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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건축의 이해 - 6부 [목조건축의 역사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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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부부터는 한반도의 목조건축이 변화해 온 양상을 다룰 것임. 6부에서는 먼저 고려~조선초의 주심포건축에 대해 논해보려 함.

[한국건축의 이해] 시리즈를 꽤 오랜 기간 쓰지 못했는데, 나 또한 막상 글로 쓰려니 정보가 부족한 부분이 많아 꼼꼼하게 조사한 뒤 쓰려다 보니 늦어졌음. 그만큼 내용이 복잡한 부분이 많으니 각 부분을 나눠서 천천히 읽어보기 바람.

[15세기 이전 주요 건축물 목록]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은 안동 봉정사 극락전과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임. 각각 1363년과 1377년 중수한 기록이 있는데, 건물의 중수는 100~150년 주기로 하기 때문에 두 건물을 한반도 최고의 건물로 생각할 수 있음. 건립연대가 확실한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예산 수덕사 대웅전으로, 1308년 지어졌음.

[안동 봉정사 극락전(1363중수)]

고려시대 건축물의 가장 큰 특징은 인위성과 직선성임. 각 부재가 정교하고 기하학적인 결구를 이루고 있으며, 이들 부재가 대체로 직접적으로 결구하지 않고 연결재나 받침재를 통해 간접적으로 하중을 전달함.

[예산 수덕사 대웅전 측면(1308)]

먼저 이 시기의 주심포건축에 대해 말하려고 함. 고려시대 건축물에서만 나타나는 특징적 부재들이 있음. 먼저, 보의 보조부재인 단퇴량(短退樑)은 퇴량 위에 올라간 짧은 부재임. 대부분의 고려 건축에서 나타나며, 무위사 극락전 등 일부 조선 초기 건축에서도 나타남. 단퇴량을 통해 도리를 하나 늘림으로써 서까래를 안정적으로 지지할 수 있음.

[수덕사 대웅전 단퇴량과 우미량]

우미량(牛尾樑)이란 말 그대로 소 꼬리와 같이 휘어진 부재를 말함. 고려 후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으나, 한반도 건축이 독자성을 띠기 시작하면서 나타난 것으로 보임. 조선 초기까지 드물게 나타나다가 소실되었음.

[강릉 객사문 우미량(고려말)]

고려 후기 건축물인 강릉 객사문 또한 우미량이 나타나는 건축물임. 중도리와 주심도리가 가까워 구부러짐이 적지만, 이 또한 우미량임.

[홍성 고산사 대웅전 우미량(조선초)]

[영암 도갑사 해탈문 우미량(1473)]

우미량은 조선 초기 일부 건축물들에서도 나타남. 도갑사 해탈문과 고산사 대웅전이 대표적.

[창녕 관룡사 약사전 우미량(1507)]

관룡사 약사전은 우미량이 종도리까지 걸려 있고 종보와 우미량이 같은 높이에 걸려 있는 등 독특한 점이 많은 건축물임. 아마도 1칸짜리 소규모 불전으로 지붕면의 경사가 커 이런 구조를 한 것으로 보임.

[영천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 헛첨차(1375)]

헛첨차 또한 우미량과 마찬가지로 고려 후기 생겨난 부재임. 첨차란 이름과는 달리 살미방향으로 나 있는 부재인데, 주두 아래에서 기둥과 바로 연결되어 공포를 받침.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13세기)]

헛첨차는 1300년대 주심포 건축물에서는 대부분 나타나지만, 그 이전 시기 건축물인 부석사 무량수전이나 봉정사 극락전 등에서는 확인할 수 없음.

[안성객사 정청 헛첨차(1363이전)]

[강릉향교 대성전 헛첨차(1413)]

초기의 헛첨차는 단순히 살미의 보조기구의 역할 정도로만 쓰였음. 수덕사 대웅전, 거조암 영산전, 강릉향교 대성전 등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외형이 첨차와 동일했음.

