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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간'0점대실점'압도적방어율로'신(神)'이라불린골키퍼[K스포츠레전드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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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손(샤리체프) 천안공고 골키퍼 코치
1992년부터 4년간 0점대 실점률로
일화천마 3년 연속 우승팀 만들어
외인 골키퍼 출장 금지에 시련 겪었지만
귀화로 기회 잡고 40세에 그라운드 복귀
2005년 은퇴 후 지도자 삶 살아
"한국 축구는 내 전부이고, 내 인생"
"한국 축구 발전 돕는 것이 가장 큰 목표"

편집자주

현역 시절 뛰어난 활약을 펼쳤던 스포츠 스타들의 과거와 현재를 집중 조명하는 코너입니다. 종목을 막론하고 대한민국 스포츠사에 뚜렷한 발자국을 찍어낸 전설들의 화려했던 전성기 시절과 현재의 삶을 조명하고 은퇴 후 제2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 그리고 자신만의 건강 관리법 등을 함께 들어봅니다.


2404060436528921.jpg신의손 천안공업고등학교 골키퍼 코치가 지난달 20일 충남 천안종합운동장에서 본보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천안=신용주 인턴기자

1992년은 한국 프로축구에 커다란 파장이 일었던 해다. 그해 소련 최고의 수문장 발레리 샤리체프(64)가 한국으로 넘어와 4년간 '0점대 실점률'이란 압도적 방어력을 선보이며 대활약을 펼쳤다. 볼을 막는 능력이 가히 '신(神)'의 경지에 이르렀다 해서 팬들은 그를 '신의손'이라 불렀다.

신의손은 골키퍼(GK)의 중요성을 막연하게 인식하고 있던 당시 한국 프로축구계에 'GK란 이런 것이다'를 몸소 보여주며 일약 대스타로 떠올랐다. 언론은 경기 때마다 그의 활약을 대서특필했다. 주전 공격수나 수비수가 아닌 골키퍼가 그토록 주목받는 건 신의손이 처음이었다.

발군의 실력 때문에 내쳐졌지만, 결국 또 실력 때문에 귀화까지 하게 된 전설의 골키퍼 신의손을 지난달 20일 충남 천안종합운동장에서 만났다.

신의손 천안공업고등학교 골키퍼 코치가 지난달 20일 충남 천안종합운동장에서 본보 기자와 인터뷰하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천안=신용주 인턴기자

일화천마 골문 걸어 잠그려 한국행

신의손은 소련 붕괴 후 우연한 기회에 한국에 왔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이스라엘 등 여러 곳에서 콜이 왔는데, 당시 에이전트가 내게 한국에 가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흥미롭다 생각해 도전하게 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에게 손을 내민 건 박종환 당시 일화천마(현 성남FC) 감독이다. 일화천마는 직전 시즌 6개 구단 가운데 최고 득점(56골)을 올리며 강한 공격력을 보여줬지만, 수비 불안으로 최다 실점(63골)을 기록해 전체 5위에 그치는 황당한 결과를 냈다. 팀의 골문을 단단히 걸어 잠가줄 유능한 골키퍼가 간절했다.

신의손은 박 감독의 열망을 채워줄 적임자였다. 그는 당시 소련 1부 리그 상위팀인 토르페도 모스크바의 주전 골키퍼이자 주장으로 활약한 명수문장이었다. 각종 우승컵도 숱하게 들어 올렸다. 뿐만 아니라 소련 프로리그 통산 170경기에 출장해 101경기를 무실점으로 끝내 소련리그 사상 8번째로 '야신클럽'에 등록됐다. 야신클럽은 100경기 이상 무실점을 기록한 골키퍼만 등록할 수 있는 명예의 전당이다.

신의손 천안공업고등학교 골키퍼 코치가 지난달 20일 충남 천안종합운동장에서 볼을 차올리고 있다. 천안=신용주 인턴기자

0점대 실점률·무한 체력으로 단숨에 우승가도 달려

신의손은 입단 첫해 출전한 30경기(K리그 기준)에서 단 21골만을 허용하며 실점률 0.7을 기록했다. 일화천마에서 활동한 4년 통산 실점률도 0.8에 그친다.

