 더 싸고 더 빠르며 더 튼튼하게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당연히 돈을 가진 자들은 기계를 사들여 공장을 만들어냈고 공장은 돈을 뽑아내 돈을 가진 자들을 더 부자로 만들어줌으로서 자본가라는 새로운 권력단체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산업혁명은 동시에 사람들에게 어두운 그늘을 지기도 했다. 공장의 존재로 인해 기존의 전통적인 산업구조는 한순간에 몰락했으며 수십만의 수공업자들은 한순간에 일자리를 잃어버렸다.





기계화로 인한 일자리 상실과 함께, 공장 노동자의 높은 시급은 시골의 농부의 자식들이 도시로 상경하게 만드는 미끼였다. 덕분에 산업혁명시기 도시의 인구밀집도는 상상을 초월한 수준이었다.





석탄을 원동력으로 하던 기계들 때문에 하늘은 하루종일 스모그로 가득차있었고, 거리는 사람들로 가득차있었으며, 템즈강은 사람들의 분뇨로 냄새가 고약하다던가, 각종 전염병의 온상지가 된건 둘째쳐도 분뇨가 썩으면서 나오는 부패 가스 때문에 진짜로 사람들을 죽일 수 있는 바이오헤저드가 된 상황이었다.


게다가 산업혁명시대는 아동노동이 당연하고 근로기준법은 존재하지도 않은 시대. 사람들이 소모품 취급이었고 산업사고가 일어나면 부상자들은 보상금 한푼 못받은채 쫒겨나는게 일수였다. 불결한 환경으로 인해 전염병이 도는건 당연한거였고, 좁은 지대에 사람들이 밀집되었으니 당연히 범죄가 판을 치는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 영국 당국의 대처는? "식민지에 내다 버리기" 라고 간단히 표현할 수 있겠다.


이 시기는 열강국들의 식민지 개척기. 미지의 신대륙을 빠르게 개척하기 위한 무궁무진한 인력을 제공하고 동시에 본토에서 사회적 오류인자들을 제거한다는 명목으로 아메리카와 호주 등지로 빵 하나, 오이 몇개 (다만 당시 오이는 꽤나 고급 채소류였다) 훔친 절도범이 중형을 선고받고 추방당하거나, 거리의 고아들이 새로운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 강제로 추방당하는 식으로 수없이 호주와 미국 등으로 수출되었다.


게다가 해외 식민지들의 잇따른 금광 발견 소식들은 일반 중하류층들도 새 땅에서의 새로운 삶을 동경하며 신대륙으로 모험을 떠나며 식민지 발전에 이바지하기도 했고.






뭐, 말이 길었다. 다시 켈리의 이야기로 넘어가도록 하자.


에드워드 켈리의 아버지, 존 켈리는 1820년대 아일랜드 티퍼러리 지역에서 태어나 돼지 두마리를 훔쳤다가 체포되어 호주로 추방되었다.


그는 6년간의 복역을 마치고 태즈메이 지역의 한 식민지로 이주해 농장에서 건초 수확가로 일하다가 농장 주인 딸, 엘렌 퀸을 꼬셔서 결혼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호주에서 금광이 잇따라 발견되자 이들도 한탕 땡기기 위해서 황무지를 구매, 그리고 그 곳으로 이주한다.





