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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제안해놓고맘에안드니없애자?...KBO'샐러리캡'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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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분석팀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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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칼협'이란 신조어가 있다. '누가 칼 들고 협박함?'을 세 글자로 줄인 이 말에는 능력주의와 각자도생, 그리고 약자혐오가 '시대정신'이 된 한국 사회의 현주소가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누군가 직장이나 학교에서 부당한 일을 당했다고 온라인에 하소연하면 대뜸 "그런 데 들어가라고 누칼협?"이란 반응이 나온다. 자영업 하기 힘들다는 호소에도 "누가 자영업 하라고 협박했느냐"고 비웃는다. 어떤 호소와 불평불만에 만능 치트키처럼 쓰이는 이 표현 앞에서 세상 모든 문제는 국가나 사회가 아닌 개인의 책임이 된다.

이런 '누칼협'이란 표현이 더없이 적확한 경우는 드물게 존재한다. KBO리그 '샐러리캡(연봉총액상한제)'을 향한 일부 구단들의 하소연이 바로 그렇다. 올겨울 몇몇 서울팀과 수도권 한 팀을 중심으로 일부 구단에서 "샐러리캡 때문에 구단 운영하기 어렵다"는 원성이 끊이지 않는다. "샐러리캡 때문에 외부 FA(프리에이전트) 영입을 못 하고 있다" "외부 FA는커녕 내부 FA와 협상도 어렵다"는 볼멘소리부터 "샐러리캡이 리그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란 이야기까지, 나오는 이야기도 다양하다.

안됐지만 '누칼협'이란 말을 꺼낼 수밖에 없다. 누구도 구단들에 샐러리캡 제도를 만들라고 방망이 들고 협박하지 않아서다. 샐러리캡은 구단들이 제안하고 구단들이 주도해서 구단들끼리 합의해 만든 제도다. 나날이 치솟는 선수 몸값 거품을 억제하려는 목적을 갖고 태어난 제도다. 물론 모기업을 향해 '우리 이렇게 허리띠 졸라매려 애쓰고 있어요'라고 어필하려는 의도도 있었다는 게 야구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샐러리캡 제도 이전에는 FA 상한제가 있었다. 2018년 9월 KBO 실행위원회(10개 구단 단장회의)는 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에 FA 선수 몸값을 최대 4년 80억원으로 제한하는 '상한제'를 제안했다. 대신 FA 취득까지 걸리는 기간을 기존 9년에서 1년 단축하는 당근도 함께 내밀었다. 당시 시장경제에 어울리지 않는 비정상적 제도라는 비판부터 각종 편법 계약이 시장을 왜곡할 거라는 우려가 쏟아졌다. 이에 선수협은 FA 상한제 대신 다른 방안을 만들어 몸값 거품을 줄이자고 역제안했고, 이를 받은 구단들이 다시 내놓은 답이 바로 샐러리캡이었다.

"시장 상황 고려 않고 막무가내로 도입"

2019년 11월 열린 KBO 이사회는 샐러리캡을 FA 취득기간 단축과 함께 '이른 시일 내에' 일괄 추진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이후 논의를 거쳐 2023년부터 샐러리캡을 도입하기로 확정하고, 2022년 11월엔 샐러리캡 총액과 페널티 조항까지 공개했다. KBO는 2023년부터 2025년까지 3년간 적용되는 샐러리캡을 2021년과 2022년의 10개 구단 연봉 상위 40인의 평균액인 95억2199만원에서 120\%에 해당하는 '114억2638만원'으로 정했다. 샐러리캡을 초과해 계약하는 경우 1회 초과 시 초과분의 50\%에 해당하는 금액을, 2회 연속 초과 시에는 초과분의 100\%에 해당하는 제재금과 다음 연도 1라운드 지명권이 9단계 하락하는 페널티가 따른다. 3회 연속 초과 시에는 초과분의 150\% 제재금과 이듬해 1라운드 지명권이 9단계 하락하는 큰 벌을 받는다.