세 시즌 연속 무교체로 출장해 136경기를 내리 뛰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당시 프로축구 사상 최다 기록이다. 이마저도 더 할 수 있었는데 옐로카드 2장 누적으로 어쩔 수 없이 한 경기를 거르며 신기록 행진에 마침표를 찍었다.

덕분에 일화천마는 창단 4년 만인 1993년부터 1995년까지 3년 연속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신의손은 "한국서 첫 경기 후 기자가 내게 목표를 묻기에 '첫해 2위, 다음 해 우승'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더니 고개를 갸웃하더라"며 "내가 '일단 봅시다' 했는데 정말 내 말대로 다 됐다"고 말했다.

일화천마 소속 당시 신의손이 몸을 날려 볼을 잡아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머리카락 다 없어질 정도"로 적응에 어려움 겪어


하지만 그의 한국 생활이 쉽지만은 않았다. 신의손은 "한국말은 물론, 한국 축구에 대해서도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며 "막상 한국에 와보니 축구 스타일까지 달라서 스트레스를 정말 많이 받았다"고 털어놨다.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 1년 만에 머리카락이 다 없어졌을 정도"였단다.

특히 훈련스타일에서 괴리를 많이 느꼈다. 그는 "훈련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며 "훈련하고 파이팅 한 번 하고, 또 훈련하는 게 반복돼 정말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시합 때도 내가 한국말을 못하니 수비와 소통이 안 돼 실수가 많아졌다"며 "여러모로 적응이 참 쉽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다행히 박 감독을 비롯한 팀 선수들과 코칭스태프, 구단의 지원 속에 신의손은 1년 만에 적응을 마쳤다. 신의손은 "나에게 팀 분위기는 정말 중요한데, 그때 분위기가 좋았다. 모두가 나를 지원해주고 도와줘서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며 "첫해에 리그 2위를 하고, 컵 우승에 이어 MVP까지 받으니 자신감이 생겨 더 열심히 하게 됐다"고 말했다.

안양LG 시절 신의손. 한국일보 자료사진

다시 찾아온 위기, 그리고 기회

순탄하게 흘러가는 듯했던 한국 생활은 1999년 두 번째 위기를 맞았다. '신의손 효과'에 자극을 받은 프로구단들이 너도나도 외국인 골키퍼를 영입하면서 1995년에는 8팀 중 6팀이 외국인 골키퍼를 기용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자 프로축구연맹은 국내 골키퍼 육성을 명목으로 1996년부터 점진적으로 외국인 골키퍼 출장 기회를 제한했고, 1999년엔 아예 금지시켰다. 매해 26~30경기를 뛰던 신의손도 1997~98년에는 각각 9경기, 5경기밖에 뛰지 못했다. 그는 "경기에 출전을 못하니 무엇을 위한 건지 모를 훈련만 계속했다"며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하고 힘들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그럼에도 희망을 놓지 않았다. 괴로웠지만 술, 담배 등 몸에 해로운 건 일절 하지 않았다. 대신 축구만 생각하며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데 집중했다. 그때 보란 듯이 기회가 찾아왔다. 이번엔 안양LG 조광래 감독이 손을 내밀었다. 단, 조건이 있었다. 다시 축구를 하려면 러시아 국적을 버리고 한국인으로 귀화해야 했다.

2000년 3월 22일 자 한국일보 지면. 한국일보 자료사진

'구리 신'씨 1대 시조 된 신의손

귀화 결정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신의손은 "당시 내겐 축구 생각뿐이었다"며 "축구를 할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었다. 기회는 내게 큰 동기였고, '나이가 많아도 힘이 있으니 괜찮다, 할 수 있다'고 스스로 되뇌며 도전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지낸 8년여의 시간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한국은 정말 모든 게 좋았다"며 "사람들이 나를 알아봐주고 좋아해줘서 고마웠다. 힘든 순간에도 내겐 오로지 한국과 축구 생각뿐이었고, 그래서 귀화할 수 있었다"고 한국에 대한 각별한 마음을 전했다.

관건은 작명이었다. 샤리체프라는 러시아 이름 대신 한국 이름이 필요했다. 빠르고 민첩하다는 뜻의 '사리첩', 온몸으로 공을 잡아낸다는 취지의 '구체포' 등 다양한 이름들이 물망에 올랐으나 결국 팬들이 지어준 '신의손'을 택했다. 국내 호적엔 안양 연습 구장이 있는 경기도 구리시의 신(申)씨로 등록했다. 국내 첫 귀화 축구선수이자 구리 신씨 1대 시조가 된 것이다.