오늘날처럼 뭐 즐길것도 없는 빅토리아 시대 답게... 아니,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 한가운데에서 오락이라곤 아무것도 없었을테니 존 켈리와 엘렌 퀸 부부가 7명의 자녀를 가진 것은 딱히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존 켈리는 술독에 빠져 살았고 금도 안나왔는지 빅토리아주 시모어 인근으로 이사를 갔다고 한다. 거기서도 제 버릇 못버렸는지, 아니면 소문난 주정뱅이로 유명해서 그랬던건지 존 켈리는 송아지 절도로 체포, 벌금형을 명령받았으며 음주소란을 저지르다 또 벌금형을 맞았다가 형 선고받은지 며칠 뒤에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갑작스럽게 아버지를 잃은 켈리네 가족은 어머니, 퀸의 친척이 근처에 살고 있는 빅토리아주 그레타 지역으로 이사를 했고, 작은 농장을 임대했지만 농사가 제대로 되지 않자 밀주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에드워드 켈리의 인생이 제대로 어두운 쪽으로 향한건 1869년, 멜버른의 펜트리지 감옥에서 탈출한 "해리 파워" 라는 탈옥수를 만난 이후의 일이었다. 이들 역시 골때리는 놈들이었는데, 인근의 금 호송대를 습격해 금을 빼돌리려고 근처의 불법 땅 점유자*에게서 말을 훔치려고 했으며 이때 켈리는 이들에게 도움을 줬다고 한다. 다?행히 이들의 시도는 실패했다고.


(스쿼터라고 하며, 대부분 가축이나 농사를 짓기 위해 무단으로 국가나 민간 소유의 땅을 훔쳐 쓰는 사람을 의미했다. 말만 들으면 가난한 하류층이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몰래 경작하는 것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호주의 광활한 토지 크기와 더불어 유통시장이 오늘날처럼 발달하지 않아 가축과 곡식 비용이 오늘날보다 더 높았고 대규모로 땅을 훔쳐쓰는 사람이 많아지며 엄청난 부를 끌어모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후에 켈리는 지나가는 돼지고기 상인에게서 돈을 뜯거나 (다만 가족들이 상인이 여동생을 학대하려 했다고 진술해서 혐의는 기각됨) 해리 파워와 또 무장 강도짓들을 하다가 걸려서 체포되는 등 훌륭한 범죄자로 자리잡게 된다. (다만 또다시 증거 불충분으로 기각당한다.)






1870년, 해리 파워가 체포당했다. 특기할 점은 당시 해리 파워는 켈리 가문이 소유한 사유지에서 은거 중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경찰 수색대에 의해 체포된 것이었다. 이는 켈리 가문의 누군가가 경찰에 그를 밀고한 것을 의미했고, 바로 그 밀고자가 몇번이나 해리 파워와 함께 강도짓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난 에드워드 켈리가 경찰과 모종의 거래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소문이 나돌았다. 일단 그 문제의 밀고자는 켈리의 삼촌으로 알려졌지만, 사람들은 계속 켈리가 정보를 제공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거두지 못했다.



이후로도 켈리는 각종 사건사고들을 일으켰다. 예를들어, 친구가 행상인 말을 훔치고 그 말들의 성기를 감싸는 천으로 행상인의 아내에게 외설적인 편지를 썼을 때 켈리는 그 편지를 행상인 아내에게 배달했을 뿐 아니라, 행상인과 대면하자 행상인 얼굴에 죽빵을 날려서 쓰러지게 만들거나 (3개월형 선고됨) 감옥에서 석방되자마자 마을의 우체국장의 말을 훔쳐타다가 경비에게 걸리자 박차로 공격하다가 구경꾼들한테 제압당해서 또 체포당하는 기열찬 일을 저지르기도 했다. (3년형 구형)




(이게 박차다)


이후 1977년 양아버지랑 친구들과 함께 280마리의 말을 훔쳤고, 술취해 돌아다니다가 경찰한테 체포되자 경찰을 폭행, 벌금형을 선고받았으며 1978년 또다시 양아버지와 친구들과 말 11마리를 훔쳐 팔다가 이번에는 경찰이 눈치를 채고 수사를 시작, 1978년 4월 범인을 특정하고 켈리의 동생를 체포하기 위해 Fitzpatrick이라는 경찰관이 켈리의 집으로 찾아가 켈리의 동생를 기다렸다.


