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수는 일명 압록(鴨淥)이고, 지금은 안민강(安民江)이라고 한다-
《삼국유사》
-그 사방 경계(四履)는, 서북쪽은 당나라 이래로 압록(요하)을 경계로 하였고, 동북쪽은 선춘령(先春嶺)을 경계로 하였다.
대개 서북쪽은 고구려에 미치지 못하였으나 동북쪽은 고구려(高句麗) 때보다 확장된 것이다-
《고려사, 지리지》
-우리나라[고려]가 바로 고구려[구고려]의 옛 땅이기 때문에, 국호를 고려(高麗)라 하고 평양(平壤)에 도읍하였다. 만일 국경 문제를 논한다면, 거란(遼)의 요양(동경)도 모조리 우리 땅에 있는데, 어찌 우리가 침략해 차지했다고 말하는가? 게다가 압록(요하) 안팎 또한 우리의 땅인데, 지금 여진(女眞)이 그 땅을 훔쳐 살면서 완악하고 교활하게 거짓말을 하면서 길을 막고 있으니, 거란으로 가는 것은 바다를 건너는 것보다 더 어렵다- 《고려사 열전, 서희》
-고려는 남쪽으로는 요해(遼海)로 막히고, 서쪽으로는 요수(遼水)와 맞닿았으며,
북쪽으로는 옛 거란 지역과 접경하였고, 동쪽으로는 금[大金]과 맞닿아있다-
《선화봉사고려도경, 영토》
-철령은 서쪽으로 요하(遼河)가 있고 남쪽으로 범하(汎河)가 있으며 또 남쪽으로 소청하(小淸河)가 있는데,
모두 흘려서 요하로 들어간다-
《명사, 지리지》
-봉집현(奉集縣)이 있는데, 곧 옛 철령으로서 고려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홍무 초년에 봉집현을 설치했다가 곧 폐지했다-
《명사, 지리지》
-최승로가 상서(上書)하여 이르기를... 태조신성대왕(太祖神聖大王)께서... 요하(遼河)와 패수(浿水: 고조선 때 요동의
경계)의 놀란 파도를 진정시키고, 진한(秦韓: 신라)의 옛 땅을 얻어 열아홉 해만에 천하[寰瀛]를 통일하셨으니-
《고려사 열전, 최승로》
-거란(契丹)이 어원판관(御院判官) 야율골타(耶律骨打)를 보내 동북여진(東北女眞)으로 가는 길을 빌려 달라고 요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고려사, 현종 17년 윤 5월 19일》
-거란(契丹)이 여진(女眞)을 칠 때 우리[고려] 영토(我境)를 길로 삼았는데-
《고려사, 성종 4년 5월 미상》
-거란이 여진국(女真國)을 정벌할 때에 길이 고려의 땅(高麗之界)을 거치게 되자, 여진은 고려가 거란을 꾀어 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하고는
조정(朝廷)에 말을 바치면서 하소연하고 또 고려가 거란과 우호를 맺고 서로 의지하여 후원으로 삼고는-
《송사 제487권 열전 제246 외국3, 고려전》
-이에 따라 우리[고려]의 강역은 서쪽으로는 화표주(華表柱)가 있는 요동성(鶴柱) 건너 강안(岸江)으로부터
동쪽으로는 옛 고주몽(高朱蒙)이 건넜던 개사수(蓋斯水)로 확정되었습니다-
《고려사, 선종 5년 9월 미상》
-요나라 황제가 말하길, 고려는 바다 모퉁이에 사직을 세워 그 영토가 북쪽으로는 용천(龍泉)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압연(鴨緣)에 닿았으며-
《고려사, 숙종 2년 12월 13일》
-요심(遼瀋) 지역은 애초 본국[고려]의 옛 영토였으나 원나라를 섬기게 된 이후
장인과 사위의 관계를 맺는 바람에 행성(行省)의 관할로 두었던 것이다-
《고려사, 공민왕 19년 12월 2일》
-요심(遼瀋)의 사람들에게 고유(告諭)하여 말하기를, “요심은 우리나라[고려] 경계이며, 민은 우리의 민이다-
《고려사 열전, 지용수》
-우왕이 밀직제학(密直提學) 박의중(朴宜中)을 보내어 표문으로 청하기를... 철령(鐵嶺) 이북을 살펴보면, 역대로 문주(文州)
·고주(高州)·화주(和州)·정주(定州)·함주(咸州) 등 여러 주를 거쳐 공험진(公嶮鎭)에 이르니, 원래부터 본국의 땅이었습니다-
《고려사, 우왕 14년 2월 미상》
-요좌(遼左)는 본래 고려 땅이다-
《연도기행, 1656년 8월 29일 갑진》
요동 관련 사료만 축약 정리해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