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 휴가 9박 10일을 일본에서 보내기로 정하고 예약도 모두 마쳤던 유붕쿤.
등산인으로써 한번쯤 가보고 싶었던 후지산 등산 정보를 찾아보게 되는데...
"흠 보자...대부분 등산로는 7월 10일부터 개방해서 9월까지...평균 온도는...준비물은... 엥?"
"어느 등산로를 골라도 기본 해발 2000m 이상에서 시작하잖아??"
자세한 건 저번 한라산 씨투써밋 글을 참고하고
하여튼 한라산 씨투써밋 이후로 자신감이 붙었던 유붕쿤.
위풍당당하게 출발지 인근 모텔에 체크인하는데...
난데없이 뇌우 + 폭우주의보가 발령된다.
7월 8~9일 한국에서 기록적인 폭우를 쏟아냈던 구름이 일본으로 이동한 것이다...!!
여기서 유붕쿤은 솔직히 씨투써밋을 할지 말지 한참을 고민했다.
9월에 다시 일본으로 휴가 와서 도전하는건 회사스케쥴이나 금액상으로는 무리...
그러면 내년에 다시 도전해야 하는건데...
내년에 비가 또 안온다는 보장이 어디 있나??
어차피 우비도 다 챙겨왔으니까 질러보자! 중간에 안되면 포기하더라도!
비장하게 챙긴 씨투써밋용 짐...
1L 물병 2개, 경량패딩, 하드쉘(우비), 간편식, 보조배터리, 각반, 아이젠(결론적으로 필요없었음), 갈아입을 옷, 비상용 물자 등등을 챙긴 풀패키지 상태...!
저번 게시글에서도 소개했듯이 후지산 씨투써밋은 시즈오카현에서 공식적으로 지원하는 "루트 3776"이 있다.
그 루트 3776의 출발점이 바로 이 타고노무라 공원.
공원 앞에 바다가 있어 딱 해발 0m다.
원래는 이 표지판에서 종이를 뽑아 스탬프를 찍는 방식의 아날로그 방식이었지만
다행히도! 이번년도부터 야마스타라는 GPS 앱 기반 인증으로 바뀌었다.
이왕이면 신발에 바닷물이라도 묻히고 출발하려고 해변에 내려가보니
트라이포드(이름이 이거 맞던가?) 들이 개빡세게 늘어서 있다.
해군 출신 친구가 이거 뛰어넘거나 위에서 낚시하던 멍청이들 시체 치우던 이야기를 엄청 많이 해줬기땜에... 그리고 파도가 엄청나게 치고 있어서 그냥 바다 쳐다만 보고 출발함
부두를 따라서 이동함
새벽 3시에 출발했는데도 일하시는 분들이 있었다
길 따라다가 어 여기 이쪽인가? 저쪽인가? 싶을때는
거의 대부분 루트 3776 마크가 바닥에 붙어 있었다
덕분에 헷갈리지 않고 잘 나아갈 수 있었음.
여기서 수위 아저씨 깨워서 이 팔찌를 받아가야
오후 4시 이후에도 등산할 수 있기는 개뿔 아무도 확인 안하더만 씨발
안받아가도 된다
3번째 체크포인트인 카구야 박물관 주변에 있던 뱀.
밟은 뻔했다가 깜짝 놀람
4번째 체크포인트인 오모기탕
4번째 체크포인트까지는 그냥 후지시 시내를 걷는거라서 어려울 게 없다.
주의할 점은 오모기유 주뱐에 후지산 가기 전 마지막 편의점이 있기 때문에 혹시라도 빼먹은 게 있다면 제 돈 주고 보충할 마지막 기회임(이 이후부터는 후지산 가격으로 사게 된다)
그리고 루트 3776상 여기까지가 1일차 코스임
표지판에 멧돼지가 있어서 엥? 나오나? 했더니
산불에 멧돼지가 아야한다는 내용이다...
5번째 체크포인트까지 가는 길은 시내에서 벗어나 외곽 차도로 진행하게 되는데
위 사진만 보면 평온해보이지만...
5번째 체크포인트 니노마루 빌리지를 넘고 나면...
이렇게 존나 음산해보이는 숲을 지나가야 한다
다행히도 비는 안왔지만 대신 안개가 깔렸고
여기서부터는 곰 주의! 이런 표지판이 널린 데다가
곰 똥같아 보이는 게 도로이 있는 등...
저 스산한 나무 사이의 안개에서 언제 곰이 튀어나올지 몰라 너무 무서웠다
이렇게 후지산 스카이라인이라는 유명한 도로를 지나게 되고
스산한 분위기의 숲 대신 좀더 정겨운(?) 숲이 나온다
후지산 스카이라인은 도로에 도넛이 남아있거나 스키드마크가 있거나...
평일 오전임에도 렉서스나 튜닝 이빠이 땡긴 도요타, 혼다가 달리는 등...아마 폭주족들의 성지같은 곳이 아닌가 싶다.
다행히 폭주족이라도 일본 폭주족이기 때문인지 날 보고나면 속도를 줄이는 게 눈에 보였다.
7번째 체크포인트 피카 오모테후지 캠핑장.
여기서 벌써 1L 물통이 다달아서 캠핑장 매점에서 사서 보충함.
단지 여기부터는 후지산 지역이기때문에 쓰레기통이 없음, 물통은 최대한 압축해서 가방에 넣고 계속 전진함.
8번째 체크포인트까지 후지산 스카이라인을 쭉 따라가면 됨.