경찰은 켈리의 동생, 댄을 체포했지만, 감옥에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저녁만 먹을 수 없냐는 애원에 마음이 약해졌는지 저녁식사를 허용했고...우리의 에드워드 켈리가 난입, 경찰에게 총알을 뿌리는걸 시작으로 어머니 엘렌 퀸은 삽으로 경찰의 뚝배기를 깨버리고 켈리의 동생들은 이 난장판 속에서 경찰관의 권총을 훔치고 경찰관에게 총알을 먹였다. 경찰이 제압당해 기절하자 에드워드 켈리는 경찰에게 거짓을 말하도록 협박한 뒤 경찰을 풀어줬지만, 당연히 그 경찰이 그 말을 들어줄 리가 만무...결국 체포된다.


체포된 이후에도 켈리네 가족의 반응이 가관인게, 경찰이 14살짜리 켈리네 여동생을 성추행하자 켈리가 경찰을 쐈다거나, 경찰이 입은 총상은 사실 경찰이 헛짓거리 하다가 문에 찍혀서 생긴게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에드워드 켈리와 댄 켈리는 탈출했지만 다른 3명의 동생들은 도주하지 않고 켈리 가문의 일원 혹은 친구들인 변호인단과 함께 자신들을 변호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최소 3년형, 최대 6년형의 중노동형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은 경찰관의 이름을 따 피츠패트릭 사건이라고 불린다.



이후 경찰의 추적을 피해 도망치던 에드워드 켈리와 댄 켈리는 그의 친구들과 은거하며 사금을 추출하고 밀주를 만들며 돈을 벌다가 경찰관 두명이 이들의 존재를 알아차리자 체포를 위해 온 경찰관들이 무기를 버리라고 요구하자 사격해 경찰관 하나를 사살, 이에 나머지 한명이 도주하자 1.6km 가량을 추적한 끝에 총상을 입은 경찰관이 항복을 위해 총을 거두자 산탄총으로 갈겨서 죽였다고 한다.


수없이 경찰관들을 살해하거나 살해하려고 하는 이러한 행위는 당시 호주의 빅토리아 정부를 경악시켰고, 이들은 2천 파운드의 벌금과 중죄인 체포법을 통과시키는 등 이들을 잡기 위해 애썼다. 이 덕분에 이들은 켈리 가문의 지원을 받기 더더욱 힘들어졌고 돈이 궁해지자 유로아라는 마을의 은행을 털기 위해 1878년 12월 변전소를 습격, 전신선을 자르고 대략 40명의 변전소 직원과 행인, 은행 직원들을 인질로 잡은채 2300 파운드 가량의 현금과 유가증권을 훔쳐 달아났다.





엄청난 돈을 훔쳤음에도 불구하고 돈은 금세 바닥났으며 켈리 갱단은 다시 은행 강도일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주를 넘어 뉴사우스웨일즈에 도착, 제릴데리 마을을 정찰했고 마을 술집에서 시간을 보내며 그들이 유로아에서 저지른 일로 인해 은행의 보안이 더 엄격해졌다는 것을 알게 되자 새로운 작전을 세운다.


먼저 갱단 일행 중 하나가 여관에서 싸움이 일어났다는걸 신고하려 한다는 핑계로 경찰서를 찾아간 뒤, 생각보다 경찰이 얼마 없다는 것을 깨닫자 (2명 있었다고 한다) 이들을 협박해 경찰복을 빼앗고 경찰관들의 가족을 인질로 삼아 경찰들이 켈리 갱단을 경찰 증원군으로 소개하도록 하고 마을 사람들이 교회에 간 사이 은행과 우체국, 그리고 호텔을 습격, 은행에서 2200 파운드의 현금과 보석을 훔치고 호텔 직원과 고객들에게 은행이 가난한 사람들을 핍박한다는 비난의 연설을 하고 우체국에서 전신선을 자른 뒤 경찰마와 경찰의 무기와 탄약, 그리고 현금과 귀중품을 가진채 유유히 떠나갔다고 한다.