[순천 송광사 국사전 헛첨차(1404)]

[안동 개목사 원통전 후면 헛첨차(1457)]

[안동 봉정사 화엄강당 헛첨차(조선초)]

그러나 곧 헛첨차의 머리를 살미와 동일하게 조각하기 시작하였음. 대체로 15세기 초의 건축물들이 살미와는 분리되면서도 익공 조각을 갖기 시작함.

[안동 봉정사 고금당 헛첨차(조선초)]

15세기 중반까지 헛첨차는 살미와 소로로 연결되어 직접적으로 하중을 전달하지 않았음. 그러나 이러한 형태의 헛첨차는 쉽게 변형된다는 문제가 있어 이후에는 헛첨차를 살미와 밀착하였음. 위 봉정사 고금당을 보면 붉은 동그라미 주변 빈틈이 보이지 않음.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단혀(13세기)]

[예산 수덕사 대웅전 단혀(1308)]

고려 주심포건축의 또 다른 특징은 단혀(短舌, 단장혀)의 사용임. 조선시대에는 도리 아래 장혀를 길게 연결하여 공포를 연결하였으나, 고려시대 건축물은 대체로 단혀라는 짧은 장혀가 공포 위에서만 도리를 받치고 있음.

[영주 부석사 조사당 장혀(1377)]

단혀는 14세기 중반 정도까지만 이용된 것으로 보임. 봉정사 극락전(12세기), 부석사 무량수전(13세기), 수덕사 대웅전(1308), 안성객사 정청(1363년 이전), 거조암 영산전(1375) 등 비교적 오래된 고려시대 건축에서는 단혀가 나타나지만, 성불사 극락전(1374), 부석사 조사당(1377) 등 극후기 고려건축에서는 이미 장혀가 사용되고 있음.

내 생각으로는 고려 후기 다포가 유입되면서 장혀가 보편화되어 자연적으로 단혀는 자취를 감춘 것으로 보임.

[주두의 형태]

주두와 소로는 시대에 따라 그 형태가 변하였음. 고려시대와 그 이전의 주두와 소로는 굽면이 호형으로 둥글게 파여 있었으나, 조선시대에는 직선으로 깎았음. 또한 굽받침이 있는 점 또한 고려시대 주두와 소로의 특징임.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주두(赤)와 소로(靑)]

고려시대의 주두와 소로는 위 사진에서와 같이 굽받침이 있으며, 굽이 곡면으로 깎였음.

[안동 봉정사 극락전 주두(赤)와 소로(靑)]

위의 그림에는 통일신라로 표기되어 있으나, 굽이 오목하면서 받침이 없는 주두는 고려 중기까지 사용된 것으로 보임. 여타 고려 건축물에서는 모두 굽받침이 있는 주두를 사용했으나, 한반도의 최고(最古) 건축물인 봉정사 극락전의 주두와 소로는 굽이 오목하면서도 굽받침이 있음.

[청양 장곡사 상대웅전 주두]

여담으로, 청양 장곡사 상대웅전은 고려시대 건축물로, 초창 당시에는 주심포였으나 조선시대에 개축하며 다포로 변형된 독특한 이력이 있는 건축물임. 공포의 거의 모든 부재가 조선시대에 교체되었으나, 주두만은 고려시대 원형을 간직하고 있음.

위 사진에서 주상포 주두(赤)는 고려시대, 주간포 주두(靑)는 조선시대의 것으로 형태에 확연한 차이가 드러남. 주간포는 평방이 아닌 창방 위에 바로 올려졌기 때문에 이후 추가된 것임을 알 수 있음.

[강릉 객사문 배흘림기둥]

배흘림 또한 고려건축의 특징임. 혜곡 최순우 선생의 저작인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이 배흘림은 기둥의 하단 1/3 지점의 지름을 가장 크게 만든 기둥임.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기둥]

배흘림은 기둥의 중앙이 얇아 보이는 착시현상을 교정하여 안정감을 주는 데 목적이 있음. 고려시대까지의 건축에서는 배흘림이 매우 강하나 조선시대부터는 나타나지 않음.

