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마츠다 마미]
1990년 5월 12일, 도치기현 아시카가시에서 마츠다 마미(4)가 행방불명이 됨. 그리고 다음날인 13일, 마미는 신원미상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난 이후 근처의 강가에서 시체로 발견되어 경찰이 수사를 시작하였고 사건은 전국적으로 퍼져나갔음.
그리고나서 7개월 후, 일본경찰은 갑작스럽게 프로파일링과 DNA 검사를 도입하게 됨.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도입하였던 이유는 제보로 찾는 것은 귀찮기도하고 불확실하니 이번 기회에 프로파일링과 DNA 검사로 수사방향을 전환하겠다는 것이었음.
[담당형사 모리시타 아키오]
그런데 이렇게 도입된 프로파일링은 문제가 많았음. 우선 담당형사였던 모리시타 아키오(56)의 프로파일링으로 지목된 용의선상은 ‘독신남’과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그 이유가 평소 아키오가 가지고 있던 이상한 고정관념 때문이었음.
아키오는 “독신남 중에 로리콘이 많다”, “생활패턴이 단조롭고 규칙을 중시하는 사람이 엽기적인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다“라는 이상한 고정관념으로 수사를 시작하였고 경찰 측에서도 새로운 수사기법의 실적이 필요하였기에 해당 프로파일링을 채택함.
[스가야 도시카즈]
얼마지나지 않아 유치원 운전기사를 하던 스가야 도시카즈(45)가 범인으로 지목이 되었고 도시카즈는 아무런 증거도 없이 외설목적유괴살인 혐의로 구속되었음. 그리고는 도시카즈에게 강압적이고 폭력적으로 굴며 도시카즈에게 계속 자백을 강요함.
경찰은 도시카즈를 범인으로 만들기위해 증거까지 조작해가며 도시카즈를 압박하였고 계속되는 강압수사에 결국 도시카즈는 거짓자백을 해버림. 그리고 검경은 법원에 조작된 증거를 제출하였고 이에 속아버린 법원은 도시카즈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함.
15년 후인 2005년, 니혼TV의 전설적인 기자 시미즈 기요시(47)는 우연한 계기로 인해 도시카즈의 사건을 접하게 되었고 이런 기요시가 직접나서 사건을 취재하자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잊혀진 도시카즈의 사건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었음.
그리고나서 3년 후, 기요시의 보도로 인한 DNA 재검사가 17년만에 이루어졌고 피해자 마미의 옷에 붙어있던 가해자의 DNA와 도시카즈의 DNA가 다른 것이 입증되었음. 심지어 검사 측 감정인조차도 이에 대한 어떠한 의의나 반박도 없이 인정함.
해당 감정서가 제출된지 8일만에 도시카즈는 임시출소 형태로 석방되었고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아직 법적신분은 범죄자였음. 그리고 도시카즈는 19년만에 재심 최후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국가로부터 보상금 9,200만엔(9억 2천만원)을 받음.
더욱 비참했던 것은 사건의 진범은 소아연쇄살인범으로 추정되는데, 해당 사건에서 주민들의 제보를 무시하지 않았더라면 잡을 가능성이 높았지만 경찰의 헛짓거리로 놓치게 되었고 앞선 사건들 또한 해당 사건과 마찬가지로 미제사건으로 남게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