이제 완전히 빡쳐버린 경찰은 켈리 갱단을 죽여버리기 위해 켈리 가문과 그와 친분이 있는 사람들을 전부 헤집으며 이들의 은신지를 찾기 위해 이를 악물었고 (근데 의회와 언론에서는 경찰이 무능하다며 오히려 예산을 삭감해버렸다) 이와중에 아론 셰릿이라는, 켈리 갱단의 일원, 조 번의 친구를 포섭하는데 성공한다. 그는 경찰의 스파이로서 켈리 갱단의 활동을 지속적으로 경찰에 보고했는데, 별 도움이 되진 않았다. 특히 이들이 총알이 먹히지 않는 특수한 갑옷을 만든다는 소식은 모두에게서 조롱받았으며, 중간에 경찰과 내통하는 것을 어머니에게 들키기까지 한다.


비록 아론 셰릿이 이중 스파이로서 오히려 경찰의 움직임을 켈리 갱단에게 보고하고 있다는 이야기 역시 있었으나 어쨌든 켈리 갱단은 그를 죽일것을 결의했고 경찰관이 주둔하는 셰릿의 집에 들어가 셰릿을 쏴죽인 다음, 경찰에게 오히려 나오라고 소리치며 나오지 않는다면 집 통채로 태워버리겠다고 협박한다. 그러나 집을 태우려고 한 시도가 실패하자 그들은 2시간 동안 집을 포위하다가 결국 도망가버렸고, 경찰은 그들의 공격을 두려워해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집을 탈출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제 켈리 갱단은 자기 위치가 드러났다고 판단, 호주 정부의 추적을 피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때 이들은 단순히 도주가 아닌 기상천외한 작전을 떠올리는데, 선로를 고장내 경찰 병력들이 운송될 열차를 전복시키고 마을의 은행을 털고 법원과 경찰서에 방화해 혼란을 일으키고 호주의 광대한 숲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 그 작전이었다.


켈리 일당은 철로를 내리치며 선로를 파손시키려 했지만 철로가 너무 튼튼해 실패, 인근 선로 수리공을 납치해 의도적으로 선로를 부술 것을 강요했다. 그리고 글랜로란이라는 마을에 도착해 호텔과 기차역을 점거, 인질들을 잡고 경찰 열차가 탈선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의외로 경찰 열차는 오지 않았고 60명이나 되는 인질들을 계혹 유지하기 어려웠던 켈리 갱단은 믿을만한 20명 가량의 인질들을 풀어줬다. 켈리 갱단의 비위를 맞추며 그들의 신뢰를 얻으려고 한 지역 교장 토마스 커노우도 그 중 하나였고...그는 최대한 빠르게 경찰에 이 소식을 알린다.


경찰은 기관차 하나를 정찰조로 보내 선로의 상태를 파악했고, 선로가 파손되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이에 대비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켈리 갱단 역시 경찰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비장의 무기를 준비했다.





무려 44kg이나 되는 무쇠 강철로 만든 방탄복이 바로 그것이었다.




갱단들은 호텔의 그늘진 부분에 엄폐하고 있었고, 호텔 내부에 여자와 아이들을 포함한 인질들을 대기시켜놓은채 전투를 대비했다.


새벽 세시경 경찰병력 12명 가량이 접근해 15분동안 교전을 벌였고, 그동안 100~150발 가량의 총탄이 그들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


갑옷은 다리까진 방호하지 못했기에 갱단원 하나는 다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고 에드워드 켈리 역시 오른발과 왼손 및 왼팔에 부상을 입었으며, 최소한 3명의 인질들이 치명상을 입었다. 전투의 혼란을 틈타 많은 인질들이 탈출하긴 했지만, 이미 큰 피해를 입은 후였다.






인질과 함께 에드워드 켈리 역시 호텔을 탈출하려다가 출혈로 인해 덤불에 쓰러진다.


경찰은 그의 모자와 소총을 발견했고, 경찰 지원군 30명 가량이 추가로 증원되어 호텔을 포위한다.