[예산 수덕사 대웅전 대들보]

보는 위치와 용도에 따라 구분이 몹시 다양하지만, 형태에 따라서도 구형보, 원형보, 항아리보로 크게 나뉨. 구형보란 모서리가 둥근 방형으로 가공한 것이며, 원형보란 말 그대로 원형을 살려 나무의 모양대로 가공한 것을 말함.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대들보]

한편, 항아리보란 단면이 항아리 모양으로, 전체적으로 세로로 긴 둥근 모양에 상하단은 직선으로 쳐낸 형태의 보를 말함. 항아리보는 고려시대에 사용하였는데, 정연하고 구조적인 고려시대 건축미를 돋보이게 함.

[안동 봉정사 극락전 대들보]

항아리보의 상하단 폭은 소로폭과 같아 소로를 통해 각 부재와 연결하기 용이하다는 특징이 있음. 이는 앞서 말한 각 부재들이 직접적으로 접촉하지 않는다는 점과도 이어지는 부분임.

[영주 부석사 조사당 내부]

연등천장 또한 고려건축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음. 조선시대의 건축에서는 연등천장, 즉 가구가 온전히 노출되는 지붕은 살림집에서 주로 쓰이는 방식이지만, 고려시대에는 대부분의 건축물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되었음.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보개천장]

여말선초부터는 일부 천장을 사용하기 시작하였음. 무위사 극락보전의 경우에는 불단 위에만 우물천장을 설치하고, 보개를 통해 닫집을 대체하였는데, 고려시대 건축에 비해서는 다소 변화한 양상임.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주심포 상세도]

마지막으로 고려 주삼포건축에서의 살미와 첨차의 형태에 대한 내용임. 조선시대의 첨차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모두 교두형(좌우를 직절하고 하단은 둥근 호형으로 깎은 형태)으로 처리했음. 그러나 고려시대에는 주로 연화두형 첨차를 이용했음.

[예산 수덕사 대웅전 주심포 상세도]

연화두형 첨차란 좌우를 사선으로 깎고 모서리를 중괄호( { ) 모양으로 조각한 것을 말함. 연화두형 첨차는 고려시대 후기 널리 이용되었으며 조선 초기 일부 건물에까지 그 형태가 나타남.

[안동 봉정사 극락전 공포]

그러나 이보다 고식인 봉정사 극락전에서는 연화두형 첨차에서 좌우를 수직으로 깎아낸 형태를 보이고 있음. 또한 첨차와 살미의 형태가 동일한데, 이것은 첨차와 살미의 구분이 없었던 통일신라시대 양식을 계승한 것으로 보임.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공포]

봉정사 극락전 이후의 고려건축에서는 살미를 첨차와 마찬가지로 연화두형으로 조각하되 하나만 쇠서형으로 하는 변화가 나타났음. 그러나 아직 형식화되지는 않아 다양한 형태로 드러나고 있음.

[황주 성불사 극락전 살미]

이후 조선 초기부터 수서형과 앙서형의 구분이 생기며 비로소 공포 형태의 규범이 마련되었음.

[안동 봉정사 극락전 복화반형 동자주]

복화반이란 창방과 도리 사이에 설치하는 화반 중 위 사진과 같이 아래는 넓고 위는 좁게 생긴, 꽃을 뒤집어 놓은 것과 같이 생긴 것으로, 본래는 화반의 일종이지만 현재는 이와 같이 생긴 형태를 통칭하는 말로 쓰임.

[안동 봉정사 극락전 복화반]

복화반은 고식건축에서만 나타나는 부재로, 현존하는 한반도의 건축물 중에서는 봉정사 극락전에서만 유일하게 확인할 수 있음.

이렇게 고려와 조선초의 주심포 건축이 가진 특징을 알아보았음. 이 시기의 건축물은 그 예가 많지 않아 일반화하여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은 있으나 전반적인 흐름은 분명히 존재함. 다음 글은 이 시기의 다포계 건축의 흐름에 대한 내용이 될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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