발표 당시에도 야구계에서는 샐러리캡 금액과 벌칙 조항이 비현실적이란 비판이 적지 않았다. 한 구단 팀장은 "처음 정한 상한액을 3년 동안 그대로 유지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면서 "물가 상승률이나 시장 상황 변화도 고려하지 않고 3년간 샐러리캡을 그대로 놔두는 건 현실에 맞지 않는다. 또 샐러리캡 시행 이전에 FA 계약을 체결한 선수들의 몸값은 어떻게 할 것인가. 선수 계약에서 옵션 부분은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 이런 세세한 부분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제도를 도입했다"고 비판했다.

흥미로운 건 샐러리캡 제도를 본격적으로 시행하기 전부터 구단 사이에서 불평하는 목소리가 나왔단 점이다. 특히 '114억2638만원'이란 상한액이 정해진 뒤부터 일부 구단들은 '샐러리캡 제도에 문제가 있다'며 장외 여론전을 폈다. 당시 구단 관계자들은 "투자할 팀은 투자하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 제도는 다 같이 돈 쓰지 말자는 식이라 리그 발전에 도움이 안 될 것"이라며 샐러리캡 제도에 비판적 목소리를 냈다. 주로 선수단 연봉 총액 상위권에 해당하는, 샐러리캡 기준에 근접한 구단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지난해 겨울에 들어서자 불만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이미 포화 상태였던 샐러리캡이 이제는 터질 지경이 되었고 일부 구단은 샐러리캡 폐지 여론을 조성하는 군불 때기를 시작했다. 이와 관련해 모 구단 관계자는 "솔직히 샐러리캡 1차 위반 정도로 구단 운영에 큰 지장이 있는 건 아니다"라면서도 "하지만 샐러리캡 위반으로 뉴스가 되고, 추가 지출이 발생하면 모기업에서 좋지 않게 바라볼까 우려된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중순에 열린 실행위에서도 샐러리캡 문제는 도마에 올랐다. 여기에 참석한 9개 구단(SSG는 단장 공석이라 불참) 단장 중에 3명이 나서서 샐러리캡 관련 발언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야구 관계자는 "단장 중의 한 명은 적극적으로 제도 폐지 혹은 수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나머지 2명은 조금 다른 각도에서 의견을 내놨다"고 했다. 이날은 시간 관계상 뾰족한 결론을 내지 못했지만 1월에 열리는 실행위에선 샐러리캡 문제가 정식 안건으로 표결에 부쳐질 가능성이 크다. 취재 결과 5개 구단은 폐지 혹은 수정을 지지하는 입장이고 3개 구단은 "원칙대로 3년간 유지하자"는 입장인 것으로 확인됐다. 나머지 2개 구단은 중립적인 스탠스다.

1년 만에 폐지 이야기 나오는 '샐캡'

지난 2년간 샐러리캡 상한액에 맞춰 구단 살림을 운영해온 구단들은 일부 구단의 '폐지' 주장에 강하게 반발한다. A구단 관계자는 "샐러리캡 도입에 앞장섰던 구단들이 이제는 태도를 바꿔 없애자고 한다"면서 "제도에서 문제가 생기면 수정을 검토할 순 있다. 하지만 제도를 만들자고 했던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상황이 되자 제도를 없애자고 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관계자는 "모 구단의 경우 대형 FA 선수와 계약하면서 4년 차 시즌에 연봉을 몰아넣는 구조로 계약했다. 아마도 샐러리캡 제도가 4년 차쯤엔 폐지될 것으로 기대하고 그렇게 한 게 아닌가 싶다. 애초부터 없앨 작정을 한 게 아닌가 의심된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B구단 단장은 "우리 구단은 3년 동안 유지하기로 약속했으면 3년을 채워야 한다는 생각"이라며 "3년 중의 2년이 지난 시점이라면 그래도 논의해볼 여지가 있지만 이제 1년밖에 안 된 제도를 다시 손대는 건 반대"라고 분명한 의사를 표현했다. C구단 단장도 "3년이라는 기간을 정했으니 지키는 게 맞다. 정말 야구 발전을 위해 개선이 꼭 필요한 상황이면 논의를 해볼 수 있겠지만 일단 중립적인 입장에서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캐스팅보트를 쥔 '중립' 구단의 선택이 관건이지만, 현재 구도에선 샐러리캡 폐지나 수정은 쉽지 않아 보인다. 정관상 KBO 실행위에 올라온 안건은 재적위원의 3분의2 이상이 참석해 3분의2 이상 찬성해야 가결된다.