그런데...갑자기 안개가 개빡세게 깔리기 시작하더니...
8번째 체크포인트, 톨게이트에 도착하자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그런데...8번째 체크포인트까지 왔는데 포기할 수 있겠는가???
있을수 없는 일이지!
곧바로 하드쉘(비옷) 꺼내입고 가방에 방수 커버를 씌운 후 출발.
톨게이트 직원이 가방에서 비옷 꺼내입는 날 보고 기가차다는 듯한 얼굴로 쳐다보는걸 애써 무시하면서
본격적인 등산로로 진입!
이전까지는 포장된 도로를 따라왔지만
이 톨게이트 이후부터는 후지산 등산로에 들어가게 된다.
단지 이 자연휴양숲길은 후지산 공식 등산로에는 포함이 안 되어있다. (맨 위 등산로 루트 중에도 얘는 없음, 굳이 따지자면 후지노미야 루트랑 제일 가까움)
구글맵에도 이 루트 지도는 없다, 물론 표지판이 잘 되어있어서 길 잃을 걱정은 없지만 혹시 모르니 YAMAP 같은 일본 지도 앱을 깔아두는 걸 추천한다.
자연휴양림 코스답게 올라가는 길에 뱀, 딱다구리, 두꺼비, 이름모를 벌레들이 넘쳐났다.
ㄹㅇ 지브리 영화에 나오는 수해나 아니면 모노노케 히메의 숲속을 보는 듯한 모습이었음.
이쯤( 대충 10시쯤) 배가 고파서 칼로리메이트 하나 까 먹음.
자연휴양림 코스를 거의 다 올라오고 나면
이렇게 호에이산 봉화구를 옆에 두고 지나가게 된다. (바람 진짜 존나게 분다)
이때 날씨가 잠깐 개여서 밑에까지 선명하게 다 잘 보였음.
9번째 체크포인트, 6합목 산장.
~ 합목은 그냥 대충 10%라고 생각하면 된다.
쉽게말해 후지산 총 높이 중 60%에 위치한 산장이다, 이 소리.
공식 루트 3776상으로는 여기까지가 3일차 코스다.
유붕쿤은 반나절만에 1~3일차 다 말아잡쉈다 이거야~
나는 7합목 산장에 예약해놔서, 6합목에서 스탬프 찍고 또 1시간 올라가 오후 4시쯤에 7합목 산장에 체크인했다.
바닷가에서 여기 7합목까지 대충 13시간 걸린거다...
산장에서 주는 카레라이스를 맛있게 먹고
내일 아침 해돋이를 보기 위해 12시에 알람을 맞추고 6시에 잠들었다.
다음날 12시 30분.
나를 포함한 비장한 표정을 한 등산인 무리들이 조용히 짐을 챙겨 산장을 나왔다.
약 1시간 걸려 8합목 산장에 도착하고...
다시 1시간 더 올라 9합목까지 도달...
여기까지 올라오니 슬슬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인도네시아 아궁산 (3142m)는 문제없이 등산을 마쳤던 본인이지만
3500m를 넘고 나니 아무래도 산소가 부족해진듯...
다행히도 머리는 아프지 않아 계속해서 밀어붙였다
그리고...
정상!! 3776m!!
이때의 시간 새벽 4시!
25시간만에 이루어낸 쾌거였다!!!
그런데 이런 니미 씨발 해돋이 조졌노!!!!!!
해돋이 말고도 이날은 비가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해서
내려가면서도 아무런 경치 구경을 할 수 없었다
하산을 시작했으나...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눈앞은 안개로 하나도 안보이고...
죽여주는 경치는 구름으로 싹 가려져있고
바닥은 화산재와 비가 뒤섞여 진흙보다도 좆같은 무언가가 된 상태...
포기하고 싶었지만 어차피 하산중이라 의미없음...!!
비오는거때매 등산로 다지기라도 하려는지
궤도 달린 화물차가 계속 왔다갔다 했는데 이게 그나마 볼거리였다.
장마시즌에 간부연구실 주변 흙 다지는거에 K77썼던 기억나노...
하여튼 이런 추잡한 하산길을 4시간가량 내려온 결과...
보라! 스트라바로 기록한 이 장대한 여정을!!
다만 저 페이스는 뭔가 오류가 난 거 같다...
보면 중간에 1km 57초(!), 2분 10초, 막 이런 구간이 있는데 얘네들이 평균을 존나 깎아먹고 있는 거임.
암만봐도 GPS오류인듯...그냥 말이 안됨.
실제 페이스는 9~11분 사이가 아닐까 싶음...
그리고 이동시간 8시간 27분 나오고 있는데 이것도 8시간 27분만에 이걸 다 끝냈다는건 아님, 실제 걸린 시간은 31시간 15분인데...
스트라바는 참 친절하게도 움직이지 않는 시간은 계산을 안 해줌.
그허니까 31시간중에 실제로 움직인건 8시간이란 이야기ㅋㅋ 6시간은 잤으니까 그렇다치고 참 오지게 쉬면서 갔네 나ㅋㅋㅋ
고고메 휴게소에서 또 카레라이스 하나 먹고...(후지산모양 카레라이스 먹고싶었음)
비 존나 오는 와중에 신주쿠역 가는 고속버스 타고
무사히 호텔로 귀환 성공함.
하여튼 이렇게 하고 싶었던 것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너희들도 하고 싶은게 있으면 꼭 해보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