2000년 4월 4일 한국일보 지면.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인 신의손, 불혹 나이로 다시 골문 사수

17개월 만에 한국인이 되어 돌아온 신의손은 2000년 불혹의 나이로 그라운드에 복귀했다. 당시 국내 프로축구사 최고령 선수다. 하지만 기량은 전혀 녹슬지 않았다. 2000년 3월 15일 한국일보 신문에서 조 감독은 그를 "나이 40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순발력이 여전하고 관록까지 덧붙어 여유가 넘친다"고 평가했다. 실제 신의손은 복귀 후 치른 대한화재컵 조별리그 4경기에서 3골만 허용하며 경기당 실점률 0.75를 기록했다.

신의손은 "사실 귀화 후 훈련을 거의 하지 못했다"면서도 "경험이 많고, 한국 축구 스타일을 잘 알고 있었기에 곧바로 투입될 수 있었고, 컨디션도 좋았다"고 말했다. 그가 굉장한 화력을 뿜어 내면서 안양은 그해 10년 만에 리그 우승을 따냈다.

신의손 천안공업고등학교 골키퍼 코치가 지난달 20일 충남 천안종합운동장에서 본보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천안=신용주 인턴기자

부상에도 0점대 실점률 올리며 활약

지칠 줄 모르던 신의손의 선수 생활에 제동을 건 것은 부상이었다. 복귀 첫해 9월 후방 십자인대가 파열됐다. 그는 "전에도 부상을 많이 당해봤지만 이건 정말 아팠다"며 "무릎에서 '쫙' 소리가 났고, 너무 아파서 더 이상 경기에 뛸 수 없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후방 십자인대 파열은 재활에만 7개월이 걸리는 큰 부상이다.

병원에선 축구를 만류했다. 40세라는 나이를 감안하면 사실상 선수 은퇴 선고나 다름없다. 하지만 어렵게 복귀한 만큼 쉽게 포기할 순 없었다. 신의손은 "근력을 키우기 위해 매일 무릎 웨이트를 3세트씩 했고, 다른 훈련도 예전처럼 계속했다"고 말했다. 그 결과 이듬해인 2001년 실점률 0.8(K리그 기준)을 기록하며 다시 한 번 레전드 골키퍼의 부활을 알렸다.

매 경기 최선을 다했지만 나이듦에 따른 자연스러운 집중력과 체력 저하는 막을 수 없었다. 신의손은 "2004년에 이미 내 축구는 끝이 났다고 생각했다"며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 끝에 골키퍼 코치로 방향을 틀었다"고 말했다.

2008년 초등·중학교 여자골키퍼 선수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교여자축구단 골키퍼 클리닉에서 신의손 당시 대교GK코치가 직접 강사로 나서 코칭하고 있다. 스포츠한국 자료사진

은퇴 후 지도자로 인생 2막 올려

2005년 은퇴한 신의손은 FC서울 골키퍼 코치에 이어 경남FC, 대교 캥거루스 등을 거쳐 2009년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골키퍼 코치까지 역임했다. 이후로도 여러 팀에서 골키퍼 코치로 활약하다 2022년부터는 천안시티FC의 U-18 팀인 천안공업고등학교 축구부 골키퍼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그에겐 지도자로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 신의손은 "한국 축구는 내 전부이고, 내 인생"이라며 "계속 한국에서 한국 축구를 지원하고 한국 축구를 위해 일하며 한국 축구가 발전하게 돕는 것이 지금의 내 가장 큰 목표"라고 말했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지금도 체력관리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 여전히 술, 담배는 전혀 하지 않는 데다 매일 선수들과 훈련하는 건 기본, 선수들보다 먼저 나와서 운동장을 뛰기도 한다. 신의손은 "내가 올해 64살인데, 신체 나이는 45살 정도밖에 안 될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며 "코치라고 해서 말로만 이거 해, 저거 해 하지 않고 직접 킥을 차거나 공을 주고받아야 하기 때문에 체력 관리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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