다만 야구계에선 현재의 샐러리캡 제도가 현실에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아 일부 수정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야구 관계자는 "몇몇 구단의 경우 선수 하나라도 연봉조정신청을 통해 계산한 것보다 높은 연봉을 받으면 어렵게 맞춰놓은 샐러리캡이 깨질 수도 있는 상황"이라며 "메이저리그에서 사치세 문제는 30개 팀 중에 5~6개 구단의 문제다. 반면 KBO리그에선 10개 팀 중에 8개 팀이 샐러리캡 초과 일보 직전이다. 분명 문제가 있는 제도이고 개선을 할 필요가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다른 관계자도 "현재의 제도는 누구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는다. 구단도 선수도 서로가 피곤하다. 구단 간 선수 이동이 막혀버리니 전력 균형을 추구한다는 샐러리캡의 애초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면서 손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물론 1년도 안 된 제도를 수정하면 그간 제도에 맞춰 선수단을 운영한 일부 구단이 손해를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한 야구 관계자는 "샐러리캡에 여유 있는 구단에는 일종의 혜택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면 된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 관계자는 "무조건 샐러리캡을 없애거나 수정하자고 하면 규정을 잘 지킨 구단은 당연히 반발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손해 본다고 느끼지 않도록 보상책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면서 "가령 남은 샐러리캡을 외국인 선수 영입에 추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 등 다양한 안을 연구해볼 수 있을 것"이라 지적했다.

야구 아닌 모기업 눈치보기가 기준

샐러리캡을 둘러싼 논란은 산업화, 선진화와는 한참 거리가 먼 한국야구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사실 KBO 구단들이 자신들이 만든 제도를 갖고 불평하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일례로 2020년 일부 구단이 주도해 만든 퓨처스리그 FA 제도가 있다. 당시 몇몇 구단은 2차 드래프트 제도로 애써 키운 유망주를 뺏긴다며 제도 폐지와 퓨처스 FA 신설에 앞장섰다. 그런데 막상 도입해보니 퓨처스 FA는 선수도 구단도 모두 외면하는 실패작으로 판명이 났다. 여기에 2차 드래프트 폐지에 앞장섰던 일부 구단의 상황이 달라지면서 퓨처스 FA를 없애고 다시 2차 드래프트를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결국 퓨처스 FA는 2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지난해부터 2차 드래프트 제도가 부활했다.

올해 도입 예정인 로봇심판과 피치클락도 마찬가지다. 현장과 선수들의 목소리는 듣지 않은 채 KBO와 구단 사장들이 주도해서 결정했다. 그러나 감독자회의에서 부정적인 의견이 쏟아지고 단장회의에서도 비슷한 의견이 다수를 이루면서 피치클락의 개막전 도입은 사실상 무산되는 분위기다. A 구단 단장은 "12월 실행위에서 로봇심판은 개막전부터 시행하되, 피치클락은 전반기에는 시범 운영만 하기로 사실상 합의했다"고 전했다.

한 에이전시 관계자는 "샐러리캡 제도가 만들어진 게 3년 전인데, 그 당시 실행위와 이사회 멤버 중에 지금 남아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느냐"고 반문했다. 야구를 모르는 경영진이 와서 임기만 채우고 지나가니 한국야구의 미래를 좌우할 중대사가 모기업 사정에 따라 오락가락한다는 얘기다. 앞의 관계자는 깊은 한숨과 함께 말했다. "이런 환경에서 '리그 발전'을 얘기하는 게 사치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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