새벽 7시, 태양이 떠오르자, 뜬금없이 에드워드 켈리는 정신을 차리고 일어난다.


이미 경찰들은 호텔에 진입하기 위해 켈리를 넘어 호텔을 포위한 상태였으니, 켈리가 좀 정상인 인물이었다면 그는 그냥 탈출하면 됬을 것이다.


그러나 켈리는 그러지 않았고...호텔을 향해 발걸음을 올리기 시작한다.






괴상한 갑옷을 입은채 호텔로 발걸음을 옮기는 켈리를 본 경찰들은 당황해 총을 쏘아댔으나 44kg짜리 갑옷은 모든 총알들을 튕겨냈고, 호텔에서 그의 동생과 살아남은 갱단원의 지원사격을 뒤에 업은채 켈리는 30분동안 더 버틸 수 있었다. 경찰들이 다리에 두발의 산탄총을 입고 나서야 켈리는 무력화되었고, 무장해체되었다.




켈리는 28개 이상의 상처를 입었으나 살아남았고 기차역으로 후송되어 치료받아 목숨은 건지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켈리의 동생과 갱단원 하나는 10시까지 호텔에서 버텼고, 경찰과 합의로 휴전이 선언되었다. 아직 호텔에 남아있던 인질들은 석방되었고, 그중 두명의 갱단 동조자들이 경찰에 체포되었다.


경찰들은 갱단이 항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 호텔 자체를 불태워버리기로 결정했다. 호텔이 불타자 매튜 기브니라는 신부가 혹시 모를 생존자를 구출하기 위해 호텔로 들어갔고 갱단원들이 모두 죽었다는 것을 확인한다 (이들의 사인은 불명).







에드워드 켈리는 자신이 갱단이 된 것이 자기 가족들과 자신이 경찰들에 의해 탄압받았기 때문에 타락했으며, 정부는 자기같은 가난한 불법 경작자 (스쿼터) 들의 처우가 영국의 폭정 때문이라면서 아일랜드 반란의 신화에 대해 편지 등으로 이야기했다. 그의 주장이 재판에 얼마나 영향을 끼쳤는진 불명이지만, 그는 살인죄로 유죄를 선고받았고, 멜버른 감옥에서 교수형을 당했다.



뭐, 이 범죄자의 주장을 어디까지 받아들여야할지는 의문이지만, 켈리 사건은 그의 사형 이후로도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왕실 위원회가 개최되어 경찰들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적법했지만 지나치게 가옥한 조치들이 많이 발견되었고 수많은 경찰들과 간부들이 옷을 벗어야 했다고 한다. 경찰을 도운 사람들은 비난과 협박을 받았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스럽게도 더 많은 폭도들이 발생하지 않은채 범죄율이 낮아지는 결과를 낳았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 에드워드 켈리는 네드 켈리 신화로 전통과 억압적 권위에서 벗어나려고 한 호주인으로서의 신화가 되었다고 한다(?) 켈리 갱단에 대한 연극과 함께 노래, 시, 영화 등이 탄생했으며 그중 일부는 한국에도 소개된 바 있다.


 

식민지 오스트레일리아의 ‘로빈 후드’

켈리 갱의 진짜 이야기 피터 케리 지음, 민승남 옮김/문학동네·1만6500원 오스트레일리아 소설가 피터 케리의 소설 <켈리 갱의 진짜 이야기>(2000)는 그에게 두 번째 부커상을 안긴 작품이다. 이 소설은 영국 식민 시절 오스트레일리아의 ‘산적’ 네드 켈리

www.hani.co.kr



개인적으로는 허구한날 도둑질하고 훔치고 경찰관 쏴죽이는 극악무도한 살인 범죄자를 권위와 전통의 해방 신화로 연결시킬 수 있는지 이해는 안가다만 좋은게 좋은거 아니겠나.


이걸로 세계 최초의 아이언맨에 대해 알아봤다. 글이 좀 길긴 했는데 재밌게 즐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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